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조계사 마당에서 봉행된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당선자 신분으로 참석해 합창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공동사진취재단
조계종 총무원이 오는 27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봉행되는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 매년 초청하던 사회적 약자를 초청하지 않기로 해 불교계 내부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
조계종의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사회적 약자를 초청한 것은 전통으로 굳어져 왔다. 이 전통은 불교적 방법의 실천을 통해 사회의 불평등과 억울함과 혐오를 없애고 약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로 2012년 8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사노위)’가 출범하면서 관행이 됐다. 2009년 취임해 2017년까지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의 재임 때도 2012년부터는 사회적 약자 초청이 어김없이 이뤄졌다.
지난 2012년 법요식 때는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과 성소수자, 김정우 쌍용자동차 노조지부장과 김영덕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 대표 등이 헌화의식에 참여했다. 2015년에도 세월호 유가족과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참여했고, 2017년에도 세월호 기간제 교사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 김성욱씨, 성소수자 대표 이승현씨, 이주노동조합위원장 우다야 라이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표 자캐오 신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고 임재춘씨 등이 초청받고, 2019년에는 일본군 성노예피해자 이옥선 할마니, 삼성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태안화력발전소 산재사고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씨,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 이영문·윤미자씨, 고 서지윤 서울의료원 간호사 유가족 최영자·서희철씨 등이 초청됐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은 이들을 초청해 위로하는 것은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의 가장 큰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에 사회적 약자를 전혀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계종 사노위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조계종 총무원 내부게시판에 ‘거룩하신 부처님 너무 너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란 글을 올렸다.
지난해 12월9일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촉구 한 뒤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양 위원장은 “종단에 사회노동위원회가 설립되고 나서 해마다 부처님 오신날이면 사회적 약자를 공식 초청하자, 그들은 불교에 너무 감사했으며, 지켜보는 국민들도 불교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보냈다”며 “그런데 올해는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가족들, 하루하루가 지옥의 삶이라고 울부짖는 발달장애인들과 그 가족들, 지구를 살리자며 하는 기후운동하시는 분들, 5.18때 광주 도청에서 마지막 희생되신 대불련 전남 지부장 김동수 열사, 수년째 길거리에 있는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부처님께 꽃을 올리고 싶었지만 저의 신심과 노력의 부족으로 부처님께 인사 못 드릴 것 같다”며 애통해했다.
양 위원장은 “거룩하신 부처님! 부디 이땅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힘과 등불과 의지처가 되어주시기를 엎드려 엎드려 절 드리옵니다. 불교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누가 잡아주겠습니까”하고 호소했다.
봉축 법요식에 역대 대통령이 대부분 참석했기 때문에 눈치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조계종 한 관계자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해질까 봐 총무원이 그렇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계종 기획실장 성화 스님은 이와 관련해 “‘상월결사’에서 전법을 강조함으로써 포교원에서 전법정진대회도 하는 등 전법을 위해 어린이, 학생회, 청년회, 일반인, 어르신 등 계층별로 초청 대상자를 바꿨다”면서 “이번엔 조계종의 화두가 된 전법을 중시하는 종단의 특수 종책 사항 때문에 변경됐다”고 밝혔다.
상월결사는 조계종의 막후 실권자로 꼽히는 자승 전총무원장이 주도하는 단체다. 자승 스님은 사부대중 108명과 함께 43일간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지난 3월23일 조계사 일대에서 가진 회향식에서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임무는 전법하라는 것으로 앞으로 우리의 인사는 ‘성불합시다’란 말은 다음 생으로 미루고, 금생에는 ‘부처님 법을 전합시다’로 하자”고 주장했다.
이런 자승 스님의 주장에 따라 사회적 약자를 초청에서 배제하고 전법을 위한 초청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총무원의 해명인 셈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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