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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위만 쳐다보면 낮은 곳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등록 2019-05-22 11:26수정 2019-05-22 11:35

쉼과 깸
#아침마다 먹는 생야채가 내겐 보약입니다. 믿음직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한살림생활협동조합의 뿌리는 원주의 무위당 장일순(1928~94)입니다. 무위당의 25주기를 기념하는 생명협동문화제가 6월4일까지 원주 일원에서 펼쳐집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장일순 평전>(두레 펴냄)도 출간되었습니다.

암담한 시대 마음이 외롭거나 영혼이 적막할 때면 무위당을 찾던 리영희는 ‘다시는 장일순과 같은 사람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아쉬워했지요. 대통령도, 고관대작도, 법조인도, 추기경이나 주교도 아닌 그를 말이지요. 무위당은 시골마을에서 시내까지 20분이면 갈 길을 2시간 걸려 다녔다고 합니다. 풀섶의 여치와 귀뚜라미와 민들레와 토끼풀과도 인사를 나눴겠지요. 동네 아이들, 노인들, 장돌뱅이와 말동무도 했고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갔더랍니다.

#선방에서 수행하던 수경 스님은 1990년대 환경운동에 투신해 환경운동을 주도하다 갑자기 잠적했습니다. 선승의 활발한 기상과 특유의 인간적 매력으로 ‘운동’의 에너지원이었던 그의 부재는 환경운동 판에도 깊은 상실감을 주었지요. 그런데 9년 만에 그의 이름이 달린 작은 책자가 배달되었습니다. 50여쪽에 불과한 <공양>이라는 소책자 머리말에서 그는 출가한 지 한달 만에 밥을 짓던 중 수챗구멍에 쌀을 흘려보냈다가 쫓겨날 뻔한 일화를 들려줍니다. 책자 속엔 장일순의 제자인 이철수 판화가가 새기고 수경 스님이 쓴 ‘공양송’이 담겨 있습니다. ‘이 밥은/ 숨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땅과 물이 나의 옛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그의 ‘진지’(眞知)가 아닐 수 없습니다.

#홍승완 감독의 <배심원들>을 보았습니다. 2008년 시작된, 국민이 참여하는 역사상 최초의 재판을 담은 영화입니다. 일당 10만원을 받기 위해 온 배심원 8명은 모친 살해 피의자와 같은 임대아파트에 살던 20대 여성, 파산신고해 ‘신용불량’ 상태에 있는 청년, 30년간 장례식장에서 주검을 닦은 염장이 등 배고프고, 넘어지고, 아프고, 서러워 본 적이 별로 없는 ‘높으신 분들’과 다른 약자들입니다. 이들은 아무도 동정하지 않은 채 살인범으로 낙인찍힌 피의자가 있던 아주 아주 낮은 곳으로 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껴 봅니다. 으르렁대는 개를 무조건 두들겨 패기보다는 ‘개가 짖는 것도 무서워서 그런 거잖아요’라는 배심원들의 감수성 점수를 사법시험 합격 점수보다 높게 쳐주고 싶습니다.

#감로수는 불교에서 고통중생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진리의 생명수’입니다. 조계종이 지난 2010년 수익사업을 해 승려노후복지기금으로 쓴다는 명목으로 ‘감로수’란 생수의 상표권을 팔아 사찰들에서 팔게 합니다. 약수물이 좋은 산사에조차 반환경적인 페트병들이 나뒹구는 것부터 모양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표 사용료 가운데 5억원이 넘는 돈이 자승 전 총무원장 관련자가 내부이사로 등록된 단체에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조계종 총무원 노조에 의해 제기됐습니다. 그러자 종단은 노조원 3명을 징계했습니다. 수사가 진행 중이니, 사실관계를 확인한 이후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할 사안임에도 미봉만 서두르고 있습니다.

조계종은 지난해 11월 원행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취임했지만, 여전히 자승 스님이 상왕으로 군림한다 합니다. 위만 쳐다보면 낮은 곳의 목소리가 들릴 리 만무합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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