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모녀가 숨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 다세대 주택. 현관엔 5개월 미납을 알리는 전기요금 고지서가 붙어있었다. 채윤태 기자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정부 위기가구 대상으로 발굴되고도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가 달라 구청에서 모녀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8월 ‘수원 세 모녀 사건’과 판박이다.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행정안전부나 통신사로부터 연락처를 넘겨받아 위기가구 소재를 파악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신촌 모녀처럼 통신비를 6개월 이상 연체해 휴대전화가 정지된 경우에는 이 역시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신촌 모녀가 동시에 건강보험료 1년2개월, 통신비 6개월을 체납하고, 딸이 카드비 등 금융 관련 비용 납부를 7개월 밀린 사실을 확인하고 위기가구 대상으로 발굴했다. 8월에는 모녀의 주민등록 주소지가 있는 서울 광진구청의 공무원이 두 차례 주소지를 방문했으나, 모녀를 만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모녀가 서대문구로 이사간 뒤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 사회보장 급여 신청 이력이 없어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도 전화번호가 등록돼 있지도 않았다.
정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대책’에 따르면 사회보장 급여 신청 이력이 없어도 행정안전부와 통신사가 보유한 주소와 연락처 등 위기가구의 정보를 넘겨받을 수 있다. 또 전입신고를 할 때 세대주뿐만 아니라 세대원의 연락처도 쓰도록 전입신고서의 서식도 개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선 법과 시행령이 개정돼야 한다. 통신사와 행안부로부터 위기가구 연락처를 확보하기 위해선 지난 10월4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위기가구의 상세주소와 연락처를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확보하고 전입신고서 서식을 개정하기 위해선 사회보장급여법·주민등록법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 사안이 시급함에도 정부가 목표로 하는 법 개정 시점은 내년 12월이다. 잦은 주기로 반복되는 판박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이 너무 더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여야 합의로 법안이 정부 예상보다 빨리 통과될 가능성도 있지만, ‘신촌 모녀’와 같은 사건을 방지하기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촌 모녀는 두 명 모두 통신비 연체로 휴대전화가 끊겨있었던 탓에, 연락처를 확보해도 전화 연결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 수원·신촌 모녀처럼 전입신고를 하지 않을 땐 세대원의 연락처를 쓰도록 한 정부의 ‘전입신고 대책’도 적용되지 않는다. 복지부 관계자는 “통신사 정보에는 연락처뿐 아니라 위기가구가 통신사에 가입할 때 기재했던 주소도 해당된다”며 “이 경우 대부분 실제 거주지랑 일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법 개정 이후 시행령에 가입 당시 주소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위기가구를 발굴하기보단 이들이 고립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원 세 모녀의 경우 가구주가 사망했을 때 남은 가족들이 부채를 떠안다 보니 숨어야 했던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는데, 부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신용회복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협력은 여전히 정부 대책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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