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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싱크탱크 광장] “경제민주화 위해서는 정치개혁 필요하다”

등록 2012-10-23 19:40

지난 19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제학술 세미나, ‘새로운 사회경제 패러다임, 새로운 사회정책’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노동연구원 제공
지난 19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제학술 세미나, ‘새로운 사회경제 패러다임, 새로운 사회정책’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노동연구원 제공
노동연구원 국제학술세미나
‘새로운 사회정책’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주자들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노동’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다. 경제 문제에 노동 문제가 파묻혀버린 형국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양극화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곧 노동의 문제와 직결된다. 노동의 문제를 풀지 않고 양극화 문제를 풀 수가 없다. 이런 가운데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 19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새로운 사회경제 패러다임, 새로운 사회정책’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를 열었다. 경제와 노동의 통합적 시각에서 새로운 사회정책의 패러다임을 찾고자 하는 또다른 자리였다. 이를 지상중계한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이와 함께 지난 22일 발표된 ‘서울시민 복지기준선’의 의의와 한계를 짚는 기고도 함께 싣는다.

영·미 경제민주화 방향

이날 국제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방향을 진단했다.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불거지고 있는 소득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도 모색했다. 나라마다, 학자 마다 해법은 달랐지만 신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 영국과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해법은? 1세션 ‘다른 모습의 자본주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흐름을 분석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경제사상인 케인스식의 해법과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엥겔베르트 슈토크하머 영국 킹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주도 성장론: 개념, 이론 및 정책’이라는 발제에서 임금주도 성장 이론을 소개한 뒤 “지금 필요한 것은 전지구적인 케인스식 뉴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슈토크하머 교수는 “노동자의 임금이 늘어나야 부채가 확산되지 않고 소비가 늘어난다”며 “임금 증가와 임금격차 축소는 성공적인 경제정책을 이룩하기 위한 정책 패키지의 핵심 구성요소”라고 말했다.

미국 자본주의는 정실자본주의
권력·자본이 결합해
사회의 부를 쥐고 흔들어…
시장 정상적 작동 위협받고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깨어있는 지식시민 참여
‘시장민주화 프로젝트’제안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 민주화 프로젝트: 데이터, 분석, 행동주의’라는 발제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프리먼 교수는 현재 미국 자본주의를 권력과 자본이 결합해 사회의 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정실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는 현재 자본주의 시장의 정상적인 작동이 위협받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깨어 있는 지식시민’이 참여하는 ‘시장민주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프리먼 교수가 주창해 추진중인 이 프로젝트는 3단계 접근방식을 취한다. 먼저 정부와 기업이 투명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그들로부터 정보를 구하고, 정보를 분석해 정경유착을 밝혀내면, 이를 근거로 정실자본주의를 압박하는 시민운동을 벌여 나간다는 것이다.

■ 소득불평등 해법, 3인3색의 대안은? 3세션 ‘노동·사회정책의 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소득불평등과 임금의 관계를 분석하고,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참석자들은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이베 마르크스 벨기에 안트베르펜대 사회정책학과 교수는 ‘위기시대를 위한 사회정책의 선택’이라는 발제에서 “지난 15년 동안 유럽에서 고용률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빈곤율은 감소하지 않았다”며 “이는 저소득층 가구에서 추가적인 취업이 일어나기 어려웠고, 일자리가 빈곤을 벗어나게 할 만한 임금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마르크스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유럽에선 ‘일을 통한 복지’ ‘사회적 투자’에 관심이 집중됐다”며 “개인의 경제적 자립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레인 켄워시 미국 애리조나대 사회학과 교수는 ‘좋은 사회는 높은 최저임금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발제에서 “미국처럼 노동조합이 약한 국가에서는 고임금 기반 사회가 되기 힘들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임금을 높이는 다른 정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일하는 차상위계층에 세금 환급 형태로 근로장려금을 지원하는 제도인 근로장려세제(EITC)였다.

하지만 장지연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사회 소득불평등 심화의 메커니즘과 정책선택’이라는 발제에서 “지금은 저임금 일자리라도 만들어 놓고 조세로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식에서 탈피해 전략의 선회를 고려할 때”라고 강조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임금격차를 축소하기 위해선 사회보험을 결합한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정책과 사회투자적 보편서비스를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최영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고용 안정을 기본으로 하고 조세정책으로 소득불평등을 잡고, 복지정책으로 빈곤을 잡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며 “고용·조세·복지 정책이 서로 호흡을 맞춰 작동해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


“한국 노동법, 시장을 법 위에 두어서는 안된다”

한국 노동시장 비정상

“노동자 보호는커녕
법 적용에서 제외…
예외조항은 원칙 밀어내”

#사례1: 2012년 8월24일 서울 시내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24살의 젊은이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는 시간당 5000원 안팎의 기본급을 받았는데, 1000원에도 못 미치는 400~500원의 배달수당을 벌기 위해 위험한 노동을 감행해야만 했다.

#사례2: 2012년 7월27일 경기도 안산의 자동차부품업체인 에스제이엠(SJM)에서 경찰의 묵인 아래 사용자가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파업노동자들에게 폭력을 가해 42명이 다친 사건이 발생했다.

#사례3: 2011년 노동연구원 조사에서 한 완성차회사의 노동자들이 매일 평균 9시간 이상 일하고 주말 중 하루는 특근이라는 이름으로 10시간 일했다. 노동자들은 1주일 평균 55시간 이상, 연간으로 따지면 2800시간 이상의 장기 노동에 시달렸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세션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노동 현황의 사례들이다. 강 교수는 ‘노동시장에서의 정상’이라는 발제에서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작은 상점의 비정규직에서 중소기업 노동자는 물론 심지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조차 비정상적인 노동 상태에 놓여 있다”며 “이는 규범으로서의 법과 현실에서의 법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노동법이 노동자를 보호해주기는커녕 법 적용에서 제외해버렸고, 노동법의 예외조항은 원칙을 밀어내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원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를 매우 좁게 해석해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형태 노동자 대부분을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법에서 예외를 인정한 규정이 원칙을 밀어내버린 대표적인 사례가 노동시간이다.

근로기준법은 1주 40시간을 원칙으로 하고, 연장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최고 한도는 1주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 자동차회사들은 최소한의 노동자만을 유지함으로써 노동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칙을 무시하고 예외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2010년 연간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419시간이나 길어 노동자들은 장기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강 교수는 “지난 30년 동안 한국 노동법에서 최고의 키워드는 시장이었지만 더 이상 시장을 법 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며 “시장이 노동법적 규제를 가벼이 여기면 불평등 심화와 공정성 훼손을 일으키기 때문에 법과 시장의 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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