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 신흥사에서 봉행된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의 부도탑과 비 제막식. 조현 기자
문학인들의 숨은 대부였던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의 부도탑과 비가 열반 3주기를 맞아 23일 오전 10시 강원도 속초시 신흥사에서 제막됐다.
2018년 무산 스님이 열반한 뒤에도 신흥사에 ‘조실’ 자리를 비워두고 무산 스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있는 신흥사 회주 우송 스님은 “무산 스님은 글은 화려했지만 삶은 남들은 도저히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검소하고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가리지 않았다. 스님의 뜻에 맞춰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게 탑비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제막식엔 조계종 원로의원 성우 스님, 대흥사 조실 보선 스님, 석종사 조실 혜국 스님,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조계종 총무부장 금곡 스님 등 스님 300여명과 주호영 의원,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 김한근 강릉시장 등 천여 명이 함께했다.
무산 스님의 탑과 비는 조계종 전 종정 고암 스님과 전 신흥사 주지 성준 스님의 탑비 옆에 나란히 세워졌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6살 때 동진 출가한 무산 스님은 낙산사, 백담사, 건봉사, 진전사 등 강원도 동부지역의 본사인 신흥사를 열반 때까지 40여년간 이끌었다. 특히 고인은 1997년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 만해마을을 열고 만해축전과 만해대상을 만들어 난민과 분쟁지역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발굴해 시상했다. <아지랑이> <아득한 성자> 등 200여 개의 구도시도 써 현대시조문학상, 공초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다.
스님은 청빈을 실천하며 절에 들어온 돈을 가난한 문인들과 사회적 약자와 빈자들을 위해 썼다. 제막식에 온 이근배·오세영·신달자·홍성란 시인 등은 하나같이 “스님은 만해마을을 만들어 시인과 소설가들의 아지트로 제공하고 <유심>을 창간하고 유심작품상을 만들어 문학인들을 남모르게 돌봐온 큰 나무였다”고 회고했다.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의 부도탑과 비 제막식. 조현 기자
23일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 신흥사에서 봉행된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의 열반 3주기 추모제. 조현 기자
스님은 2011년엔 반값등록금 촉구 집회에 나간 대학생들이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고 힘들어한다는 기사를 보고는 <한겨레>에 벌금 총액인 1억3천만원을 기부해 벌금을 대납하게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해 당시 ‘한 스님의 기부’로만 알려졌다. 전태일기념사업회를 남모르게 꾸준히 후원해온 사실도 훗날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스님의 평생 도반인 정휴 스님은 비문에서, 어려서 꼴머슴으로 절에 들어가 신산한 삶을 살면서도 보살도를 실현한 삶을 담아 “손끝으로 우주를 자유롭게 부리고/ 입으로 백억화신을 토해내니/ 이것이 무산의 시선일여(시와 선이 하나)의 선풍이로다”고 썼다.
속초/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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