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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무상복지’ 표현보다는 ‘보편복지’로

등록 2014-11-11 20:49수정 2014-11-11 20:56

현장에서
“지금은 대한민국의 무상복지 정책 전반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국고가 거덜나고 있는데 ‘무상 파티’만 하고 있을 것이냐.”

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 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나온 ‘무상복지’ 발언은 정부·여당과 보수 세력이 복지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를 짐작케 한다. “각종 선거 때 야기된 무상 시리즈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10일 발언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복지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 1항)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가 아니라, ‘돈 안 내고 공짜로 혜택만 챙기는 것’이자 표심을 손쉽게 거머쥘 수 있는 ‘미끼 상품’이 아닐까?

 정치권에서 ‘무상 시리즈’의 원조는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창당 때부터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복지가 무엇인지 그 개념조차 희박했던 시절에 ‘무상○○’은, 복지 제도가 잘 갖춰지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이름이었다.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무시무시한 의료비 걱정 없이도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행복한 상상’은 사람들에게 복지를 친숙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0년 뒤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무상급식을 내세워 이기고, 제1야당이 보편적 복지를 강령으로 채택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유력했던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가 자신의 선별적 복지 구상을 ‘한국형 복지’ 또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 이르렀다.

 ‘무상○○’이라는 용어의 효용은 거기까지였다. 복지정책의 이름에 무상을 붙이는 건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제1야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3무1반’(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으로 다시 무상을 꺼내들었다. 무상급식의 수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은 지난 지방선거 때 ‘무상버스’ 공약을 내걸었다. 복지를 쉽게 설명하려고 붙인 ‘무상’은 어느새 ‘복지=공짜’라는 오해를 부르고 키웠다. 여당과 보수세력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무상복지 포퓰리즘’이란 자극적인 딱지를 갖다붙여 마치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처럼 복지를 공짜로 제공하는 것인 양 공격해댔다. ‘왜 이건희 회장 손자한테까지 무상급식을 해줘야 하느냐’는 주장이 파급력을 얻은 건 이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무상복지’가 성립 가능한 단어인가? 비용을 직접 지불하지 않을 뿐, 커피 한 캔을 사 마실 때조차 우리는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고 그 세금이 곧 복지의 재원이다. 민주노동당이 ‘무상○○’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부유세 도입이라는 그 나름의 재정 대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부담해 다같이 인간답게 살자’는 게 복지이지, ‘공짜로 누려보자’는 건 복지가 아닐 뿐더러 가능한 일도 아니다.

 
조혜정 기자
조혜정 기자
그렇다면 ‘무상복지’라는 단어는 폐기해야 옳다. 더구나 특정 세력이 다른 진영을 공격하고 그나마 있는 복지마저 축소하려고 사용하는 것이라면, 쉽고 올바른 용어로 바꿔써야 한다. 보편복지, 협동복지, 의무급식, 연대보육….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프레임 싸움에서 이름짓기(네이밍)는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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