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전라남도 신안의 한 염전에서 노동자가 방금 수확한 천일염을 두 손 가득 쥐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태양이 바닷물을 졸여 얻는 소금은 바닷물보다 짠 삶들을 졸여내며 온다.
경기도 남양주시민 김종철(52)은 지난 12일 김장을 했다. 아내와 장모님 댁에 가서 배추를 버무렸다. 40포기에 소금 7㎏을 썼다. 10일 기준으로 천일염 5㎏의 가격은 1만1613원(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이었다. 2020년 평균 7643원이었던 가격은 2021년 8941원, 2022년 1만1146원으로 가팔라지더니 올해는 평균 1만2669원이 됐다. 염전 수 감소와 기후 변화 등으로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던 천일염 값은 지난 6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발생한 품귀 현상 탓에 1만3천원대로 올라섰다. 정부가 김장 물가 대책으로 비축 물량 1만t을 풀면서 1년 전 가격으로 떨어졌지만 11월 평균값은 아직 1만2790원에 머물러 있다. 평년값(8427원)과 비교하면 38% 비싸다.
김종철은 김칫소에 소금을 섞으면서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소금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방사능 오염수와는 다른 종류의 오염을 우려”했다. 장모님이 구입한 천일염 포장지에 적힌 생산지는 전라남도 신안군이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직장에 다니는 그의 사촌 동생(47)도 11일 한인마트에서 한국산 천일염을 샀다. 바다 건너 먼 타국에서 김장을 할 순 없었지만 김장철이 돌아오면 천일염을 뿌려 겉절이라도 무쳤다. 신안에서 생산된 소금이었다. 그의 다른 동생(46)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했다. 13일 마트 진열대에서 집어 든 소금의 생산지도 신안이었다. 국내 천일염의 70%가 생산되는 섬들이었다.
소금이 짠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저수지로 끌려 들어온 바닷물(염도 1~2%)은 난치(제1증발지), 누테(제2증발지), 해주(함수 창고)를 거쳐 결정지(20~25%)에서 알갱이가 됐다. 채염돼 창고에 쌓여 오래 간수를 뺐다. 천일염(약 88%)이 길고 더딘 길을 돌아 우리 밥상에 오는 동안 그 길을 내느라 졸여진 삶들도 진하게 농축됐다. 김종철은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김치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소금에 절여지길 원치 않았”다.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지난 8월24일 서울 서초구 양재 하나로마트에 정부가 국내산 천일염 품귀에 대응해 긴급 방출한 비축 천일염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선생님, 여기 좀 깨진 것 같은데.”
홍일국(가명·55·지적장애)씨가 손으로 천장 모서리를 가리켰다. 이기림 활동가(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가 휴대전화로 줌을 당겨 사진을 찍었다. 지난 10월27일 오전 전남 목포시 대성동의 엘에이치(LH) 매입임대주택에서 두 사람은 며칠 뒤 일국씨가 입주할 집의 하자를 확인했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퇴거할 때 본인이 만든 걸로 오해받지 않도록 꼼꼼히 체크하라”며 일국씨에게 지켜야 할 주의사항들을 설명했다.
싱크대 위엔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30분 전 임시숙소 앞으로 일국씨를 데리러 간 이기림은 그를 보자마자 꽃다발을 안겼다.
“오늘은 좋은 날, 축하해요.”
어렵게 성사된 임대주택 입주였다. 임시숙소는 이기림의 전 직장이었던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상담원의 부모님 집이었다. 그 집 빈방에서 일국씨처럼 갈 곳 없는 염전 학대 피해자들이 주거 대책을 찾을 때까지 ‘응급하게’ 머물렀다.
일국씨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가는 천일염’의 출발지인 신안의 한 염전에서 2021년 5월 탈출했다. 그는 2014년 떠들썩했던 염전 노동 사태가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7년 만에 폭로한 당사자였다. 하루 17시간 일했으나 고용주는 급여를 주지 않았다. 임금 계산도 월급이 아니라 연급으로 했고, 월급처럼 통장에 넣은 돈은 입금 직후 일국씨가 은행 창구에서 찾게 해서 되받아갔다. 고용주가 노동자들의 지적장애를 악용해 착취(수사기관이 계산한 일국씨의 미지급 임금은 1억1500여만원)했고 사실상 감금 상태였다고 일국씨는 주장했다. 그의 폭로로 경찰 수사와 행정기관 조사(2022년 ‘전라남도 염전근로자 근로실태조사 연구’ 결과 응답자 69명의 39.1%인 27명이 장애인이거나 장애 의심)가 잇따랐다.
