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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미혼모도 응원받고 싶어요”…혼외출산 외면하는 초저출산 나라

등록 2016-12-25 14:39수정 2016-12-26 11:59

22개월된 딸 키우는 20대
“싸늘한 사회적 시선에 서운”
‘양육 미혼모’ 2만4천명 작년 첫 통계
혼외출산 비중 1.9%…OECD 최저
‘초저출산 국가’인데 지원정책 부족
“고용서 차별금지 필요” 지적나와
김영은(22·가명)씨가 퇴근 후 미혼모자시설 구세군두리홈 내 공동 육아방에서 22개월된 딸을 데려오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김영은(22·가명)씨가 퇴근 후 미혼모자시설 구세군두리홈 내 공동 육아방에서 22개월된 딸을 데려오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자주 접속하는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 한 남성회원이 본인이 ‘미혼부’라고 고백했어요. ‘책임감 있다’ ‘응원한다’ 등 격려 글이 쏟아졌죠. 하지만 저는 그분처럼 용기를 낼 수 없었어요. 미혼모의 경우엔 ‘사고쳤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만 보시더라구요.”

22개월된 딸을 키우는 김영은(22·가명)씨는 ‘양육 미혼모’다. 양육 미혼모는 아이를 가진 뒤 낙태하거나 입양을 보내는 대신 직접 키우려는 미혼모를 뜻한다. 그는 지난 23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미혼모에 대한 싸늘한 사회적 시선에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며 “아이가 자라서 학교를 다닐 때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벌써부터 든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지난해 인구총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에서 18살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모는 2만4천명, 미혼부는 1만1천명에 이른다. 연령별로 보면, 미혼모는 35~39살(19.4%), 미혼부는 40~44살(22.6%)이 가장 많다. 영은씨처럼 24살 이하 미혼모·미혼부는 2777명이다. 미혼모에 대한 공식 통계가 나온 것은 지난해 인구총조사가 처음이다.

영은씨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2014년 봄이었다. 부모님과의 잦은 불화로 고등학교 졸업 무렵 집을 나온 뒤, 홀로서기를 도모하던 중이었다. 처음엔 혼자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을까 막막했지만,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 낙태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그는 “무조건 아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하루종일 인터넷을 검색했다”며 “포털 사이트의 지식공유 서비스에 올라온 미혼모 시설 연락처를 보고 상담도 받고 입소 대기신청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검색뿐이었다. 마땅히 주변에 도움을 청할 곳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입양 대신 양육이 중심인 미혼모 시설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고 영은씨는 전했다.

실제로 많은 미혼모들이 낙태와 입양, 양육 여부를 두고 고심하게 된다. 대부분 어려운 경제적 상황 탓이 크지만 미혼모를 ‘비정상’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이 크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해외입양아 수는 374명인데 이 중 95.7%가 미혼모 자녀다. 초저출산 시대에도 우리나라는 혼외출산 비중(지난해 1.9%)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데, 이는 미혼모를 포용하려는 정책적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혼모 김영은씨가 집에서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미혼모 김영은씨가 집에서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현재 영은씨는 미혼모자가족 복지시설 ‘구세군두리홈’에 머무르고 있다. 구세군두리홈은 출산과 산후 몸조리를 돕는 기본생활시설(두리홈)과 공동육아방, 공동생활가정(두리마을),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한 매장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가죽공예 자격증을 따고 공방에서 일을 하는 영은씨는 내년 7월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구세군두리홈의 여운자 사무국장은 “2008년 미혼모가족이 2년 이내 머무를 수 있는 ‘공동생활가정’을 만든 이후 양육을 결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해마다 이곳을 찾은 미혼모 200명 중 대부분이 아이를 입양보냈는데 최근에는 90%가 양육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국내에 미혼모자가족 복지시설은 모두 59곳이 있으며, 이 중 양육 미혼모가 2년 정도 입소할 수 있는 시설은 38곳이다.

정부의 ‘양육 미혼모’ 지원은 별도의 정책이 따로 있지 않고 한부모 가족 지원정책에 포함돼 있는 수준에 그친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정부 정책은 주로 미혼 임산부의 산전후 관리를 돕는 시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미혼모가 낳은 아이를 입양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도 컸다”며 “미혼모의 자립을 돕기 위해, 혼외임신을 수용하지 않는 직장 문화를 개선하는 등 구직 및 고용에서 미혼모에 대한 차별금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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