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7월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폐지를 실은 수레를 밀어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구광역시에서 혼자 사는 김숙자(가명·79)씨는 수년 전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잃었다. 추운 겨울에 폐지를 줍다 그만 동상에 걸린 탓이다. 올겨울에도 하루 8시간 꼬박 폐지를 줍는데, 손에 쥐는 건 1만원이 채 안 된다. 매달 기초연금(약 30만원)을 받고 있지만 20년간 해온 폐지 줍기를 그만둘 수 없다. “물가는 자꾸 오르는데 파 한 단이라도 사 먹으려면 힘들어도 어쩔 수 없어요.”
보건복지부는 생계 유지 등을 이유로 폐지를 줍는 65살 이상 노인이 전국적으로 4만2천명에 이른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전국 폐지수집 노인을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의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복지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전국 고물상 4282곳 중 105곳을 표본 추출해, 이곳에 폐지를 납품하는 이들을 확인해 전국 단위 폐지수집 노인 수를 추산했다. 더불어 폐지수집 노인 1035명에 대한 대면조사도 진행했다.
폐지를 수거해 파는 노인 나이는 평균 76살이었다. 혼자(36.4%) 또는 둘(56.7%)이 사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루 평균 5.4시간, 일주일에 6일 폐지를 팔아 한달 15만9천원을 벌었다. 시급으로 치면 1226원으로, 올해 최저임금(시급 9620원)의 12.7% 수준이다. 폐지를 줍는 까닭은 ‘생계비 마련’(53.8%), ‘용돈이 필요해서’(29.3%) 등 경제적 어려움 탓이 컸다. 실제 이들이 속한 가구 소득은 월평균 113만5천원으로, 전체 노인 가구 252만2천원(2020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견줘 크게 낮았다.
10명 중 9명(93.2%)이 기초연금을 받고 있으며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24.9%), 국민기초생활보장 급여(12.7%) 수급자도 있다. 공적 지원만으론 생계를 이어가기가 충분치 않아 폐지 수거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 상황뿐 아니라 신체나 정신건강도 좋지 않았다. 스스로 ‘건강하지 않다’고 여기는 비율은 32.7%로 전체 노인(14.7%)보다 2배가량 높았다. 폐지수집 활동 과정에서 다친 적이 있는 이들은 22%였으며 6.3%는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우울 증상이 있는 비율은 39.4%로 전체 노인(13.5%)에 견줘 3배 가까이 높았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배재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대면조사에 응한 이들 대다수가 폐지 수집을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힘든 일자리’로 정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폐지수집 노인 다수는 밥에 물을 말아먹는 정도로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생활고를 겪고 있었고, 하루종일 일해도 밥 한 끼 못 사먹는다는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며 “기초연금·국민연금 등 공적 노후소득 보장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노후 대비를 충분히 하지 않거나 갑자기 큰 비용 지출이 발생하면 누구나 폐지 수집 노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내년 1월부터 전국 폐지수집 노인을 전수조사하고 이들을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창출하는 노인 일자리는 유형에 따라 월 29만~76만원(2024년 기준)을 지급한다. 폐지수집 노인 79%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알고 있었으나 실제 참여한 이들은 9%였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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