“염전 학대 피해자이신데요.”
임대 계약서 사인 뒤 이기림은 일국씨와 행정복지센터로 가서 전입신고를 도왔다. 복지 서비스 지원도 요청했다.
“취약계층 주거사다리 사업에 선정돼 이 동네로 오시게 됐어요. 직접 조리를 하실 수 없어 반찬 지원이 가장 급해요.”
행정센터를 나왔을 때 일국씨가 이기림에게 물었다.
“(저쪽 동네에서 받던) 쌀도 따라와요?”
“걱정 마세요. 주소 옮기면 쌀도 이사 와요.”
일국씨가 탈출한 염전은 신안군 증도의 태평염전이었다. 태평염전(2007년 국가등록문화재 제360호 지정)은 단일 염전으로는 국내 최대였고 일국씨의 고용주는 태평염전의 임차인(생산량의 50%를 주고 부지를 임차) 중 한명이었다. 일국씨의 폭로가 보도된 뒤 그가 탈출한 염전에선 ‘입 맞추기’와 피해자 은닉이 벌어졌다. 다른 지적장애인 노동자 최창범(가명·49·미지급 임금 8800여만원)씨가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의 소환을 받자 고용주는 “입 잠그고 묻는 말에 대답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매월 임금을 받았다’고 진술할 것을 강요한 사실도 기소 내용에 포함됐다.
염전 강제노동 피해자 홍일국(가명)씨가 지난 10월27일 오전 전남 목포시 대성동의 엘에이치(LH) 매입임대주택에서 이기림 활동가(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와 며칠 뒤 입주할 집의 하자를 확인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사건 당시 이기림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2014년 염전 사태를 계기로 설립된 법정기관)의 일원으로 현장을 찾아 피해자들을 만났다. 고용주는 그의 추가 방문 조사를 앞두고 창범씨 등 피해자들을 염전에서 모텔로 빼돌렸다. 일국·창범씨의 고용주 부자는 2014년에도 장애인에 대한 준사기, 감금, 근로기준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았다. 당시 아버지(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는 고아인 피해 장애인에게 8년치 임금 73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아들(징역 2년6개월)은 피해자를 자신이 운영하던 호프집으로 데려가 무임금으로 일을 시켰다. 염전 사태가 터지자 착취 사실이 발각될까 우려해 그때도 피해자를 목포의 모텔에 숨기고 사람을 붙여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아들은 목포에서 성매매업소도 운영했다.
장애인 착취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도 7년간 착취를 계속하며 소금을 생산해왔다는 사실은 천일염 이력제(생산·유통의 불투명성을 줄이기 위한 장치지만 의무가 아니어서 실효성 논란)도 알려주지 않는 소금 산업의 현실이었다. 그 시간 동안 처벌은 미온적이었고, 법률 보완(올해 1월 시행된 인신매매방지법(인신매매 등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처벌조항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도 형식적이었다.
“집 좋더라. 나랑 바꾸자.”
정진만(가명·60·경계선 지적장애)씨가 가위로 냉면을 자르며 일국씨에게 말했다. 재활용품 가전센터에서 일국씨의 새집을 채울 냉장고·텔레비전·가스레인지·서랍장을 고른 일행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농담하지 말라”며 일국씨도 냉면을 잘근잘근 잘랐다.
이날 아침 이기림이 일국씨와 만났을 때부터 진만씨도 줄곧 함께 다녔다. 일국씨보다 먼저 임시숙소에서 머물렀던 진만씨는 현재 영구임대아파트로 나와 살고 있었다. 진만씨는 신축 건물에 입주하는 일국씨가 부러울 만했다. 지은 지 30여년 된 낡은 아파트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염전 일을 하다 다친 허리를 치료받지 못해 척추 협착을 앓는 그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반복되는 통증을 견뎌야 했다.
