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 피폭 희생자 1천여명의 위패를 모신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 위령각에서 청소년들이 참배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정부가 경남 합천군에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역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추모하는 시설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한국인원자폭탄피해자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열고 이러한 계획이 담긴 추모시설 설립추진계획을 심의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원자폭탄 피해자의 실태를 조사하고 지원에 필요한 내용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2017년 구성됐다. 근거법은 2016년에 제정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원폭피해자법)이다.
원폭피해자법에서는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지역에 있었던 사람 △원자폭탄이 투하된 때부터 2주 이내에 투하 중심지역 3.5㎞ 이내에 있었던 사람 △원자폭탄이 투하된 때와 그 이후 사체 처리 및 구호에 종사하는 등의 이유로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사람 △피해 사유에 해당하는 사람이 당시에 임신중이었던 태아 등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원폭 피해자는 4404명(지난 6월30일 기준)이고, 이 가운데 생존자는 2043명이다.
이번 회의에서 위원회는 원폭 피해자 실태분석 및 보건복지욕구조사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결과를 보면, 원폭 피해자들은 피해 이후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질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건강보험청구자료와 국가암등록자료, 사망등록자료 등 공공자료를 이용해 분석(2019년 7월∼2020년 3월)한 결과 원폭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자녀에게서도 방사능 피폭과 관련성이 의심되는 건강 문제가 보고됐다. 원폭 피해자와 자녀는 위암, 대장암 등의 암 발생률이 일반인구 집단에 견줘 높았고, 희귀난치성질환, 갑상선 질환, 만성비염·인두염·부비동염, 피부질환, 두통, 기분장애, 신경증성·스트레스 연관 신체형 장애 등 만성질환과 정신신경계질환 유병률도 높았다. 의료 이용과 의료비 지출도 원폭 피해자 자녀가 일반인구 집단에 견줘 많았는데, 특히 외래진료 이용률이 높았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복지부는 원폭 피해와 질병의 인과성, 유전적 영향을 분석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위원회는 경남 합천군(원폭피해자복지회관 및 자료관 인근)을 추모시설 조성을 위한 우선 고려 지역으로 심의했다. 합천군은 현재 가장 많은 수의 원폭 피해자(331명, 전체 2043명 중 15%)가 살고 있다.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아픈 역사의 희생자들을 가슴에 새기고 원자폭탄 피해의 상처와 고통이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도록 추모사업 추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며 “원폭 피해자 추모시설을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 정립과 인권 및 평화를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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