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6일 4대 종단 성직자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정의당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차별금지법을 보수 개신교 목사들만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제외한 모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이름만 다를 뿐 차별금지법을 시행 중이고 우리도 국민의 70% 이상이 차별금지법 통과에 찬성하는데도 법제화하지 못하는 원인을 보수 개신교 탓으로만 돌리기 쉽지만, 실은 가톨릭 지도부까지 반대에 가세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차별금지법을 두고 보수 개신교와 시민단체 간의 공방을 지켜보던 가톨릭 지도부는 차별금지법 통과에 대한 압력이 더욱 거세지자 통과에 부정적인 입장을 공식 표명함으로써 또 한번 발목을 잡았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지난해 5월, 가톨릭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가 지난해 9월 부정적 입장을 밝혀, 통과 쪽으로 기울던 무게중심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데 힘을 보탰다. 그러자 차별금지법 제정의 발목을 잡는 것은 성경은 물론 가톨릭 교리와도 맞지 않는다는 반발이 가톨릭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가톨릭 엔지오(NGO)인 우리신학연구소가 지난달 25일 ‘차별금지법과 가톨릭교회’란 이름으로 연 온라인 세미나에서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등 30여명은 이와 관련해 토론을 펼쳤다.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은 “교회 안에서 주교들이 반대를 표명하면 사제·수도자와 신자들이 다른 의견을 내기가 어려워지지만, 현장 사목을 하는 이들은 성소수자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목소리를 냈다”고 말했다.
천주교인권위 활동가인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주교회의 등은 차별금지법 원칙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이런 흐름이 동성혼 법제화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 걱정이라고 하는데, 이번 차별금지법에 담기지도 않은 동성혼을 들어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보수 개신교의 반대 논리와 너무 똑같은데, 이건 반대할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이어 “가톨릭 내에선 성경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교리에서도 성소수자 사목에 관한 2358항에 ‘성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의 기미가 없어야 한다’고 돼 있는데도 인권침해인 차별을 없애는 것엔 아무 노력도 안 하면서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하다. 이러다간 ‘차별을 없애기 위해 한국 가톨릭은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이자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모임’ 공동대표인 박상훈 신부도 “2020년 가을 성소수자 모임에 나갔다가 만난 변희수 하사가 ‘재판으로 너무 알려져 가톨릭 신자인데도 성당에 못 나가고 있다’고 말해 ‘다음에 꼭 보자’고 약속했는데, 얼마 뒤 자살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즈음 2명의 성소수자가 더 자살했다”며 “성소수자 문제는 성적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사회에 의한 극심한 편견과 혐오로 인해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동성애가 죄라는 교리적·이념적 접근과 달리 사회사목을 하거나 봉사를 하는 신부와 수녀들 가운데는 성소수자를 도와주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박 신부는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이후 기존 교회법이나 교회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고 ‘실제 예수께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보라’며 ‘시노드’(회의기구)를 통해 합의로 쇄신해가고 있는 중”이라며 “전세계 가톨릭교회도 동성애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는 등 인간의 행복을 위한 노력을 지지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데서 한국의 가톨릭도 변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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