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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싱크탱크 광장] “고용구조 바꿔야 한다” - “행정·제도 개선이 우선”

등록 2012-10-16 19:38수정 2012-10-19 08:14

지난 13일 경기 한신대 오산캠퍼스에서 열린 ‘2012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의 종합토론 세션인 ‘복지와 노동의 조화, 바른 해법은’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지난 13일 경기 한신대 오산캠퍼스에서 열린 ‘2012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의 종합토론 세션인 ‘복지와 노동의 조화, 바른 해법은’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
‘한국 사회정책의 방향 모색’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공약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개별 공약보다 통합적 관점에 따른 ‘정책 패키지’가 절실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12~13일 한신대 오산캠퍼스에서 열린 ‘2012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 사회정책의 방향 모색-복지와 노동의 조화’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제목 그대로 복지와 노동정책의 통합적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사회정책 관련 5개 학회가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었으며 오이시디(OECD)대한민국정책센터 사회정책본부 등이 후원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이 토론회 세션 가운데 노동과 복지, 복지와 조세, 복지국가 발전전략 등에 주목하고 이를 지면에 싣는다.

• 주최: 한국사회보장학회·한국사회정책학회·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비판과대안을위한사회복지학회·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 사회: 배준호 한국사회보장학회장(한신대 글로벌협력대 교수)

• 토론: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문진영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장(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 윤희숙 한국사회보장학회 기획이사(KDI 연구위원), 이호근 한국사회정책학회장(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호성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복지와 노동의 조화’ 해법

근년 들어 복지국가 담론이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복지국가는 몇 가지 정책을 도입한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3일 열린 ‘복지와 노동의 조화, 바른 해법은?’ 종합토론에서는 여당과 야당, 노동계와 경영계, 학계 등이 참여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노동과 복지정책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란 의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들은 두 정책의 조화 또는 결합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그 해법이나 우선과제를 놓고는 큰 시각 차를 보였다.

■ 김용익 “반복지적인 고용구조 개혁 필요” - 안종범 “복지·노동 충돌 바로잡아야” 특히 정치권을 대표해서 나온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과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의 견해차가 뚜렷했다. 김 의원은 무엇보다 고용구조를 시급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 격차가 큰 고용구조에 낮은 고용률과 ‘일자리 나누기’가 되지 않는 장시간 노동의 상황은 필연적으로 광범위한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올해 3월 통계청 기준으로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국민연금 33.2%, 건강보험 38.2%, 고용보험 37.6%로 현저히 낮다. 고용구조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의원은 “우리나라 공공부문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외국과 견줘 턱없이 낮다”며 “보건·복지·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질 좋은 일자리를 대거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은 복지와 노동이 충돌하고 있는 행정·제도적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복지·노동에 대한 거시적 논쟁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제도에 대한 점검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30개가 넘는 혜택을 받고, 수급자에서 탈락하면 모두 빼앗아 가는데 누가 일을 통해 자활을 하고 싶어 하겠냐”며 “또 부처별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노동정책이 중복되고 비효율이 극심한데도 이 문제에 대해 개선하려는 목소리는 작다”고 비판했다. 안 의원은 “지금 시행되고 있는 복지·노동 연계 제도부터 제대로 살펴 개선해 나가자”고 말했다.

“공공부문 사회서비스 일자리
외국과 견줘 턱없이 낮아
보건·복지·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질 좋은 일자리 대거 창출해야”

■ 노동계 “질 좋은 일자리가 핵심” - 경영계 “복지욕구 정확한 파악 필요” 노동계는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질 좋은 일자리가 핵심이라고 봤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연구원장은 “정규직·비정규직, 남녀 고용률 등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개선해야 제대로 된 복지정책이 이뤄질 수 있다”며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나서는 것은 물론 최저임금을 끌어올리고 사회보험 감면제도 등을 통해 열악한 일자리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국민연금을 활용해 보육·요양·병원 등 공적 인프라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정문주 정책본부장도 “비정규직 수가 계속 늘어나는데다 임금·노동조건 차별은 여전하고,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특수고용 형태 노동자 문제 등 노동시장의 양극화·이중구조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지난해 정리해고로 10만명이 일자리를 잃는 등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도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만큼 질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이 복지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재원의 한계 등을 고려해 복지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자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호성 상무는 “같은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대기업 비정규직은 처우가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낫고,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정년연장의 경우 그 혜택을 볼 곳은 그나마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공공부문이 될 것”이라며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우선적으로 어디에 재원이 투입돼야 하는지 정확한 실태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30개가 넘는 혜택을 받고
수급자에서 탈락하면
모두 빼앗아 가는데
누가 자활을 하고 싶어 하겠냐“

■ 학계 “복지와 노동의 조화, 구체적 정책 고민을” 학계에서는 복지와 노동의 조화를 정책에서 어떻게 실현할지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보장학회 윤희숙 기획이사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약 500만명의 빈곤층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며 “이들은 직업능력을 향상시켜 일자리로 연계시키는 복지와 노동의 조화가 필요한 계층인데, 노동계도 정부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사회정책학회 이호근 회장은 “쌍용자동차 구조조정의 경우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다양한 해법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며 “노동과 복지가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문진영 회장은 “저임금·고용불안 등 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실업·질병 등 빈곤층이 될 수 있는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복지와 노동의 조화된 정책이 필요하다”며 “공적 인프라가 전제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법인세·재산세 OECD평균 웃돌아
소득세 증세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

