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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수원 세모녀…‘왜 발견 못했나’ 대신 ‘왜 숨어야 했나’ 물어야

등록 2022-09-01 05:00수정 2022-09-01 17:47

[수원 세모녀 비극 그 후] 기고
2020년 2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송파 세 모녀 6주기 및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추모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추모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복지사각지대 해소 대책들이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발표되었지만 빈곤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20년 2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송파 세 모녀 6주기 및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추모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추모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복지사각지대 해소 대책들이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발표되었지만 빈곤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14년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송파 세 모녀가 있었다. 이들의 죽음 이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있는 복지 제도도 활용하지 못하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라며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회는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급여법)을 제정했다. 이는 두 가지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됐는데, 송파 세 모녀가 생전에 아무런 복지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믿음과 신청만 했더라면 복지 수급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송파 세 모녀는 복지 신청을 시도한 적이 있고, 신청했더라도 탈락하거나 안정적으로 급여를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가구원 전원에게 근로능력이 있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발굴이 아니라 제도가 문제’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잘 찾으면 된다는 기술주의적 해법은 광범위한 정보 수집으로 연결됐다. 급여법의 입수 정보는 18종으로 시작해 34종까지 늘었다. 문제는 이를 통해 빈곤층을 발굴하더라도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지원할 방법이 적고, 체납 정보의 단순한 합이 ‘누구의 빈곤이 더 심각한가’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송파 세 모녀는 임대료나 공과금을 체납하지 않았으니 지금의 정보 수집 방식으로는 발견되지 않는다. 2022년 창신동에서 사망한 모자는 공과금을 체납하고 어려운 사정인데도, 집을 갖고 있어 수급 신청에서 탈락했다. 2019년 관악구에서 사망한 탈북 모자는 관리비 등을 체납했지만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어 정보 수합 대상이 아니었다. 정부의 대책은 ‘재개발 임대아파트도 정보 수합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공적 자료와 실제 삶 차이

우려스러운 건 신용정보를 비롯한 각종 민감 정보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이라는 미명 아래 한 바구니에 담기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유엔(UN)은 광범위한 정보 수집을 통해 자동화된 결정 구조가 복지제도를 새로운 ‘디지털 디스토피아’로 만들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 위험은 이미 한국에서도 일부 현실이 됐다. 정부가 오로지 전산망에 잡히는 숫자만을 보며 발굴에 골몰하는 사이 정작 가난한 이들은 공적 자료에 보이는 본인의 정보와 실제 생활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까다로운 선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지만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홀로 싸우고 있다.

왜 발견하지 못했냐는 질문을, 세 모녀는 왜 숨어야만 했는가로 수정해야 한다. 병력을 가진 가족이 있으면 함께 가난으로 침몰하고, 가난할수록 고리의 대출에 노출되는 현실, 불법적인 채권 추심이 이들의 마음마저 병들게 하고 끝내 세상으로부터 숨기를 택하게끔 했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고리의 대부업을 근절하고, 불법적인 추심 행위를 막고, 채무자들에게 도덕적 해이라는 낙인이 아니라 두번째 삶을 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최종적으로 빈곤 위기에 빠지더라도 경멸 대신 인간다운 삶의 보장으로 응답하는 것, 이것이 정말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인지 되묻고 싶다.

빈곤은 각 사회의 구성물

빈곤연구자 루스 리스터에 따르면 ‘빈곤은 각 사회의 구성물’이다. 단지 소득의 부족만으로 빈곤을 이해하는 것은 역부족이며, 시민권의 축소, 비존중이나 굴욕과 같은 사회관계적 측면에서 빈곤을 파악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빈곤의 모습은 더욱 다양해진다. 티브이(TV) 속 예능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소비로 행복한 삶의 기준을 갱신할 때마다 새로운 유형의 가난도 생겨난다. 잘사는 나라 한국이 만들어낸 불평등은 성공한 소수를 제외한 이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전가하고 있다.

어떤 가난은 순식간에 삶을 점령하지만, 어떤 가난은 서서히 무릎 꿇린다. 불안정 노동, 저임금, 경쟁적인 사회제도에서 긴 시간 경험한 좌절과 낙담, 단념에 이르는 심리적 외상은 우리의 몸에 새겨진 빈곤의 결과 그 자체다. 비극적이게도, 가난을 짊어진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내미는 복지제도는 무수한 탈락의 가시밭길이었다. 지난 이십년간 반복된 가난한 이들의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큰 변화를 일구지 못했다. 이제 최소한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역량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범위에서 불평등 해소, 평등과 반차별을 위한 변화를 일구어야 한다. 빈곤, 그 자체에 맞서야 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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