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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금융 민주화 헌신’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 별세

등록 2015-04-18 15:32수정 2015-04-18 15:44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가 숙환으로 17일 별세했다. 향년 86.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1948년 사망)씨의 막내(셋째) 아들이기도 한 고인은 1951년 한국은행에 들어가 조사 제1부장, 자금부장, 이사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수출입은행 감사·전무이사, 한국은행 부총재·은행감독원장,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사장을 마친 뒤 1988년 한국은행 17대 총재에 부임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부는 과정에서 금융계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는 점이 평가받고 있다. 특히 취임 첫 해 ‘한국은행 독립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직원들과 함께 정부로부터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같은 해, 고인은 당시 재무부 장관이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의장을 맡는 것과 관련 “금통위가 한국은행 내부기구이며, 금통위 권한 행사의 책임이 한국은행에 귀속되는 만큼 한국은행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겸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등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고인의 노력이 1997년 한국은행법 개정 때, 한국은행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맡도록 법이 개정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임 시절 1980년대 한국경제의 문제점으로 소득분배의 불균등화를 지적하며 ‘분배 정의’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정부와 날을 세우면서도 한은 역사상 네번째이자, 격동의 1980년대에 부임한 한은 총재 가운데 유일하게 4년 임기를 채운 총재로서도 이름을 남겼다. 금리자유화를 통해 금융기관이 경쟁 체제에 나서도록 이끌었다는 점도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정부 간섭을 벗어나기 위해 헌법상 권한으로 명시하기 위해 추진하던 ‘한은의 실질적 독립’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재임 기간 동안 한은의 첫째 목표가 물가 안정이었는데도 총통화량이 40조원에서 80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던 점 등은 아쉬움으로 꼽힌다. 한은 총재를 마친 뒤에는, 한국은행 고문에 이어 1992년 당시 재부무 장관의 추천으로 3년 임기 금통위원을 마쳤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광일 여사와 김재민 동의대 교수, 김성민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김황민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 등 3남이 있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21일. (02)3410-3151.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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