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51주기를 맞아 11월 13일부터 장학지원 사업을 시작할 예정인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을 위해 5억원을 출연한 최종인 청우회 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 1층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그동안 태일이 뒤를 따르지 못해서 항상 미안했어요. 다른 재단의 모범이 되는 아름다운 재단이 되면 나중에 태일이한테 갔을 때 덜 미안하겠죠. 그렇게 태일이랑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8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태일재단에서 만난 최종인(72) 청우회(청계피복노조의 친목모임) 회장은 50여년 동안 ‘전태일의 친구’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노동운동을 떠났어도 ‘태일이의 뜻’을 생각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친구와 친구 어머니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장학 사업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의 배움길을 터주는 일”은 남은 인생의 마지막 꿈이다.
오는 13일 전태일 열사 51주기를 맞아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이름을 딴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이 출범한다. 전태일재단은 8일 보도자료를 내어 “지난 9월 장학재단 법인 설립 등록을 마치고 전태일 열사의 51주기인 13일부터 본격적인 장학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이 장학재단 설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작은 건물을 담보로 5억원을 대출받아 재단 설립에 필요한 종잣돈으로 내놨다. 최 회장은 2015년에도 한 달에 80만원씩, 10년 동안 모은 1억원을 전태일재단에 장학 사업을 하라고 기탁했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재단 장학금을 지원받은 사람은 청우회·노동운동 및 시민사회운동 활동가, 이주노동자와 자녀 등 99명에 이른다.
최 회장은 “올해면 이 기금을 다 쓰게 되는데, 장학 사업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장학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을 펼쳐나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최 회장의 생각이 알려지자 청우회 회원과 전태일 열사의 가족 등이 십시일반 보태 약 1억원이 더 모였다. 앞으로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은 10만 후원회원 가입 운동을 벌여 기금을 100억원으로 늘리고, 불안정 노동자와 사회활동가 자녀에 대한 학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전태일 열사와 함께 평화시장‧동화시장‧통일상가 등에서 일하는 재단사들이 모인 삼동회를 만들었다. 삼동회는 노동환경 실태조사, 근로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 제출과 집회·시위 등을 벌였다.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한 1970년 11월13일, 최 회장은 불이 붙은 전태일 열사의 몸을 겉옷으로 덮어 끄려고 애썼다. “그 광경을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눈물이 나와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는 이후 청계피복노조를 만들고 지부장까지 맡았으며, 지난 50여년 동안 전태일 열사와 관련된 각종 기념사업, 모금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왔다.
최 회장은 “살아있는 동안 태일이의 뜻이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라며 “(이번에 출범하는 장학재단이)태일이의 목표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마음껏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아름다운 장학재단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 51주기를 맞아 11월13일부터 장학지원 사업을 시작할 예정인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을 위해 5억원을 출연한 최종인 청우회 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 1층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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