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돌봄서비스 시장에 민간·기업 참여를 강조한 ‘준시장화’를 지시했다. 그러나 노인장기요양보험 보험료 인상이나 국비 지원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 등 재정이 충분치 않아 돌봄 질이 낮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할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더구나 돌봄의 시장화가 강화될 경우, 소득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질 격차도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9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고 “돌봄은 사회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분야”라며 “복지를 돈을 쓰는 문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민간과 기업을 참여시켜 준시장화해 잘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돌봄을 어디가 잘해주고 어디 서비스가 떨어진다는 점이 알려지면 손님이 (특정 업체에) 많이 몰리며 (그곳이) 매출·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게 준시장적인 경쟁 시스템”이라며 “돌봄이 과학화되고 많은 테크놀로지가 여기 들어가면 사회서비스가 고도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발언은 돌봄서비스 제공에 민간 참여를 더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다른 서비스 시장처럼 업체 간 경쟁을 통해 투자를 유발하고 서비스 품질을 높이겠다는 시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7일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등에서도 복지부 장관에게 “보건복지부는 사회서비스산업부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복지부는 현재 저소득층에 제공되는 사회서비스를 중산층 등에 유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업무계획에 담았다. 대표적으로 노인 맞춤돌봄서비스 등에 이런 방식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노인 맞춤돌봄서비스는 고령·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로 선정될 정도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취약층 노인에게 가사 지원이나 긴급 돌봄 등을 제공한다.
현재 비영리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이 이러한 서비스를 위탁·제공하고 있으며, 만 65살 이상 고령층 가운데 기초연금 수급자(소득 하위 70%)와 국민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만 신청 가능하다. 복지부는 노인 맞춤돌봄서비스를 소득 상위 30% 고령층에도 유료로 제공하고, 기존 서비스 대상인 취약층 노인이 ‘돈을 내면’ 추가 돌봄을 제공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즉 맞춤돌봄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만들고, 이러한 시장에 민간이나 기업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중산층에 사회서비스를 개방한다고 해서 전체 돌봄 질이 오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민간 기관이 고소득층 위주로 수요자를 ‘선별’하면서 저소득 수요자의 서비스 질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영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공급자로서는 같은 요금을 받는다면 가급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편한 여건의 소비자를 고를 가능성이 크다. 돌봄 시장화의 대표적인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등 장기요양기관은 이미 99% 이상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 2022년 8월 말 기준 전국 장기요양기관 2만7065곳 가운데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기관은 252곳(0.93%)뿐이다. 노인 돌봄서비스에 민간 참여를 독려하기보다 공공부문 인프라 확충이 선행될 필요성이 나오는 배경이다.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구매력이 충분치 않은 노년층 대상 돌봄에서는 경쟁을 촉진한다고 민간의 투자가 활성화되기 어렵다”라며 “민간에 노인 돌봄을 맡겨 기관 수를 늘리는 데서 벗어나 정부가 관리하는 서비스를 늘릴 때”라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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