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헌(65·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기념사업회’ 새롭게 꾸리는 정성헌 신임 이사장
구속·투쟁…사회운동 ‘한길’
“극단의 한국 ‘균형’ 회복해야
교육 통해 민주 토대 다질 것” “사람은 아는 만큼 변합니다.” 알 듯 말 듯한 말이다. 야윈 얼굴에 백발이 성성한 운동가는 찬찬히 설명했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많이 무너졌다고들 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힘, 사회 속에서 함께 사는 법, 자연과 환경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도 과거지향보다는 미래세대에게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지난 30일 취임 업무보고를 받느라 분주한 정성헌(65·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잠시 기다리는 동안 오는 길에 지나쳤던 풍경들이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던 서울광장은 스케이트장으로 변했고, 세밑 폭설로 얼어붙은 덕수궁 돌담길엔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겨울공화국’(양성우의 시). 먼저 뉴라이트 세력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모욕당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 들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영조 진실화해위원장이 5·18 광주민중항쟁과 4·3 제주항쟁을 민중반란·폭동이라고 표현한 지경이다.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게 문제라고 봐요. 불교에서 말하듯 두 극단을 극복하고 균형된 시각에서 진리를 찾는 중도가 더 필요한 때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기념사업회가 나갈 방향을 물었다. “80년대 6월항쟁까지만 해도 민주화운동이 공동체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지요. 그런데 이른바 민주화 이후 일부가 기득권층이 돼버렸습니다. 민주화운동도 우리 기념사업회도 이제 시민 속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정 이사장은 특히 민주주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초등학교 때부터 독자적 가치관, 사회적 존재, 우주적 존재라는 총체적 사고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우선 방학을 이용해 계절학교식으로 이런 교육 실험을 해볼 생각이에요. 시민단체와 국가기관 함께할 수 있는 협력 모델도 만들려고 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시민교육 모델 창출과 교사 연수프로그램, 시민교육 활동가 아카데미도 준비할 겁니다.”
그는 고려대 1학년 교양학부 회장으로서 1964년 ‘굴욕적 한일협정 반대투쟁’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면서부터 민주화운동의 길을 걸었다. 70년대부터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서 가톨릭농민회(가농) 운동에 나선 그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85년)·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87년)·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89년) 등의 상임집행위원을 지냈으며,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장(91~98년)을 거쳐 지난해부터 인제 한국디엠제트(DMZ)평화생명동산에서 이사장으로 일해 왔다. 세번의 교통사고와 위암 등으로 모두 네 차례 수술을 받았다는 그는 야윈 뺨에 깊은 눈매 그리고 백발이 어우러져 수도자 같은 인상이다. “밭에서 20~30분 일했다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3시간이 지난 거예요. 무념무상. 그래서 내가 농사를 지은 게 퍽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의 질서를 알고 반성할 줄 알게 됐으니까. 결국 민주주의도 땀 흘려 일하고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연대의 힘은 그곳에서 출발하니까.” 기념사업회는 지금까지 박형규 목사, 함세웅 신부 등 성직자 출신들이 이사장을 맡아왔다. “70년대 운동을 얘기할 때 흔히 ‘종교적 외피’를 얘기하는데 그게 아니라 방풍림입니다. 종교 뒤에 숨는 것과 방풍림으로 쓰는 것은 다르지요. 80년대 중반 ‘가농’ 활동을 할 때, 천주교 쪽과 관계가 불편해지자 ‘그냥 가톨릭 빼고 농민회로 가자’고 했지요. 앞서 두분 이사장에 이어 제가 왔으니 ‘기념사업회가 이제 세속화의 길을 간다’고 쓰세요, 하하.” 글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극단의 한국 ‘균형’ 회복해야
교육 통해 민주 토대 다질 것” “사람은 아는 만큼 변합니다.” 알 듯 말 듯한 말이다. 야윈 얼굴에 백발이 성성한 운동가는 찬찬히 설명했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많이 무너졌다고들 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힘, 사회 속에서 함께 사는 법, 자연과 환경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도 과거지향보다는 미래세대에게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지난 30일 취임 업무보고를 받느라 분주한 정성헌(65·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잠시 기다리는 동안 오는 길에 지나쳤던 풍경들이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던 서울광장은 스케이트장으로 변했고, 세밑 폭설로 얼어붙은 덕수궁 돌담길엔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겨울공화국’(양성우의 시). 먼저 뉴라이트 세력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모욕당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 들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영조 진실화해위원장이 5·18 광주민중항쟁과 4·3 제주항쟁을 민중반란·폭동이라고 표현한 지경이다.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게 문제라고 봐요. 불교에서 말하듯 두 극단을 극복하고 균형된 시각에서 진리를 찾는 중도가 더 필요한 때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기념사업회가 나갈 방향을 물었다. “80년대 6월항쟁까지만 해도 민주화운동이 공동체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지요. 그런데 이른바 민주화 이후 일부가 기득권층이 돼버렸습니다. 민주화운동도 우리 기념사업회도 이제 시민 속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정 이사장은 특히 민주주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초등학교 때부터 독자적 가치관, 사회적 존재, 우주적 존재라는 총체적 사고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우선 방학을 이용해 계절학교식으로 이런 교육 실험을 해볼 생각이에요. 시민단체와 국가기관 함께할 수 있는 협력 모델도 만들려고 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시민교육 모델 창출과 교사 연수프로그램, 시민교육 활동가 아카데미도 준비할 겁니다.”
그는 고려대 1학년 교양학부 회장으로서 1964년 ‘굴욕적 한일협정 반대투쟁’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면서부터 민주화운동의 길을 걸었다. 70년대부터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서 가톨릭농민회(가농) 운동에 나선 그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85년)·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87년)·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89년) 등의 상임집행위원을 지냈으며,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장(91~98년)을 거쳐 지난해부터 인제 한국디엠제트(DMZ)평화생명동산에서 이사장으로 일해 왔다. 세번의 교통사고와 위암 등으로 모두 네 차례 수술을 받았다는 그는 야윈 뺨에 깊은 눈매 그리고 백발이 어우러져 수도자 같은 인상이다. “밭에서 20~30분 일했다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3시간이 지난 거예요. 무념무상. 그래서 내가 농사를 지은 게 퍽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의 질서를 알고 반성할 줄 알게 됐으니까. 결국 민주주의도 땀 흘려 일하고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연대의 힘은 그곳에서 출발하니까.” 기념사업회는 지금까지 박형규 목사, 함세웅 신부 등 성직자 출신들이 이사장을 맡아왔다. “70년대 운동을 얘기할 때 흔히 ‘종교적 외피’를 얘기하는데 그게 아니라 방풍림입니다. 종교 뒤에 숨는 것과 방풍림으로 쓰는 것은 다르지요. 80년대 중반 ‘가농’ 활동을 할 때, 천주교 쪽과 관계가 불편해지자 ‘그냥 가톨릭 빼고 농민회로 가자’고 했지요. 앞서 두분 이사장에 이어 제가 왔으니 ‘기념사업회가 이제 세속화의 길을 간다’고 쓰세요, 하하.” 글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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