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예술가 제람이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군대에선 제 존재 자체가 불법이었어요. 제 사랑이 불법이고, 제 관계가 불법이었죠.”
아직도 군대 경험을 악몽으로 만난다는 중장년들이 적지 않다. 몸에 새겨진 기억 때문이다. 36살 시각예술가 강영훈(활동명 제람)씨에게 군은 악몽이 아니라, 여전히 잔인한 현실이다. “존재가 불법이 되면 자아가 깨진다. 군 내 성소수자가 실재하는 이상 성소수자에게도 안전한 군대가 돼야 한다”며 국가가 끊임없이 합헌이라고 말하는 군형법 제92조의6의 폐지를 누구보다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군인·군무원·사관생도 등에 대해 항문성교 및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법은 합의하고 성관계를 맺는 경우도 처벌 대상에 포함해 군대 내 성소수자의 사생활의 자유와 인권을 과도하게 차별 침해한다며 수차례 위헌 소송을 거듭해왔다. 그사이도 피해자는 나오기 마련이다. 강씨는 자신과 같이 이 법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받은 전·현직 군인 6명(본인 포함)의 증언을 시각예술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복무 중 군 정신병원에 갇혔다. 잊을 수 없는 2008년 9월23일. 성소수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군에 알린 건 선임들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괴롭힘 탓이었다. 스트레스로 심한 두통을 겪자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몸과 정신이 버텨낼 리 없었다. 강씨가 쓰러지자 지휘관이 조사에 돌입했다. 강씨는 ‘본인을 믿으라’는 지휘관 말을 믿고 자신은 성소수자라며 커밍아웃을 했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강씨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부대 전체에 퍼졌다.
작가 제람의 전시 ‘유 컴 인, 위 컴 아웃-레터스 프롬 어사일럼’(You come in, we come out-letters from asylum). 강영훈 제공
군은 그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줬다. 부대 내 독방에 가거나, 군 정신병원에 가야 했다. 영창이 아닐 뿐 갇히는 건 같았다. 군형법 제92조 6항과 엮으려 했지만 강씨가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어 다른 선택지를 내민 것이다. 강씨는 “날 보호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하니 매일 눈 뜬 채 가위에 눌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는 하루도 못 있겠다 싶어 군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116일간의 군 정신병원 생활은 강씨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하루에 두 번 온몸이 나른해지는 약을 먹어야 했다. 약을 삼킨 뒤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내밀어 확인을 받았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하자 두 팔과 다리를 침대에 묶었다. 몸이 굳는다고 두 시간에 한 번씩 한쪽 팔과 다리를 풀어 잠시 마사지를 해주고 다시 묶었다. 2009년 1월 그는 군 정신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강씨의 어머니가 ‘국가와 군을 상대로 정신적, 육체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한 뒤였다. 그는 결국 히스테릭성 인격장애와 자아 이질적 동성애라는 진단을 받고 2009년 1월 조기 전역했다.
“군대에서 나오면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입대 전엔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니까. 그런데 사회 곳곳에 군대 문화가 스며들어 있더라고요.”
군 정신병원에 갇혔다 나온 뒤 생긴 트라우마는 공황장애로 번졌다. 강씨는 두 차례 직장에 들어갔지만 곧 그만뒀다. 스타트업 기업조차 군대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도망치듯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조직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오랜 꿈이었던 예술가의 길을 택했다. 강씨는 “영국에 정착한 지 2주 만에 공황장애 증세가 다 사라졌다. 성소수자인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혐오 발언을 한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는 곳이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겪던 공황장애가 사회적·관계적인 압박에 의한 질병이었음을 깨달았다.