‘복지국가의 증세’ 세션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후보들이 복지 확대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선후보들은 구체적인 재원 방안에 대해선 소극적이다. 선거에서 증세를 내세우면 독배를 마시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12일 열린 ‘복지국가의 증세정치-복지국가의 경험과 시사점’ 세션에선 복지정책의 기초가 되는 세금체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복지제도를 확대하기 위한 증세정치의 대안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 복지국가의 저부담 조세체제의 증세정치 전망’이라는 발제에서 “박정희 정부는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며 “이런 정책 결과, 소득세는 낮추고 사회보험료 부담은 최소화하는 조세체제를 형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산업화시대의 이런 조세체제가 복지국가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야가 국민에게 약속한 복지국가의 큰 그림을 그리려면 그 재원은 증세에서 나올 수밖에 없지만, 법인세와 재산세는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을 웃돌게 과세하고 있다”며 “소득세를 통한 증세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지만 중산층과 저소득층일수록 부담이 크게 늘어나 정치적인 결정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양 교수는 “조세저항이 적은 사회보험료를 우선적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며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료 인상이 필요하고, 국민연금의 급여 인상 및 재정적 안정화를 위해 연금보험료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한국의 복지재정과 소득별 보편증세’라는 발제를 통해 소수에게만 증세 책임을 지우는 부자증세보다 다수의 시민이 증세에 참여하는 ‘사회복지세’ 도입을 제안했다. 오 실장은 “사회복지세는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등 과세자가 납부한 기존 직접세액에 최대 25%의 누진세율을 부과하는 방식”이라며 “사회복지세는 세입이 모두 복지지출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복지증세, 상위계층과 대기업이 대부분 세수를 책임진다는 점에서 부자증세의 원리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오 실장은 “일반 시민이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데 참여하면 복지제도의 관람자에서 행위자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대중적 복지주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학자의 시각은 다소 차이를 보였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본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 비율이 30%에 이르고 영세기업 비율도 높아 사회보험료 사각지대가 크기 때문에 사회보험료를 통한 증세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눈에 안 보이는 식으로 증세를 하면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에 국회 동의 등 정치적 절차를 거친 뒤 증세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복지세의 경우 급격한 누진세율을 적용하는데 이는 조세저항을 불러오게 된다”며 “비과세·감면 축소, 파생금융상품 거래세 부과, 법인세 감세철회 등을 통해 세원을 마련하는 게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


“복지국가는 싸워서 얻지 않으면
기득권층 시혜에 의존할 수밖에”

‘복지국가 발전전략’ 세션

‘권력자원이론’(Power Resource Theory). 노동의 권력자원은 노조 조직률과 좌파정당의 의석수와 집권기간 등으로 측정되며, 노조와 사회민주당이 강력할 때 복지국가의 발전이 가능해진다는 이론이다. 노동의 권력자원이 클수록 스웨덴과 같은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로 발전하고 작을수록 미국과 같은 잔여적 복지국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2일 밤 9시에 시작해 11시30분까지 열린 기획세션 ‘탈산업화 시대의 복지국가 발전전략’에선 권력자원이론이 우리나라에 적용 가능한지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는 ‘복지국가와 노동-논리, 역사, 한국적 함의’라는 발제에서 “복지국가의 정당성을 아무리 규범적으로 주창하고 복지담론이 아무리 융성한다 할지라도 복지한국의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기존 계급간 권력자원의 불균등 상태가 심각해짐에 따라 한국 복지도 그만큼 열악해지고 있다”며 “복지국가는 싸워서 얻지 않으면 기득권층의 시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는 “현재 한국의 현실은 사민주의 국가와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 유사하다”며 “복지 프로그램 특성뿐만 아니라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부재, 약한 노조 조직률, 기업수준의 단체협상 등 정치·사회·제도의 기반도 미국과 닮았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조금이라도 사민주의형으로 접근해 가기 위해선 한국 복지국가의 토양을 바꿔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치권과 친복지운동세력은 복지 프로그램의 구성과 설계, 제도 개혁 과제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누가 어떤 복지국가를 만드는가?’라는 발제에서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목표는 선명했으나,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며 “어떻게에 관한 논의는 경제민주화, 생산체제 및 노동시장체제의 재편, 전달체계 등 복지 인프라의 정비, 재원조달 방안의 문제에만 머물러 가장 중요한 주체와 연대의 문제에는 소홀히 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복지를 자신의 이익으로 받아들이고 그 실현을 위해 분투할 주체와 그에 동의하고 지지할 연대세력을 형성하지 못하면 보편적 복지운동은 언제라도 동력을 잃고 좌초할 수 있다”며 “2010년 이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던 복지이슈가 막상 2012년 총선에서 소강상태를 맞았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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