진만씨도 일국씨와 같은 염전에서 일했다. 10여년 일하는 동안 그의 연봉은 “사장님 특별 보너스”를 더해도 마이너스 200여만원이거나, 10만원이었고, 많이 받으면 150여만원이었다. 고용주가 허위로 작성한 가불금 내역이 임금보다 많아진 까닭이었다. 그 금액이 적힌 ‘봉급 결산 확인서’를 “본인이 직접 확인”했으며 “차후 확인서 문제로 문제 발생 시에는 본인이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고 지장을 찍었다. 고용주는 장애가 있는 노동자들의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어 사용하거나, 대출을 받거나, 근로장려금을 받아 가로챘다. 교통사고 피해를 입은 노동자의 보험금을 대신 받기도 했다. 은행 업무를 보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가족에게 송금을 부탁하면 그 돈을 아내의 계좌로 옮겨 도박자금 등으로 썼다.
일국씨와 진만씨가 잘게 자른 냉면을 우물우물 씹었다. 일국씨의 입안엔 이빨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진만씨의 남은 이빨 중엔 성한 것이 없었다. “고된 노동으로 이빨이 상하자 고용주는 무허가 치기공사를 불러 생이빨을 갈아버리고 한 명당 500만원씩 가불처리했”(이기림)다.
지난해 1월2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염전 노동착취 사건 추가 피해 고발 및 진정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와 엄중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식사를 마친 뒤엔 일국씨의 입주 청소를 위해 창범씨에게 청소 도구들을 빌리러 갔다. 창범씨가 살고 있는 임대주택도 일국씨가 이사하는 건물과 지역은 다르지만 구조와 생김새가 똑같았다.
“창범 아저씨, 일요일에 일국 아저씨 이사 도와주러 오실 거예요?”
청소 도구를 챙기며 이기림이 묻자 창범씨가 무뚝뚝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고용주가 이기림과 만나지 못하도록 모텔로 빼돌린 노동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만남을 무산시킨 뒤 고용주는 서울 부모 집으로 올려보낸 창범씨를 다시 불렀다. 창범씨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곳으로 이탈하지 못하도록 목포까지 데려오게 한 뒤 아버지에게 100만원을 건넸다.
염전 노동자들 대부분은 돌아갈 집이 없었다. 가족과 인연이 끊겼거나 가족이 직접 그들을 염전에 넘겼다. 염전을 나가고 싶어도 염전 외엔 갈 곳이 없어 벗어나길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국씨의 폭로로 2021년 11월 말 고용주가 구속됐다. 구속 한달 뒤 창범씨는 고용주 일가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이기림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창범씨는 2014년 염전 사태 때도 피해자였다. 염전주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수사가 시작되자 다른 섬으로 보내졌다. 염전을 나온 뒤엔 갈 곳이 없어 노숙인 시설과 정신병원 등에서 지내야 했다. “그 경험이 염전을 떠나도 달라질 것 없다는 무력감을 키웠”(이기림)다.
7년 뒤 염전에서 재구조됐지만 지낼 만한 공적 공간은 여전히 없었다. 구조 당시 전남에선 학대피해자쉼터 운영도 멈춰 있었다. 이기림이 장애인 자립생활 체험홈 등으로 ‘그의 자리’를 찾아 헤맸으나 안정적 주거와 자활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았다. “탈시설 장애인과 성매매 피해자, 아동 보호시설 퇴소자 등에 대해선 일정한 자립정착금 재원이 마련되어 있지만 학대 피해 장애인에겐 전무”(이기림)했다. 피해자들은 고시원이나 달방 등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창범씨는 염전으로 재유입(지난해 1월)됐다. 소개소를 통해 신의도 염전으로 인계되는 중 입도 직전 이기림에게 다시 구조를 청했다. 이기림이 경찰에 신고했고 위치 추적으로 그를 구출했다.
