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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작고 가난한 교구여서 ‘기쁘고 떳떳하게’ 함께 할 수 있죠”

등록 2019-05-28 01:21

[짬] ‘설립 50돌’ 맞은 안동교구 두봉·권혁주 주교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인 두봉(오른쪽) 주교와 현 주교장인 권혁주(왼쪽) 주교가 지난 24일 함께 교구 설립 50돌을 축하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인 두봉(오른쪽) 주교와 현 주교장인 권혁주(왼쪽) 주교가 지난 24일 함께 교구 설립 50돌을 축하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작은 곳이 아름답다.’ 가톨릭 안동교구엔 주교 2명, 신부 90명 등 92명의 성직자가 있다. 주교 6명, 신부 912명인 서울대교구에 견줘봐도 그렇고, 국내 16개 교구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다.

안동교구가 설립 50돌을 맞았다. 지난 26일 오후 안동 실내체육관에서 교구 성직자와 신자들 7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지난 50년간 급격한 이농으로 교구민이 138만명에서 71만명으로 절반 가량이 줄었다. 세례를 받았던 수많은 이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버렸으니 감사함보다는 쓸쓸함이 깃든 교구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난 24일 안동 안기산 숲으로 둘러싸인 안동교구청에서 만난 초대 교구장 두봉(90) 주교와 현 교구장 권혁주(64) 주교에게는 사랑이 샘솟는 듯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주교 2명·신부 90명’ 전국 최소 규모
이농탓 교구민 138만명에서 절반으로 줄어

1969년 첫 교구장 프랑스인 두봉 주교
“한국전때 절친 전사해 ‘운명’ 같은 나라”
공자 말씀 외워 안동유림들과 열린 소통
청년시절부터 멘티였던 권 주교 ‘뿌듯’

두봉 주교가 50년 전 안동교구 설립 때 자신이 지은 사목 표어대로 ‘기쁘고 떳떳하게 살자’며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두봉 주교가 50년 전 안동교구 설립 때 자신이 지은 사목 표어대로 ‘기쁘고 떳떳하게 살자’며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프랑스인 두봉 주교는 작은 키와 구순의 노구에도 천의무봉의 꾸밈없는 발랄한 아우라를 방사했다. 청년시절부터 자신을 멘토로 삼아 어엿하게 성장한 권 주교를 바라보는 눈에도 사랑과 신뢰가 가득했다.

두봉 주교가 이른바 ‘잘 나가는’ 큰 교구가 아닌 안동교구에 자리잡은 것은 ‘운명’이었다. 그는 잔다르크의 땅으로 유명한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소도시의 변두리에서 농사 지은 채소를 팔아 생계를 꾸렸고, 5형제에 사촌들까지 7형제가 복닦대며 함께 자랐다. 그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로 한국에 파견됐다. 앞서 군복무 시절 가장 친하게 지내던 고아 출신 전우가 한국전에서 전사했다는 그는 친구가 목숨을 바친 땅이자 너무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 한국에서 부름을 받아 기뻤다고 했다.

그러나 대전에서 15년을 지낸 뒤 1969년 안동교구가 설립되면서 첫 교구장으로 부임받을 때는 그는 오고 싶지 않았단다. 교황청 주도로 열린 제2바티칸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기존의 닫힌 교회에서 벗어나 이웃과 세상에 활짝 열린 교회를 만들 꿈에 부풀었는데, 유교의 고장 안동은 전통만을 고수해 좀처럼 열린 교회를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안동에 온 그는 유림들과 첫 상봉 때 ‘공자님 말씀’을 외워서 언급하며, 스스로 열린 모습으로 지역민들의 마음을 열었다.

안동교구가 1973년 건립한 안동문화회관이야말로 열린 교회의 마중물이었다.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빈약한 재정 탓에 성당이 하나 뿐인 교구에서 이제 그럴 듯한 교회 본당을 지어보자는 성직자와 신자들의 오랜 바람을 제치고, 두봉 주교는 ‘가톨릭’이란 이름도 들어가지 않은 문화회관을 건립했다. 그 시절 안동에서 가장 높은 6층에, 최초로 엘리베이터까지 있는 이 건물은 예식장과 음악다방까지 갖춰 안동시민의 안식처가 되었다.

무엇보다 두봉 주교는 농촌사목의 대부였다. 1978년 안동가톨릭농민회 창립 이듬해 이른바 ‘오원춘 사건’으로 알려진 ‘씨감자 피해보상 농민운동’에서 그는 고문 당한 농민편을 들었다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았다. ‘한국 교구의 교구장은 한국인 주교가 맡아야 한다’며 이미 4번이나 교체를 자청했던 그였지만, 그때는 ‘괜한 말썽을 일으킨다’는 교황청의 사임 요구에 ‘그런 이유로는 그만둘 수 없다’며 버텨냈다.

권혁주 주교는 1983년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안동교구 합창 본당 보좌신부로 사목활동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 3대 안동교구장을 맡고 있다.
권혁주 주교는 1983년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안동교구 합창 본당 보좌신부로 사목활동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 3대 안동교구장을 맡고 있다.
두봉 주교는 1990년 퇴임 뒤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경기도 고양 행주산성 부근 조립식 가건물로 된 공소에서 지냈다. 2004년 권 주교의 간청으로 인근 의성의 작은 공소로 옮겨온 그는 70평 남짓 작은 텃밭을 손수 가꾸며, 지금도 전국 곳곳으로 피정 강연을 다니고 있다. 2012년 만해실천대상 상금 3천만원과 부모의 유산까지 모두 안동교구에 기증할 정도로 그의 교구 사랑은 지극하다.

권 주교는 “50돌을 맞아 다시 다짐하는 사목표어 ‘기쁘고 떳떳하게’는 두봉 주교님이 취임 때 표어로 정해 입에 달고 사는 말씀”이라고 했다. 그는 “안동교구가 가난하고 작았기에 가족처럼 서로 알고 함께 할 수 있었다”며 “부족한 가운데도 나누면 기쁘고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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