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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연금은 낸 만큼 돌려받는 저금 아니다…보험이다”

등록 2022-12-26 06:00수정 2022-12-26 17:29

인터뷰ㅣ일본 연금개혁 전문가 겐조 교수
“급여 삭감, 손주 용돈이라 생각해야”
겐조 요시카즈 게이오대 상학부 교수가 지난 20일 일본 도쿄 한 식당에서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과 복지부 연금 담당 공무원,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제공
겐조 요시카즈 게이오대 상학부 교수가 지난 20일 일본 도쿄 한 식당에서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과 복지부 연금 담당 공무원,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제공

한국은 2025년 총인구에서 65살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제도를 손질해 지속가능한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서도 건강한 나이 듦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돌봄 환경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한겨레>는 12월18∼21일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 등과 일본 도쿄도 및 사이타마현을 방문해,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공적연금 전문가와 의료·돌봄 기관 등을 취재했다. 한국 사회에 시사점을 줄 일본의 앞선 경험과 고민을 두차례에 걸쳐 싣는다. _편집자

“국민에게 연금은 저금이 아니라, 보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겐조 요시카즈 게이오대 교수(상학부)는 지난 20일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아카사카의 한 식당에서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과 연금 담당 공무원, 한국 기자단을 만나 “공적연금 개혁 과정에선 연금은 오래 살게 되는 것에 대한 보험이라는 국민들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렇게 물었다. 겐조 교수는 현재 한국의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에 해당하는 후생노동성 자문기구인 사회보장심의회 연금부회 위원이며, 2012년 사회보장제도 개혁 국민회의에 참여한 일본의 사회보장정책 전문가다.

일본은 지난 2004년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고령화로 연금 수급자가 늘고 출산율 저하로 보험료를 부담할 세대는 감소한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일본의 공적연금은 3층 구조로 돼있다. △20∼59살 전 국민이 의무가입해 정해진 보험료를 내고 정해진 금액을 받는 국민연금(한국의 기초연금과 비슷) △노동자·공무원이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내고 연금을 받는 후생연금(한국의 국민연금) △후생연금 가입자가 임의로 가입하는 퇴직연금이 그것이다. 2004년 당시 일본 정부는 1만3300엔이었던 국민연금 보험료와 13.934%였던 후생연금 보험료율을 2017년까지 13년간 각각 1만6900엔과 18.3%까지만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선언해 추가 인상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소비세 인상을 통해 국고부담을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늘렸다. 대신 기대수명·출산율에 따라 급여를 조정하는 ‘거시 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했다. 쉽게 말해 보험료와 국고부담(세금)은 늘리고 연금 급여는 삭감했지만, 연금의 지속가능성과 안심감(신뢰)이 높아졌다. 한국에서 1998년부터 보험료율이 9%로 고정된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일본의 2004년 연금제도 개정 사례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4년 당시 홑벌이 가구의 부부 연금 소득대체율은 60% 수준이었으나, 2022년 기준 50.1%로 내려왔다. 개인별 수급인 한국과 달리, 남편 소득 대비 ‘남편 후생연금+남편 국민연금+전업주부 아내 국민연금’의 비율이다. 2004년 이후 일본의 임금·물가 상승률이 높지 않아 거시 경제 슬라이드로 연금액이 줄어든 건 3번에 그쳤지만, 보험료 부담만 늘고 기금 소진으로 혜택은 받기 어려울 거란 불안은 커졌다. 겐조 교수는 이러한 불안의 원인이 ‘연금은 낸 만큼 돌려받는 저금’이라는 생각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연금은 장수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험”이라며 “연금을 두고 금액적으로 손해를 봤다거나 이익을 봤다고 하는 건 ‘연금은 보험’이라고 인식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연금을 노후 위기에 사회 전체가 대비하는 사회보험이라고 생각하면, 재정안정화를 위한 여러 조처들은 손해라기보다 미래 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 된다. 겐조 교수는 “거시 경제 슬라이드를 적용하면 급여가 삭감된다는 보도만 있는데, 그렇게 삭감해서 미래 세대인 손주와 증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2004년 개혁을 한 뒤 2012년께부터야 연금이 보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내년 10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2027년까지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을 포함한 노후소득보장 전반에 대해 구조 개혁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제도 개혁 전까지 인식 전환에 나설 시간이 남아있다. 겐조 교수는 “일본은 (연금개혁 이후) 대혼란이 일어나 정권 교체가 일어나고 나서 마지막에 개혁의 의미를 설명했는데, 한국은 먼저 의미를 설명하고 순차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인식 전환 만큼 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정부 전략도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상한을 미리 정해 공표해놓고, 2017년까지 13년에 걸쳐 매년 소폭으로 올리는 방법을 택했다. 겐조 교수는 “매년 0.354%포인트씩(후생연금 보험료율) 올렸기 때문에 티가 안 났다”며 “경제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거나 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겐조 교수는 투명한 정보 공개도 일본의 연금 개혁의 특징으로 꼽았다. 후생노동성은 홈페이지에 재정 검증 결과부터 중요 회의록까지 공개하고 있다. 2012년에는 사회보장개혁을 추진하면서 관련 단체들과의 심층면접 조사 과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2003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단위로 재정계산을 진행하고 제도 개정안을 만들면서도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았던 한국 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제5차 재정계산위원회부터 속기록을 공개하기로 했다.

도쿄/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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