일국씨의 ‘탈출 이후’도 다르지 않았다. 장애인 쉼터에서 자신과 맞지 않는 프로그램에 힘겨워하던 그는 결국 바다를 찾았다. 새우·꽃게·병어잡이 어선을 옮겨 다니며 염전 노동과 다를 것 없는 일로 되돌아갔다. 전국을 떠돌던 그가 재판 출석을 위해 목포에 왔을 때 이기림이 설득해 지역에 남게 했다.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 실패는 염전에서 강제노동이 되풀이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2014년 신의도에서 파악된 피해자 63명 중 20명(31.7%)이 염전으로 돌아갔다(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염전 지역 장애인 심층조사 용역보고서’). 16명(25.4%)이 노숙인 시설에서 지냈고, 집으로 복귀한 사람은 8명(12.7%)뿐이었다. 이기림은 공적 지원체계의 구멍을 개인 시간과 자원을 투여해 메웠다. 공공후견인 역할을 맡아 주거 확보, 장애·수급 등록, 병원 치료, 활동지원, 직업훈련·자활근로 연결과 재판 실무 지원까지 밀착해서 도왔다. “피해자들이 염전 밖으로 나올 수 있으려면 구조된 피해자들의 유의미한 사회 복귀 사례가 하나라도 있어야 했”다. “피해 장애인들의 안전한 삶 확보야말로 학대를 끊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염전 강제노동 피해자 정진만(가명)씨가 지난 10월27일 재판 증인 출석을 위해 ‘신뢰관계인’ 이기림 활동가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문영 기자
“(피고인들이) 안에 들어가면 비대면으로 증인 신문 진행하겠습니다.”
판사의 방침에 따라 법원 경위가 피고인들을 법정 내 옆방으로 안내했다. 신문 소리가 들리도록 문을 조금 열어뒀다.
오후 4시 진만씨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형사법정으로 들어왔다. 증인 지원실에서 대기하다 법대 뒤쪽에서 이기림과 함께 입정했다. 선서를 마친 진만씨가 증인석에 앉았고 이기림은 신뢰관계인으로 옆에 착석했다.
지난해 1월 시작된 고용주에 대한 1심 재판(사기, 횡령,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은 2년이 다 차가도록 심리를 마치지 못했다. 작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3건의 기소(근로기준법·장애인복지법 위반, 준사기 등)가 추가되며 총 4개의 사건이 병합됐다. 피고인도 고용주의 아버지·어머니·아내 등 일가족 전체로 불어났고 검사와 판사도 여러 차례 교체됐다.
“저쪽 식구들 나왔나요?”
법원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진만씨가 이기림에게 물었다. 진만씨는 피고인들과 마주칠까 두려워했다. 이기림은 법원에 ‘증인지원’(형사사건 증인들의 안전한 증언을 돕는 제도)을 신청하고 법원 출석과 증인 신문, 퇴정 뒤 귀가까지 함께하며 피해자들의 동선이 피고인들과 겹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진만씨는 창범씨의 경찰 진술을 계기로 구조될 수 있었다. 경찰에서 고용주의 가해 사실을 이야기하던 창범씨가 진만씨(“허리가 아파 쓰러지는데도 고용주가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다”)와 다른 장애인 동료(“식사 담당인데 음식 간을 못 맞춘다고 때린다”)의 피해 상황을 알렸다. 창범씨의 진술로 지난해 2월 섬에서 나와 전남경찰청(무안군)에서 조사를 받은 진만씨는 조사 뒤 염전 복귀를 거부했다. 경계선 지적장애를 가진 그는 장애 등록이 되지 않아 장애인 지원 대상에서 배제됐다. 강력범죄 피해자들이 머무는 스마일센터에서도 시한부로 지내야 했다.
“(고용주 구속 뒤) ○○○씨(고용주 아버지)로부터 염전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지시받은 적 있어요?”
피고인의 변호인이 물었다.
“도망가다 걸리면 죽여분다고 했습니다.”
“경찰 조사 때는 그런 말 못 들었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 들은 사실 있어요?”
“네.”
변호인이 진만씨를 압박했다.
“그럼 경찰에 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네요. 경찰에선 못 들었다고 했는데 법정에선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렇게 이야기하라고 (누군가) 협박하던가요?”
염전에 남아 있을 당시 진만씨는 ‘고용주 일가가 염전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거나 못 나가도록 감시한 적이 있냐’는 경찰의 질문에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구조 뒤 그는 ‘무서워서 말을 제대로 못 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경찰에서의 진술이 피고인들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으나 변호인은 법정에서 진술 변화가 활동가 등의 강요 때문 아니냐고 물었다. 피고인들은 피해자들이 장애인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폭행·강요·협박 등도 모두 부인했다.
