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의 사회적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이 지난 2010년 11월15일 백악관 북쪽 잔디 바깥쪽 펜스에 손을 수갑 채운 채 미군의 성소수자 정책인 ‘묻지 말고 말하지 말라’(Don’t Ask Don’t Tell) 폐기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군의 동성애자 군인 관련 정책의 변화는 여러모로 참조할 만하다. 미군 역시 동성애자 군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왔지만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 정책을 완전히 폐기했다. 현 주한 미8군 부사령관은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태미 스미스 준장이다.
미군 내에서 동성애자 군인 문제가 사회문제로 처음 떠오른 것은 1975년 레너드 매틀러비치 하사가 커밍아웃을 하면서부터다. 매틀러비치는 미 공군 장관에게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편지를 보내어 “동성애 성향은 업무 수행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으며, 동성애자를 강제전역 시키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 공군은 매틀러비치를 전역시켰다.
빌 클린턴 정부는 1993년 일명 ‘돈 애스크 돈 텔’(DADT·Don’t Ask, Don’t Tell) 정책을 시행했다. 미군은 이때부터 성적 지향을 사적 문제로 간주하고 입영 대상자에게 성적 지향을 고백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동성애자임이 여러 증거로, 혹은 본인의 발표로 드러나야만 강제전역 시켰다.
미군 내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던 이 정책에 균열을 낸 것은 2009년 3월 한국계 미국인인 댄 최 중위의 커밍아웃 사건이었다. 댄 최 중위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성소수자 졸업자 모임인 ‘나이츠 아웃’의 대변인을 맡으며 <엠에스엔비시>(MSNBC) 방송을 통해 동성애자임을 고백했다.
댄 최 중위는 방송에서 “지난 15년간 돈 애스크 돈 텔 법으로 군대에서 동성애자들이 계속 쫓겨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동성애자 졸업자 모임은 커밍아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댄 최 중위는 군대에 남기 위해 이성애자인 척 거짓말을 하는 것이 항상 정직해야 한다는 군인 정신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댄 최 중위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지만, 군에서 강제전역 당했다. 미국 사회엔 ‘돈 애스크 돈 텔’ 정책 폐지 논쟁이 불붙었다. 결국 오바마 정부는 2011년 7월 이 정책을 폐지했다.
‘돈 애스크 돈 텔’ 정책으로 지난 17년간 동성애자 미군 1만5천여명이 강제전역 당했지만 이제 미군 내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강제전역 당하는 일은 없다. 댄 최 중위는 다시 군으로 돌아갔고 군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들이 속속 임명됐다. 에릭 패닝은 동성애자 최초로 미 육군장관이 되었고, 지난해 7월 레즈비언 태미 스미스 준장이 주한 미8군 부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스미스 준장은 당시 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의 존엄성과 솔직함이 부정당하는 조건에서 군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수년 동안 동성애자임을 부인하면서 내 스스로 군복무를 정직하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반문해야만 했다. 그러나 난 내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고 나의 존엄함이 훼손되지 않는 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돈 애스크 돈 텔’ 정책 폐지 5년을 맞은 지난해 9월20일 당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성명에서 “돈 애스크 돈 텔의 폐지 5년 뒤 우리 군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는 점을 보고하게 돼 매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1960년대 제정된 한국의 군형법은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미국의 전시법을 참고해 제정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3년 동성애를 처벌하는 텍사스주법 조항에 대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을 개정하라고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국회에 동성애 처벌 조항을 없앤 군형법 개정안을 곧 제출할 예정이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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