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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고궁 가니 수화통역 해주더라…예전엔 꿈도 못꾼일”

등록 2013-04-10 20:36수정 2013-05-08 08:33

차별 대신 차이로-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2>장애인차별금지법 5년 그후
장애인들 인권에 조금씩 햇살
“법이 정당한 요구 가능케 해줘”

수화는 그의 모국어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는 때로 ‘모국어’를 구사하는 게 부끄러웠다. “전에는 수화로 대화하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봤죠. 심지어 흉내내는 사람들까지 있어서 몹시 불쾌했어요.” 청각장애인이 겪는 현실의 변화를 설명하는 함효숙(42)씨의 수화는 유창했다. 올봄 고궁 나들이에서 함씨는 수화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직장 행사에서도 수화 통역을 부탁할 수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도 즐겨볼 수 있게 됐다. 청각장애인용 자막 서비스가 있어서다. 이게 다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덕분이다.

함씨는 10일 낮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5주년 성과와 평가’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는 “장차법 시행 이전엔 권리를 침해받거나 불편해도 하소연할 길이 없었다. 장차법이 차별을 제거하는 데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법이 제정된 뒤 내 경험으로도, 주변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피부로 느낄 만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4월11일 시행된 장차법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구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통계가 변화를 보여준다. 장차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장애인 차별사건 진정은 256건에 그쳤으나, 장차법이 시행된 2008년 640건으로 2배 이상 급증했고 지난해엔 1339건으로 불어났다. 차별사건 접수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차별이 상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차법 제정이 장애인의 인권의식을 높이는 데 큰 기폭제가 됐다”(조형석 인권위 장애차별조사기획팀장)는 뜻이기도 하다.

장애인 차별 진정사건 접수현황
장애인 차별 진정사건 접수현황
2008년 4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피해 영역별 진정 접수 현황을 보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를 제공하지 않는 등 재화·서비스 일반에 대한 진정이 16.3%로 가장 많았다. 시설물 접근(14.4%)과 정보 접근·의사소통(12.2%)이 뒤를 이었고 장애인시설 등에서의 괴롭힘이 10.3%를 차지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시각장애인 김신지(28)씨는 “장차법이 제정되기 전엔 나의 불편을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지금은 나의 어려움을 상대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을 넘어 ‘정당함’으로 간주하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계도 없진 않다. 조형석 팀장은 “장차법이 차별받은 개인의 사후 구제만을 정하고 있어 적극적으로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이끄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장애인의 시설 접근을 돕도록 건축법을 개정하고 정보 접근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정보화기본법을 개정하는 등 추가적인 법 개정이 따라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장차법의 성과는 다른 소수자들의 권리를 한데 아우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월 임시국회 상정을 앞두고 있는 차별금지법안은 장애뿐 아니라 출신 국가, 인종, 병력, 장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학력 등으로 발생하는 모든 차별에 대한 구제를 내용으로 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서재경 활동가는 “인권에는 타인의 권리가 향상되면 나의 권리도 향상되는 상호의존적 성격이 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노인 등 다른 보행 약자들도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성소수자 등 또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향상되면 장애인들의 권리도 더욱 보장되고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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