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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건보 자격 부정당한 동성부부 “우리를 증명하는 과정, 괴롭고 모욕적”

등록 2022-01-07 18:27수정 2022-01-07 18:32

소성욱씨 부부, 피부양자 자격 소송 패소 뒤 기자회견
변호사 “전국민 건보만큼은 사실혼 배우자 인정해야”
“다른 시민들처럼 권리 인정받을 때까지” 항소 방침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볍원 앞에서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소송을 낸 김용민(오른쪽) 소성욱 커플이 1심 선고 결과 관련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볍원 앞에서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소송을 낸 김용민(오른쪽) 소성욱 커플이 1심 선고 결과 관련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저희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순간, 남은 한 사람이 ‘남’으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희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헌신하는,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는 ‘동반자’입니다. 저희의 관계를 인정받는 그날까지 싸우겠습니다. 사랑은 결국 이깁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인 배우자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소성욱(31)씨의 남편 김용민(32)씨가 1심 패소 직후 전한 심경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7일 “현행법 체계상 동성 부부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혼인이란 우리 법상 여전히 남녀의 결합”이라며 동성혼의 인정 여부는 입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본 것이다. 소송 당사자인 소씨 부부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 등은 선고 직후 서울시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시민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동성 부부에게도 부여하라”고 외쳤다.

소씨 부부는 2017년부터 함께 살고, 2019년 5월 결혼식을 올린 동성 부부다. 이들은 2020년 2월 건보공단에 ‘직장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동성 배우자인 소씨를 등록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고, 공단으로부터 ‘사실혼 관계 배우자는 피부양자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안내를 받았다. 이에 김씨는 소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한겨레21>을 통해 알려지자, 건보공단은 일방적으로 소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했다. 동성 배우자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될 수 없으며 지난번 등록 조처는 실수였다는 것이다. 이에 소씨 부부는 지난해 2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법원이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실혼 관계의 범위를 한정적으로 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사자인 김씨는 “우리는 10년차 커플이다. 결혼식에 300명이 넘는 하객이 참석해 우리의 관계를 인정해줬다. 재판 과정에서도 결혼식 사진부터 청첩장, 우리가 함께 해왔던 순간을 담은 사진과 영상 등을 증거 자료로 내며 끊임없이 우리가 부부임을 증명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우리가 부부가 아니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법률 대리인인 김지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사실혼 관계의 전제를 결국 남녀의 성별을 갖춘 사람들만 해당된다고 본 것”이라며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국민건강보험제도에서만큼은 동성 부부도 사실혼 배우자의 실질적인 성격이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가 권리 확대의 역할을 입법부에 미룬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앞서 재판부는 “(동성혼) 인정 여부는 개별 국가의 합의에 따라 결정될 일로, 원칙적으로 입법의 문제”라며 “우리나라 안에서 구체적인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개별 법령의 해석만으로 곧바로 혼인의 의미를 동성 간 결합으로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국회 입법에 앞서 법원이 판결을 통해 권리를 확장해온 사례들이 많다. 2006년 대법원이 호적법 조항을 확장 해석해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을 인정한 사례가 단적인 예다. 오늘 판결은 법원이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소씨 부부는 “끝까지 싸우겠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우리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너무나 괴롭고 모욕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다른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우리에게도 주어질 때까지 싸우겠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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