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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 첩경…하루 5분씩 성찰을”

등록 2020-01-22 09:00수정 2020-01-22 09:06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없애버리려 보면 풀 아닌 게 없고
좋게 취하여 보면 꽃 아닌 게 없어
‘감사’야말로 모든 이의 기본 자세
남남 갈등은 오른팔-왼팔 간 다툼
‘둘 다 내 팔’인데 싸울 게 뭐 있나

나라의 장래는 어디로
나라도 아이도 아프면서 크는 법
고난은 오히려 좋아지게 되는 계기
못사는 동생 돕는 건 아름다운 일
차별의 업과 미움이 녹을 때 통일
정신 못 차리면 그때가 와도 놓쳐
더 나은 미래 위해 성찰의 시간을
인터뷰/원불교 최고지도자 김주원 종법사

원불교 최고지도자 김주원 종법사가 한국의 비전을 말하고 있다.
원불교 최고지도자 김주원 종법사가 한국의 비전을 말하고 있다.

전북 익산 신용동 원불교중앙총부는 원불교답다. 드넓은 터임에도 허세스러운 위용을 뽐내기보다는 예스럽고 고즈넉한 평온이 깃들어 있다. 민족의 명절인 설을 앞두고 최대 민족종교인 원불교의 최고지도자 전산 김주원(72) 종법사를 찾았다. 그는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정산 송규 종사, 대산 김대거 종사, 좌산 이광정 상사, 경산 장응철 상사에 이은 여섯번째 종법사다. 그는 2018년 11월 취임 이후 매일 새벽 4시 반부터 한시간 반 정도 총부에 사는 대중 100여명과 함께 선(禪)을 하고 식사도 대중과 함께 하는 등 남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오래도록 논의만 하고 진전이 없던 여자 교무의 결혼 허용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다. 올해는 중앙총부와는 독립된 종법사까지 갖춘 미주총부를 미국에 설립해 세계 교화의 새로운 장을 열 계획이다.

전산 종법사는 젊은 시절부터 성격이 주밀하고 빈틈이 없는 칼 같은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겨울 추위를 녹일 법한 따뜻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어제의 그가 아닌 듯했다. ‘수행을 하면 기질도 바뀌는 것이냐’고 물었다.

“어려서는 소심한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도하고 사무나 보는 줄 알았으니 교무가 됐지 대중들 앞에서 설법을 해야 한다면 교무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중 앞에 서서 말을 자주 하니 많이 바뀌었다. 원불교에 들어온 뒤에도 젊은 시절엔 수도한다고 성격과 기질이 과연 바뀌는지 의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기질도 없는 바탕의 자리에서 단련하다 보면 탁 트이게 된다.”

그러면서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란 글귀를 일러준다. ‘나쁘다고 하여 제거하려고 하면 풀이 아닌 것이 없고, 좋게 취하여 보면 모두가 꽃이다’라는 뜻이다. 자기 성격이나 타인의 특성에 대해서도 백안시하기보다는 수용하는 게 성현군자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성현의 표상으로 믿어 의심치 않은 대산 종사의 일화를 들려준다.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들어와 대산 종법사의 시중을 드는 시자로 처음 한방에서 모시고 잘 때였다. 긴장하고 있다가 새벽에 종소리가 나자마자 벌떡 일어났는데, 대산 종법사께서는 ‘좀 더 자라’고 했다. 신참자가 설사 늦잠을 자더라도 깨워서 참선을 시키셔야 할 분이 왜 ‘좀 더 자라’고 했을까가 평생의 화두였다. 그 어른들의 자비심을 따를 수가 없다.”

그가 원불교 교도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할 첫 자세로 ‘감사’를 꼽는 것도 감사야말로 자신이 행복해지는 첩경일 뿐 아니라 성현이 되는 수행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남 갈등, 북-미 갈등, 한-미 갈등 상황에선 ‘감사보다는 원망’, ‘꽃보다는 꼴불견’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그는 요즘 미군 주둔비를 5배나 더 내놓으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꽃 보듯 한다. 그는 “트럼프가 큰일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을 국제사회로 끌어내지 않았는가”라고 했다. 그는 남남 갈등에 대해서도 “어른이 되어 지견이 열리면 더는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북 익산 원불교중앙총부에서 산책 도중 교무들과 교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김주원 종법사.
전북 익산 원불교중앙총부에서 산책 도중 교무들과 교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김주원 종법사.

“오른팔과 왼팔이 다쳤을 때 서로 내가 더 아프다며 나를 먼저 치료해 달라고 떼를 쓰겠지만 몸의 입장이 되어 보면 싸울 일이 있겠는가. 오른팔도 내 팔이고 왼팔도 내 팔인데 급한 팔부터 치료하는 것이니 다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은 어린아이의 시야여서 다툰다는 것이다. 인터넷 뉴스와 유튜브를 보면 이 나라가 금방 사달이 날 것 같은데도 그는 어둠마저 빛으로 돌린다.

“아무리 큰소리가 나도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을 당하고,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했을 때만큼 불안할까. 그때 중앙청 공무원 국장으로 근무하던 교도가 신도안에 머물던 대산 종법사를 찾아와 ‘나라가 너무 혼란하고 불안해 이민을 가는 사람까지 많아지고 있다’며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물은 것을 보았다. 그때 대산 종법사께서 촌각도 지체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 교도에게 ‘아이 키워 보았느냐’며 ‘아이는 아프면서 크는 법’이라고 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한국은 진급기에 있다’고 했다. 한국은 생명력이 왕성한 시운이니,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일로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게 계기가 되어 더 좋아지고, 좋은 일이 생겨도 그로 인해 좋아지게 되어 있다. 한때 학생들 데모로 나라가 금방 망할 것 같다는 소리가 나왔어도 그 진통이 좋은 사회를 만들어간 것처럼 다 좋은 쪽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갓난아기는 때때로 아프기는 하지만 계속 커가는 것이 정해진 이치라는 것이니 희망에 설레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정산 종사의 말을 빌려 “홍경래 난 이후 쌓인 차별의 업과 미움이 녹을 때가 통일이 되는 때”라며 “잘사는 형이 못사는 동생을 돕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는 결국 중립국으로 통일될 것’이라고 한 정산 종사의 예언을 들려주었다.

전산 종법사는 긍정의 시운을 강조하면서도 ‘정신을 차리라’는 일침은 잊지 않았다. ‘아무리 시운이 와도 그릇이 성치 못하면 시운을 담지 못한다’는 경고였다.

“옛 선비들은 체면을 지킬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인도 지도자도 교수들도 돈 병이 들어 있다. 그렇게 병이 들고서도 병이 들어 있는 줄도 모른다. 돈과 권력 앞에서는 정신을 못 차리니 병도 중병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리기 위해 ‘5분의 성찰’을 제안했다.

“예전엔 가정에서도 도덕 교육이라는 게 있었지만 지금은 가정이고 학교고 학원이고 모두 인성 교육이 없이 이기는 법만 가르치니 사람의 도리를 배우지 못한다. 그러니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5분씩만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보자. 꼭 명상이나 선을 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도들은 기도를 하면 된다. 불자들은 참선을 하면 된다. 종교가 없는 이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기를 돌아보면 된다. 직장에서도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라도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건 종교인들이 해야 할 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국가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익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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