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캅 미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교수가 재작년 방한해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3천만명과 1백만명에 육박하는 ‘팬더믹’ 상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인류 문명은 지속 가능할까?
1971년 <너무 늦은 걸까?>라는 책을 통해 미국 신학계에 ‘생태신학’ 화두를 던졌던 미국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존 캅(95)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인류는 지속가능한 문명을 위해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15일 한신대가 개교 80돌을 맞아 온라인 비대면으로 연 심포지엄 ‘코로나19 이후 문명의 전환과 한국사회’의 특별 강연자로 나선 그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와 코로나19 등 자연의 대역습 앞에서 “우리는 근대성의 붕괴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근대성은 “근대적 사고 습관들이며, 서구 문화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이다. 근대적 사고 습관의 핵심은 자기와 다른 것들을 대상화하는 이원론적인 인식 구조다.
“자연과학을 이용해 인간을 위해 자연을 대상화하고 끝없이 착취하는 것”, “농산물의 대량생산을 위해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 “소득 불균형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경제체제”, “학생들을 산업화 발전의 도구로 여기고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인간 존중과 공감 교육을 포기하는 일”, “유럽연합과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남미와 아프리카의 경제적 연대를 방해”하면서 생존 위기의 파국을 맞고 있다는 게 캅 교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근대화가 파괴한 이전 문명으로 되돌아가야 할까?
그는 “우리가 근대성이 대체했다고 여긴 이전의 사상과 토착 문화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지만 ‘과거로의 회귀’는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근대화로 인해 철저하게 변화된 세계를 물려받은 우리는 이런 근대성으로 물든 이 세계의 모든 특징을 다시 검토하면서 한 걸음씩 전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새로운 문명이란 “통전적 생태유지가 이뤄지는 것”이다.
‘통전적인 생태’란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고 자연을 착취하던 근대성과 달리 통전적 생태는 “인간을 자연에 온전히 포함된 존재로 이해하는 것으로 새로운 문명의 기초”라는 설명이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라우다토 시’(우리의 공동의 집을 돌봄에 관하여)에서 통전적 생태유지를 요청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문명의 기대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문명 전환과 한국사회’
15일 한신대 개교 80돌 특별 강연
“근대성 특징 검토하며 한걸음씩 가야
타자, 자연 대상화 근대 사고에 의문
통전적 생태 유지가 새로운 문명”
“한국, 새 문명 리더십 발휘 기회”
코로나19 이후 미국 내 경찰 과잉 대응과 인종 차별 문제가 제기되면서 “‘무엇을 위하여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치안 유지 기능을 더 잘 수행되도록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함께 경찰제도 폐지와 같이 현대 문명의 핵심이면서도 뭔가 다른 문명을 상상하게 하는 심층적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캅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 근대 산업에 기반을 둔 농업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으로 많은 사람이 생태적 식품생산에 나섰고, 오직 상품과 서비스를 소유하고 늘리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경쟁적 개별자로서 ‘호모 에코노미쿠스’ 대신 공동체의 건강을 통해 더욱 많은 것을 얻으려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준비되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새로운 생태문명에서 국가들은 공동체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며 그런 공동체들은 그들 안에 있는 작은 공동체들을 존중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이러한 지역 공동체들을 튼튼하게 만들어 우리 앞에 높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규홍 한신대 총장이 15일 한국교회와 신학의 미래를 위한 선언을 하고 있다. 한신대 제공
한국을 수차례 찾은 그는 “한국은 세계를 우리 모두가 아주 긴급하게 필요로하는 새로운 문명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1925년 부모가 기독교 선교사로 일하던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그는 11살 때인 1936년 가족과의 중국 여행 중 한국을 들르는 등 지금까지 남북을 수차례 방문했다.
연규홍 한신대 총장 등 참석자들은 이날 심포지엄 뒤 “코로나19로 국민이 절망과 두려움으로 힘들어하는 동안 일부 극우 개신교 지도자와 교인들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반성과 회개”를 촉구하고 “코로나19 한국 신학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 신학’이어야 한다”는 ‘코로나19 이후 한국 교회와 신학의 미래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