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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한평생 인간세상 달래준 ‘비단꽃’ 신의 곁으로 돌아가다

등록 2019-02-24 19:34수정 2019-02-24 20:07

‘마지막 만신’ 김금화씨 별세…향년 88
2017년 9월 강화도의 금화당에서 신내림 70돌 기념으로 ‘만수대탁굿’을 펼친 만신 김금화 선생. 생전 마지막 큰굿판이 됐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2017년 9월 강화도의 금화당에서 신내림 70돌 기념으로 ‘만수대탁굿’을 펼친 만신 김금화 선생. 생전 마지막 큰굿판이 됐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국가무형문화재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인 ‘마지막 큰무당’ 김금화씨가 23일 오전 5시57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

1931년 황해도 연백의 가난한 집안에서 둘째 딸로 태어난 고인은 천덕꾸러기로 자라다 12살 때부터 무병(巫病)을 앓았다. 14살에 시집을 갔다가 구박과 구타에 못 이겨 2년 만에 도망 나온 뒤, 17살에 외할머니이자 만신(萬神·무녀)인 김천일씨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녀가 됐다. 그러나 일제와 6·25,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굿은 미신으로 치부돼 때론 경찰서에 끌려가고, 때론 총구의 협박을 받으면서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월남한 고인은 무교인 방수덕씨와 인천과 경기도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65년 서울로 활동지를 옮겼다. 그는 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해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연기상을 받으며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82년 한-미 수교 100돌을 맞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녹스빌 국제박람회장에서 열린 친선공연에서 ‘철무리굿’을 선보여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특히 그는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바다의 평안과 어장의 풍년을 기원하는 ‘서해안풍어제’로 유명했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제82-2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 굿은 황해도 해주·옹진, 연평도에서 성행하던 굿으로, 배연신굿은 선주의 개인 뱃굿이고 대동굿은 마을 공동제사를 뜻한다. 그는 황해도 지역에서 노인들의 만수무강과 극락 천도를 기원하는 ‘만수대탁굿’의 명인이기도 했다. 이 굿은 닷새간 혼자서 이어가야 해서 큰무당이라 해도 쉽사리 하기 어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6년 서울 밀레리엄 힐튼호텔에서 만신 김금화가 삼동다리 차림으로 작두거리를 펼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2006년 서울 밀레리엄 힐튼호텔에서 만신 김금화가 삼동다리 차림으로 작두거리를 펼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
17살 때 외할머니 내림굿 받고 ‘무녀’로
82년 한미수교 100돌 LA 공연 명성
작두 위 춤추는 서해안풍어제 유명
자서전 ‘비단꽃 넘세’·영화 ‘만신’ 화제

팔순 넘어서도 서슴없이 작두에 올랐던 고인은 2017년 펴낸 국립무형유산원의 구술록에서 “무당은 됨됨이가 제일 중요하다. 남의 덕을 잘 빌어주려면 내가 먼저 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무형문화재로 인정된 다음부터 우리 무당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며 “그래도 다들 옛것을 찾으면서 즐거워하니까 나도 기뻤다. 내가 가진 재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2004년 백두산 천지를 비롯해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대동굿과 진혼굿 등을 공연해 세계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기여를 했다. 또 사도세자, 백남준, 김대중 전 대통령, 윤이상 등을 위한 진혼제와 세월호 희생자 추모위령제를 올리기도 했다.

고인의 파란만장한 삶은 책과 영화 등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첫번째 자서전 <비단꽃 넘세>(2007·생각의 나무 펴냄)의 서문에서 도올 김용옥 교수는 “1987년 서울 우이동에서 금화가 베푸는 굿판(만수대탁굿)을 보고 너무도 강렬한 느낌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비단꽃’은 금화의 순우리말이고, ‘넘세’는 딸만 낳은 부모들이 다음엔 아들을 낳게 ‘남동생이 어깨너머에서 넘어다보고 있다’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2014년 3월 자서전 개정판 <만신 김금화> 표지. 책를 원작으로 개봉한 영화 <만신>의 포스터. 궁리 제공
2014년 3월 자서전 개정판 <만신 김금화> 표지. 책를 원작으로 개봉한 영화 <만신>의 포스터. 궁리 제공
2014년 자서전 개정판 <만신 김금화-인간 세상에 핀 신의 꽃>(궁리 펴냄)을 원작으로 한 영화 <만신>(감독 박찬경)이 개봉됐다. 문소리·류현경·김세론 등 인기 배우들이 금화의 일생을 연기해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캐나다의 ‘토론토 릴 아시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앞서 2013년 다큐멘터리 <비단꽃길>도 나왔다.

고인은 2000년 서해안풍어제보존회 이사장에 취임하고, 2005년 인천 강화도에 무교시설 ‘금화당’을 열어 후진 양성과 무속문화 전수에 힘썼다.

유족으로는 아들 조황훈(자영업)씨, 조카 김혜경(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이수자)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인천 청기와장례식장, 발인은 25일 오전 6시40분이다. (032)577-1444.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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