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전 감사원장.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실록 펴낸 한승헌 변호사
영장이 기각됐느니 한번 더 청구하느니 하면서 연일 다투고 있는 판사와 검사들이 한번쯤 옷깃을 여미고 읽어봐야 할 책이 나왔다. 선배들의 부끄러운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40년간 인권변론 기록을 담은 책 〈한승헌변호사 변론사건 실록〉(범우사)이 출간됐다. 실록 간행위원회(위원장 박원순 변호사)가 7권으로 펴낸 이 책에는 1960년대 중반부터 40년 동안 한 변호사가 참여한 67건의 재판기록과 피고인등의 체험기, 관련 기사·논문 등 참고자료까지 망라돼 있다. 대부분 시국·정치사건들이다. 변호사로서는 ‘인권변론’ 기록이지만 암울했던 시절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한 검사와 판사들로서는 감추고 싶은 기억들이기도 하다.
문학작품이 북한의 〈통일전선〉에 전재됐다는 이유로 작가를 반공법으로 구속한 소설 ‘분지’ 사건(1965년)에서부터 담시 ‘오적’ 필화사건, 한 변호사 자신을 구속으로 이끈 ‘어떤 조사’ 반공법 필화 사건도 있다.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 민주화 과정에서 불거진 굵직한 사건마다 검사의 기소내용과 판사의 판결문, 변호사들의 변론 내용이 당사자들의 이름과 함께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한 변호사는 “많은 시국사범들이 무죄임을 확신하면서 동시에 유죄판결이 나오리라는 점도 확신해야 했던 기막힌 사법현실 속에서 나의 변호는 무슨 효용이 있었을까”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책 출간에 대해 “벌거벗은 권력의 독기와 맞서거나 아니면 그 앞에서 기죽기 쉬운 피고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격려를 보내고, 법정 안팎의 진실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는 ‘진실의 전달자’가 되자는 다짐의 작은 실천”이라고 했다.
간행위원으로는 한명숙 국무총리와 신인령 전 이화여대총장, 백승헌 민변 회장 등 10명이 참가했다. 박원순 변호사는 “어차피 당시 인권변호사들의 변론은 법정과 재판부 판사들을 향하기보다 다음의 시대와 국민 대중에게 향해 있었다”며 “과거와 같은 고문과 처형의 시대는 갔지만 우리 시대 인권의 과제 중 하나는 과거를 정확히 기록하고 그 교훈을 후세에게 남겨주는 것”이라고 〈실록〉의 의미를 평가했다.
김이택 기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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