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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향년 89

등록 2022-02-26 14:50수정 2022-02-26 15:46

26일 별세한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6일 별세한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26일 별세했다. 향년 89.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문학평론과 기호학 연구서, 소설은 물론 다양한 문화론저와 에세이를 발표했다. 초기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는 한국 문화와 심성의 원형을 독자적으로 탐구한 책으로 수백만 부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82년에 일본과 한국에서 함께 나온 <축소지향의 일본인> 역시 일본 사회와 문화의 핵심을 ‘축소 지향’이라는 날렵한 표현으로 포착해서 두 나라에서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본 문화론의 중요한 텍스트로 자리 잡았다.

고인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기획을 맡아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 같은 참신한 행사를 선보여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그는 또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0년에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을 맡아 2년 가까이 봉직하며 현 문화체육관광부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 창설 역시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의 공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그는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 꽃 하나의 의미’라는 조시를 써서 “독재와 독선, 역사의 두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 밑에서 어렵게 피어난 질긴 질경이 꽃모습”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기렸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195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상의 파괴’라는 패기 넘치는 제목의 평론으로 등단한 고인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과 <경향신문> 파리 특파원을 역임하는 등 언론계에도 오래 몸담았다. 1972년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을 창간해 1985년까지 주간을 맡았으며, 1977년에는 이상문학상을 제정해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으로 만들었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초기 이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968년 2~3월 <조선일보> 지면에서 전개된 시인 김수영과의 ‘순수-참여 논쟁’이다. 김수영은 앞서 <사상계> 1월호에 기고한 ‘지식인의 사회 참여’라는 글에서 이어령을 실명으로 비판한 바 있었다. 이어령은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문화를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라 규정하며 문화인들이 유아적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김수영은 이어령이 현실의 구체적 억압을 ‘에비’와 같은 추상적이며 가상적인 금제(禁制)로 바꾸어 놓았다며, 정치 권력의 탄압을 직시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어령이 <조선일보> 2월20일 치에 ‘누가 조종(弔鐘)을 울리는가?’라는 글에서 “오도된 참여론”을 비판하고, 이에 김수영은 같은 신문 2월27일 치에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라는 글로 맞선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라는 저 유명한 명제가 제출된 것이 이 글이었다. 이에 대해 다시 이어령이 같은 신문 3월10일 치에 ‘문학은 권력이나 정치 이념의 시녀가 아니다’라는 글로 맞서는 등 논쟁은 사뭇 뜨겁게 진행되었다. 이어령은 김수영 시인 40주기를 기념해 2018년에 나온 헌정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에 글을 실어 “많이 손상되고 왜곡되어 오해의 켜가 쌓인 선생과의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서도 본격적인 김수영론을 완성할 것을 다짐”한다며 “서로 누운 자리는 달랐어도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고인은 장관 퇴임 뒤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원, 대통령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이육사기념관건립추진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는 한편 연구서 <공간의 기호학>과 <하이쿠의 시학>,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신앙 고백서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을 펴냈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신앙에 귀의하게 된 데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지역 검사를 지냈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사망한 장녀 이민아 목사의 일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은 고인은 항암치료를 마다하고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집필과 <메멘토 모리> 같은 대담집에 몰두해 왔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과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교수가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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