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플래너 한가람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한국웨딩플래너협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명절 때면 결혼을 하지 않은 성인은 어르신들의 잔소리 ‘돌직구’를 피하기 어렵다. “결혼은 언제쯤 할 거니?” “만나는 사람은 있는 거니?” 이런 질문은 성소수자에게도 날아든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한국웨딩플래너협회(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웨딩플래너 한가람(31)씨는 “명절 뒤 성소수자 커플의 상담 요청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며 “그즈음 결혼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 동거를 하던 커플들도 결혼식을 한번쯤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한씨는 성소수자 커플의 결혼식 상담 요청이 드물지만, 지난 설 명절 뒤 한달에 20건 이상의 상담이 들어왔다고 했다.
동성혼이 법제화된 여러 나라와 달리, 국내에선 성소수자 커플의 결혼식은 아직 보편화하지 않았다. 웨딩업계도 비성소수자 커플만을 타깃으로 한다. 한씨는 20대 내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인권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런 한씨는 단체가 아닌 ‘시장’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대안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웨딩서비스회사에 입사하는 대신 자율성이 높은 협회에서 웨딩플래너로 활동하며, 성소수자·장애인 커플 등 소수자 웨딩 전문 상담을 포함하는 예식 서비스 ‘프라이드 웨딩’을 시작한 이유다. “성소수자 커플은 같은 소비자인데도 예식을 올리려면 넘어야 할 문턱이 더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업계 자체가 비성소수자 고객만을 타깃으로 두고 있으니….성소수자가 웨딩업계에서 똑같은 소비자로 여겨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한씨도 초반엔 ‘문턱’을 실감했다. 지난해 초 처음으로 성소수자 예비부부의 예식을 맡았다. 예식장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주변이 고위층 인사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조심스러워서요.” “내부 방침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아요.” 한씨가 예식장을 알아보다 들은 얘기다. 그는 “예식장 쪽에서 거절하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국 혐오를 기반으로 한 말들이었다. 성소수자 예비부부를 맡을 때 특히 유의하는 점은 이들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상처받아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소수자 예비부부도 걱정이 앞서긴 마찬가지다. 결혼식 준비를 위해서 예식장이나 웨딩드레스숍을 드나드는 건 당연한데 긴장을 하곤 한다. “고객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이나 요청을 할 때도 (성소수자 예비부부는) ‘죄송하다’는 말을 유난히 많이 쓰세요.”
결국 웨딩업계도 ‘시장’이다. 이익이 된다면 변하기도 한다. “성소수자 커플인 게 왜 문제가 되죠?”라며 오히려 되묻는 곳도 늘었다. 지금은 성소수자 예비부부가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업체들을 정리한 한씨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그는 “원래 예식장을 돌아다닐 때 업체는 웨딩플래너가 동행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소수자 예비부부라고 하면 혹시나 실례되는 언행을 할까 봐 동행을 요청한다”고 했다. 미리 연락해 호칭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곳도 있다. 한씨는 업체에 ‘신랑님·신부님’이란 호칭 대신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거나 ‘예비부부님’이란 중립적 용어를 써달라고 요청한다.
웨딩플래너 한가람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한국웨딩플래너협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성소수자 커플의 결혼식장에선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별명 등을 쓴다. 비성소수자 커플의 결혼식에서 당연히 볼 수 있는 예비부부의 사진도 반지를 낀 손 사진 등으로 대체한다. ‘아웃팅’(타인이 성정체성을 강제로 공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결혼식에 앞서 웨딩 촬영을 할 때나 웨딩드레스숍 등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커플과 마주치지 않게 하거나 아예 한 커플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한씨는 “성소수자 커플은 아웃팅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신경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남들이 하는 걸 똑같이 할 수 있을까’란 걱정에 떨려서 잠을 못이뤘어요. 그런데 웨딩플래너님 덕에 차근차근 식을 준비하고 있네요. 오늘 저희도 축복받을 수 있는 예비부부란 걸 느껴서 너무 행복했어요.”
최근 한씨는 결혼을 앞둔 한 성소수자 예비부부에게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예비부부와 함께 예물가게와 웨딩드레스숍 등을 둘러본 날이었다. 한씨와 예비부부가 찾은 곳은 비성소수자 커플이 주로 가는 곳이었다. “알음알음 성소수자 커플을 받아주는 곳만 찾아다니는 게 더 쉬웠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또 성소수자를 다른 울타리에 가두는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소수자가 이 웨딩업계에서 당당한 소비자로 여겨지도록 만드는 게 제 목표예요.”
단기적인 목표도 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 커플을 위한 ‘웨딩 플랜 가이드’를 만드는 것이다. “협회에서 교육 자료를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남녀로 한정된 표현을 성중립 용어로 바꾸는 일이었어요. 이걸 시작으로 지침서를 만든다면 다른 웨딩플래너나 웨딩업체도 성소수자 예비부부를 맡는 일이 덜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이 일을 하다 보니 장애인, 이주민 등 많은 소수자가 웨딩시장에서 배제돼 있더라고요. 다음엔 또 어떤 예비부부가 오실지 모르니까 열심히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어요.”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