작가 제람의 전시 ‘유 컴 인, 위 컴 아웃-레터스 프롬 어사일럼’(You come in, we come out-letters from asylum). 성소수자 군인의 증언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강영훈 제공
그가 ‘유 컴 인, 아이 컴 아웃-어 레터 프롬 어사일럼’(You come in, I come out-A letter from asylum)이란 작업을 하게 된 것도 영국에서 안전한 공간의 중요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세상 끝까지 가도 한국 사람이 있겠더라고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관계적 공간도 안전해야 제가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물리적 공간과 관계적 공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강씨의 작품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군 정신병원에 갇혔던 경험을 편지 형식으로 표현한 설치물이다. 강씨는 이 설치물에 ‘어사일럼’(asylum)이란 이름을 붙였다. 어사일럼은 망명 또는 정신병원이란 뜻이다. 망명의 의미로 작품을 해석하면 ‘피난처’, 정신병원이라는 의미로 작품을 바라볼 때는 ‘가두는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씨는 “공동체가 어떤 인식을 갖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이 사회가 피난처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유 컴 인, 아이 컴 아웃’이란 제목을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객들은 어사일럼 밖에선 유리에 비치는 본인 모습밖에 보지 못한다. 반대로 안으로 들어오면 바깥이 훤히 보인다. 사방으로 둘러싼 유리 벽면에는 강씨 등 성소수자 군인들의 증언이 빼곡히 적혀있다. “어사일럼 밖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리에 비치는 본인 모습밖에 볼 수 없다. 어사일럼 안에선 우리의 증언뿐 아니라 글 사이사이로 밖을 볼 수 있다. 공간에 들어와(유 컴 인) 관객은 기존의 편견과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는 그 덕에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아이 컴 아웃)는 걸 표현했다.”
작가 제람의 전시 ‘유 컴 인, 위 컴 아웃-레터스 프롬 어사일럼’(You come in, we come out-letters from asylum). 제람은 “유리벽 밖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리에 비치는 본인 모습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강영훈 제공
이 전시는 2018년 런던에서 처음 열렸다. 강씨의 증언만 담은 전시였다. 지난해 서울에서의 전시 땐 강씨를 포함한 4명의 증언을 담았다. 올해 앞둔 전시에는 군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아 6명의 증언을 담을 수 있었다.
증언에 참여한 이들의 복무 시기는 1998년부터 현재까지다. 23년,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군은 변하지 않았다. 1998년, 2008년, 2016년(2명)에 입대한 네 사람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군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올해 증언에 참여한 두 사람은 현직 직업군인이다. 이들은 2017년 성소수자 군인 색출사건의 피해자다. 육군 중앙수사단은 지난 2017년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의6을 위반했다며 형사처벌하도록 지시했다. 이 사건으로 20명이 넘는 군인들이 형사입건됐다. 일부는 재판에 넘겨졌고, 일부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증언에 참여한 한 군인은 성소수자 군인 색출 때 처참한 일을 겪어야 했다. 조사관이 그 앞에 책 한 권 분량의 인쇄물을 놓았다. 그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포렌식(디지털 증거 복원)한 것이었다. 성관계를 몇 번 했는지 세기 위해서였다. 강씨는 “성관계 횟수는 징계 수준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사랑을 했을 뿐인데 그 내용을 취조하고 횟수를 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군형법 92조의6이 문제인 건 우리 존재 자체를 불법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존재가 불법이 되면 자아가 깨진다. 군 내 성소수자가 실재하는 이상 성소수자에게도 안전한 군대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군형법 추행죄 폐지는 필수다”라고 했다.
성소수자 예술가 제람이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군형법 92조의6은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 헌법재판소는 세 번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 뒤 2017년과 2020년 각각 인천지법과 수원지법이 이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다시 위헌제청을 해 심리 중이다.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이 법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적 있었고, 21대 국회에서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건강하게 살다가 자연사해요.” 트랜스젠더 작가 김비는 썼다. 강씨는 이 글귀를 어디에선가 여러 이유로 고통받고 있을 성소수자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성소수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말을 전했다. “여러분들, 좋은 이웃이 되어 주세요. 우리 같이 살아요. 안전한 공간이 많아지면 여러분도 더 안전해질 거예요.”
작가 제람의 전시 ‘유 컴 인, 위 컴 아웃-레터스 프롬 어사일럼’(You come in, we come out-letters from asylum)은 오는 16일부터 26일(추석기간 휴관)까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청년예술청 그레이룸에서 열린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