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정치하는 엄마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 엄마와 함께 나온 미취학 아동이 유모차에 누워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공립 유치원·어린이집 취원율 40% 공약 달성을 위한 연도별 이행계획 공개를 촉구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인한 입법 부진과 구체적 계획 미비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렸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확충을 바라는 부모들의 우려가 커질 전망이다.
3일 국회와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초등학교 빈 교실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 채 보류됐다. 이 법안은 지난달 24일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 의결을 거쳤지만, 법사위는 “교육계와 충분한 협의가 없어 이해관계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며 심의를 늦췄다.
영유아보육법 처리가 어려워진 데에는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의 반대가 영향을 미쳤다. 법사위 회의 날 교육감협의회는 입장문을 내어 “국회 복지위가 소관기관인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및 교육부, 교육청 등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법률안을 가결했다. 학교 내 어린이집을 설치하면 수많은 혼란이 초래된다”고 밝혔다. 앞서 유치원연합회도 성명으로 “어떠한 협의도 없이 밀실 통과시킨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반발했다.
빈 교실 수선 비용이 신축의 4분의 1(정부 예산안 기준)에 불과해 효과적인 어린이집 확충 수단임에도, 교육계 등의 반발에 막힌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교육감협의회 등의 우려와 반발이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전국 22곳 어린이집이 지자체와 학교장 협의로 학교에 설치돼 있다. 해당 법안은 단지 법적 근거를 위한 것이며, 실제 설치를 위해서는 교육감·학교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작 문제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란 사실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지난해 말 기준 전국 2859곳이 운영 중인데, 이용 아동 비율 12.1%로 민간 어린이집의 51.4%에 견줘 턱없이 부족하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임기 내 40%까지 끌어올리려면 앞으로 3천곳 정도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더 지어야 한다. 해마다 최소 500곳 이상을 새로 확보해야 가능한 수치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유휴공간 활용 등 가능한 여러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를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연도별 로드맵이 없는 상태다. 복지부의 내년 예산안에서 드러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계획은 450곳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전체 보육예산에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등 공공이 책임지는 보육 인프라 구축 관련 예산은 전체의 2% 미만에 불과하다. 한 해 500곳 이상을 늘려야 겨우 공약을 맞출 수 있는 상황에서 첫해부터 부족한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먼저 내놔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정치하는엄마들’의 장하나 공동대표는 “이용아동 비율 40%를 확보하려면 해마다 8만명씩 이용아동 수를 늘려가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해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어떻게 늘리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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