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대화법 교육에서 김영옥 강사의 지도로 자칼식 공격과 기린식 비폭력 대화를 연습해보는 참가자들.
사람들 틈에 있어도 왜 혼자인 것만 같을까. 열린 공간에서 말할 자유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왜 새장에 갇힌 새처럼 숨이 막힐까. 제대로 된 소통이 없는 불통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현상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다 됐지만, 혀 속에 숨은 칼로 이 순간도 많은 이들이 베여 신음한다.
7월19~21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한국비폭력대화센터(www.krnvc.org:5009)엔 17명이 처음으로 비폭력 대화를 배우는 사흘 일정의 ‘엔브이시1’(NVC1) 코스에 참여했다. 더는 말로써 남을 죽이지 않고, 말이 칼이 아닌 꽃이 되게 하는 걸음마를 시작했다. ‘엔브이시’란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의 약자다. 장자, 간디, 마틴 루서 킹, 크리슈나무르티, 마르틴 부버, 칼 로저스 등의 영향을 받은 미국 임상심리학 박사이자 평화운동가인 마셜 로젠버그(1934~2015)가 창시한 대화법이다. 한국에는 2003년 캐서린 한이 들여와 갈등 해소 프로그램으로 학교와 마을 등에서 주목받고 있다. 적잖은 수강료에도 조기 마감될 만큼 인기가 있다. 김영옥 강사가 진행하는 대화 모임 참석자들은 대부분 직장인이었다. 김 강사는 “비폭력 대화법은 외국어를 배우듯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솔직하게 말하기, 공감으로 듣기 대화의 기본은 말하기와 듣기다. 말하기와 듣기는 누구나 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난조로 말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제대로 된 말하기와 듣기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이곳에선 ‘솔직하게 말하기, 공감으로 듣기’를 강조한다. 이때 한 참석자가 질문했다. ‘말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듣는 건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비난 섞인 말을 들어야 할 때는 어떻게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자 김 강사는 “들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돌려주는 것(말)은 선택해서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할 때는 ‘나’에 대해서만 말하고, 들을 때는 ‘너’에 대해서만 들으라고 한다. 가령 ‘부장님은 너무 권위적이야’라고 말할 때, 이것은 ‘내 느낌’이 아닌 ‘타인’(부장)을 말하는 것이다. 대신 ‘부장님이 오늘 내 보고서를 다 읽어보지도 않고 다시 써오라고 했을 때 서운했어’라고 했다면 ‘나에 대한’(자기 느낌) 것을 표현한 것이다. 듣기의 경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어휴, 열 받아” 하며 책가방을 던지고 누워버렸을 때 “엄마한테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라고 한다면 ‘나의 느낌’을 말한 것이지만, 대신 ‘무슨 속상한 일 있었는지 엄마한테 말해줄 수 있어?’라고 한다면 ‘너의 느낌’을 들어준 것이다.
■ 관찰, 느낌, 욕구, 부탁 비폭력 대화법에서 첫번째로 숙지해야 하는 모델이다. 대화가 산으로 가는 이유의 대부분은 자신의 판단과 평가를 사실과 혼동하는 것이다. 가령 “네가 나를 무시했을 때~”라고 한다면 ‘사실’이 아닌 자신의 판단이다. 그보다는 ‘네가 오전 회의 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잘라버렸을 때’라고 비디오로 찍듯이 ‘관찰’한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다음이 비폭력 대화법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 표현이다. ‘느낌’이란 뭉클해, 황홀해, 유쾌해, 후련해, 홀가분해, 짜릿해, 까마득해, 염려돼, 섬뜩해, 조마조마해, 떨려, 슬퍼, 서글퍼, 우울해, 화나 등이다. 대부분은 말할 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일쑤다. 가령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라고 하는 건 생각이다. 이와 달리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서운해’ 하고 ‘자기 감정’을 말하는 게 느낌 표현이다. 김 강사는 “요즘 학생들은 ‘좋아, 나빠, 헐, 대박, 빡쳐’ 등 몇 가지로만 표현을 고착화하는 경향이 강한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느낌 표현이 중요한 것은 이 느낌을 통해 나 자신 혹은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느낌 속에 ‘욕구’가 담겨 있어서다. 비난하는 말의 속내엔 욕구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가령 ‘그는 너무 거만해’라고 하는 말 속엔 ‘그가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줬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담겨 있다.
대화법의 대미는 ‘부탁’이다. 부탁은 막연하게 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가령 “우리 사무실에서는 좀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만듭시다”가 아니라 “아침에 출근할 때 먼저 바라본 사람이 항상 인사를 합시다”라고 하는 게 좋다.
김 강사는 “이런 모델이 잘 떠오르지 않으면 상대방의 의중을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비폭력 대화가 된다”고 했다. 가령 엄마가 “순희야, 저 가게에 가서 두부 좀 사와”라고 하기보다는 “순희야, 두부 좀 사다 주면 좋겠는데,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어주면 비폭력 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 ‘기린과 자칼’이 되어보니 참석자들은 대화 모델을 익힌 뒤 기린과 자칼이 되어서 실제 대화 상황을 연습해본다. 기린은 비폭력 대화의 상징이고, 자칼은 공격적인 언어를 쓰는 이를 상징한다.
만약 상사로부터 ‘김 대리, 이것밖에 안 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칼식 반응은 ‘왜 맨날 나만 미워해?’라고 공격하든지, ‘그래 나는 제대로 하는 게 없어’라고 자신을 할퀴게 된다. 그러나 비폭력 대화를 익혀 기린식이 된다면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다는 ‘저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고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든지, 아니면 ‘내가 이걸 좀 더 정확하게 수치로 써냈으면 좋겠다는 거지?’라고 공감한다.
비폭력 대화법을 해본 30대 남성은 “이성만 발달해서 나는 감정도 없고 공감 능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기린 연습 도중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공감해주는 말을 들으니 울컥해졌다”고 고백했다. 50대 여성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눈치는 너무도 잘 살피며 살아왔는데, 나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모르고 방치해둬 나는 ‘늘 괜찮다’고만 해왔다”고 말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50대 여성은 “진심 어린 공감의 말을 듣는 순간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생애 처음으로 달콤한 눈물을 흘렸다”고 감격해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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