정진만(가명)씨가 지난해 2월 전남 신안 염전에서 탈출하던 날 들고나온 급여명세서. 고용주가 작성한 허위 공제액이 급여보다 많아 ‘합계금액’이 마이너스가 됐다. 정진만 제공
피고인 일가는 태평염전에서 10여개 판(천일염 생산 바닥)을 임차해 소금을 거뒀다. 고용주 대신 부인과 여동생·매제·처남 등의 이름으로 빌렸다. 신안군은 고용주 명의의 임차 염전이 없다는 이유로 2021년 11월 부인 이름의 3개 판에만 1년 영업정지를 내렸다. 태평염전은 “10여개 판 모두 계약을 해지했다”(작년 11월22일 재판)고 밝혔으나, 피고인들은 명도소송을 하며 나머지 염전에서 지난해 소금 생산을 계속했다.
진만씨는 통발공장에서 자활근로를 했다. 진만씨가 공장에 출근하려면 ‘그 다방’을 지나가야 했다. 목포역 인근의 그 다방은 피해자들과 활동가들이 ‘인신매매 골목’이라고 부르는 직업소개소 밀집지에 있었다. 노래방과 댄스홀, 피시방, 마사지숍, 술집 등이 함께 골목을 이뤘다. 다방은 직업소개소와 모텔을 패키지로 운영했다. 염전 강제노동은 소개소를 매개로 재생산됐다. 소개업자들은 지적장애인들에게 숙박·유흥과 때론 성매매까지 엮어 빚을 만들고, 염전주들은 ‘선불금’이란 이름의 빚을 대신 지불하고 장애인들을 데려갔다.
‘그 다방’을 통해 피고인 일가의 염전으로 소개된 진만씨는 2014년 당시 처벌(준사기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받았던 ㅈ의 염전에도 그 다방을 통해 보내졌다. 피고인 일가의 염전으로 오기 전 진만씨는 5년 동안 ㅈ의 염전에서 일했다.
ㅈ 역시 태평염전 임차인이었다. ㅈ은 지적장애인에게 “매월 100만원씩 주겠다”며 일을 시킨 뒤 2011년 10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2588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른 종업원들에겐 임금을 지급하면서도 피해자에게만 지급하지 않았다”며 의도성을 인정했다. ㅈ은 지금도 태평염전과 계약을 유지하며 소금을 생산했다.
‘오염된 소금’은 우리 밥상에 이렇게 왔다. 장애를 악용해 노동자들을 착취했던 염전의 소금이 올해도 김장의 주요 재료가 되는 데는 ‘공급망’의 문제가 컸다.
김종철은 공익법센터 어필 소속 변호사다. 어필은 국내 염전들의 강제노동을 막는 노력들에 힘을 보태왔다. 지난해 8월부턴 대형 소금 기업인 태평염전과 씨제이(CJ)제일제당, 대상에 수차례 질의서를 보냈다. 소금으로 수익을 올리는 생산·가공기업들이 자사 공급망에서 벌어지는 강제노동 근절에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어필은 각 기업들이 현재 계약을 맺고 있는 염전들의 인권실태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그 염전들 중 과거 장애인 착취가 있었던 곳은 없는지 등을 물었다.
일국·창범·진만씨 가해자에게 생산을 위탁했던 태평염전은 “인력 고용은 수탁자의 고유 권한이므로 관리와 간섭을 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회사 관계자는 한겨레에 “인권침해가 확인되면 차기 계약을 하지 않는 등의 방침을 갖고 있다”고 했으나 ㅈ과 염전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그분들 사생활까지 감독하긴 힘들고 과거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대상은 “공급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매년 4월 염전 농가의 인권, 작업장 환경, 품질 등의 항목을 평가해 선정·관리한다”고 어필에 답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국내 천일염 품귀 현상이 발생한 지난 6월 전라남도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노동자들이 대파질로 소금 알갱이를 모으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씨제이제일제당은 “2021년 자회사 등에 첫 인권영향 평가를 실시”했지만 그해 평가 대상에서 천일염 사업장은 제외(2022년 8월24일 회신)됐다. 첫 염전 인권실사는 회신 한달 뒤인 “9월29일 하루 동안 진행”(한겨레에 답변)했다. “실사 결과 특별한 인권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2014년 당시 씨제이제일제당의 자회사(신의도천일염) 주주 가운데 강제노동 가해자 4명이 포함돼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씨제이제일제당은 “4명 중 3명에 대한 법 집행은 완료”됐고 “이 3명은 현재 신의도천일염의 주주로 재직 중”이라고 어필에 밝혔다. “4곳의 가해 업체와는 구매 계약을 중단했다”고도 했으나 확인된 사실은 달랐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해양수산부로부터 씨제이제일제당에 공급된 천일염 내역을 제출(이하 ※ 표시는 윤 의원실 확보 자료)받았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497만㎏이 30여개 염전으로부터 입고됐다. 그 염전들 중엔 18만㎏을 납품한 ㅂ의 염전도 있었다.
ㅂ도 2014년 사태 당시 가해 염주였다. 그는 2008년 10월 목포의 직업소개소를 통해 지적장애인을 데려오며 “1년에 400만원을 주겠다”고 거짓말했다. 그는 신의도에 있는 자신의 염전과 새우양식장에서 일을 시킨 뒤 2014년 1월까지 6200여만원을 주지 않았다. “(ㅂ이) 피해자를 데려와 일을 시킬 무렵부터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일을 시키겠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법원은 봤다. ㅂ은 바닷물을 염전에 잘못 넣었다거나 소금을 통에 빨리 담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다른 노동자 2명도 폭행했다. 그는 2014년 4월 구속돼 그해 7월 준사기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광주지법 목포지원)받았다.
ㅂ은 씨제이제일제당이 2010년 신의도 염전주들과 조합법인 형태로 ‘신의도천일염’을 설립했을 때 생산자 대표로 참여했다. 2014년 당시 신안군의원이었고 현재도 군의원(3선)이다. 그가 형사처벌을 받은 2014년부터 지난 9월까지 씨제이제일제당에 납품한 소금은 모두 82만5800㎏(※)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한겨레에 “법상 어떤 주주가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해서 다른 주주들이 합심해서 그 주주의 주식을 빼앗을 순 없다”고 말했다. “해당 주주가 지금도 소금을 공급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당시 문제는 이미 해소됐다”고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7월 염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엔 ㅂ의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위반 내용도 있다.
국민 세금은 강제노동 가해 염전들에도 투입됐다. 소금산업진흥법에 따라 해수부는 매년 염전주들에게 천일염 생산·유통 시설을 지원해왔다. ㅂ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천일염 바닥재 개선과 채염 자동화 등의 명목으로 1억2200만원을 지원(※ 전남도 ‘염전별 국비지원 내역’)받았다. ㅈ도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억2430만원을 받았다. 윤미향 의원은 “법엔 ‘염전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 강요행위가 적발된 경우 해수부 장관은 지원된 자금을 환수할 수 있다’(제49조의2)고 규정돼 있지만 우리가 자료를 요구하기 전까지 염주별 지원 내역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정부의 책임 있는 관리·감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홍일국(가명)씨가 지난 10월29일 이사를 마친 방 한쪽에 그가 집들이를 위해 만들어둔 더덕주와 활동가가 선물한 축하 꽃다발이 놓여 있다. 이기림 제공
어필은 16일 씨제이제일제당에 4번째 질의서를 보냈다. “(인권실사 결과 신의도천일염에 소금을 공급하는) 43개 염전 가운데 8개 염전에서만 고용이 이뤄지고 있으며 지적장애인을 고용한 경우는 없었다”는 지난해 10월4일 답변에 대해 다시 물었다.
“지적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조사하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염전 현장에서 평가 지표를 활용해 장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이기림)다.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어필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씨제이제일제당 미국 법인(CJ Foods USA)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주소를 둔 유럽법인(CJ EUROPE GMBH) 등에도 그들이 수입·생산하는 식품들에 강제노동에 연루된 소금이 사용되고 있진 않은지 질문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독일은 기업들에 공급망 내 강제노동 대응 조처 공개와 인권 실사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어필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원곡법률사무소는 미 세관국경보호국에 강제노동이 의심되는 한국산 천일염들을 대상으로 ‘인도 보류 명령’(Withhold Release Order)을 청원했다. 과거 장애인 착취로 처벌받은 사업장에서 다시 피해자가 발생했거나 계속 소금 생산을 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이 공급망에서 강제노동을 근절하기까지 미국 내 유통을 중단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명령’이 집행된 제품들은 강제노동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미국 시장에 풀릴 수 있다. 현재 35개 중국 기업(신장위구르 쪽은 별도 집계)의 수출품이 미국 세관에 억류돼 있다. 일본은 1개 기업 제품의 발이 묶여 있고, 한국 기업의 억류 제품은 지금까진 없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