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민 활동가가 숨진 2011년 당시 서울 중구 옛 인권위 건물 로비에서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성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이 인권위 건물에서 농성을 벌이던 중 건강이 악화돼 목숨을 잃은 ‘우동민 활동가 사망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고인이 숨을 거둔지 7년 만에 이뤄진 사과였다.
이 위원장은 2일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우동민 활동가 7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해 “인권위 위원장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어둡고 찬 공간에서 떨었을 고인의 두려움과 아픔에 깊은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날 추모행사는 고인의 어머니 권순자(73)씨를 비롯해 장애인 인권활동가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7년 만에 공식 사과를 받은 어머니 권씨는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우동민 활동가는 이명박 정부 3년차였던 2010년 11월 서울 중구 옛 인권위 건물에서 정부가 입법 예고한 ‘장애인활동지원법안’의 폐기와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였다. 중증장애인 다수가 겨울철 농성에 나섰지만, 농성장에는 12월3일부터 10일까지 수시로 전기와 난방이 끊겼고 엘리베이터 작동과 식사 반입도 통제됐다. 그해 12월6일 건강 악화로 응급실에 실려간 우 활동가는 이듬해 1월2일 숨을 거뒀다.
인권위는 거짓 해명에 급급했다. 인권위는 2012년 국회 인사청문회와 2014년 유엔인권이사회 등에서 “전기와 난방은 인권위가 관여할 수 없고 음식물 반입도 금지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 혁신위원회(혁신위·위원장 하태훈)는 최근 “손심길 당시 사무총장 주도로 인권위가 직접 만든 ‘농성대책 매뉴얼’에 따라 출입 통제와 난방 중단 등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전기가 끊겨 전동 휠체어를 충전하지 못하면서 농성자들이 화장실도 못 가는 일이 잇따랐고, 난방을 끊음으로써 농성자들의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이에 혁신위는 우동민 활동가 사망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진상조사팀을 구성하라고 인권위에 권고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은 이날 “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들에게 인권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인권위는 이후 이러한 사실을 애써 부인하거나 은폐했다”며 “인권옹호 기관으로서 혁신위가 권고한 바와 같이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 조사와 함께 인권 교육을 시행하고, 내부 지침 등을 검토하겠다. 그리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날 이 위원장의 사과문을 공식 누리집에 게시하거나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한겨레>는 우동민 활동가 7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인권단체 활동가의 도움으로 이 위원장의 사과문 녹음 파일을 입수해 전문을 함께 싣는다. 공식 사과인 만큼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아래는 이 위원장의 사과 전문이다.
고한솔 최민영 기자
sol@hani.co.kr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 사과문
공식적인 자리이니만큼 공식적인 문서로 사과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인권활동가, 그리고 고 우동민 활동가의 어머니를 비롯한 유가족 여러분, 오늘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곳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하다 산화한 분들의 묘역입니다. 삼가 고인과 함께 영정들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고 우동민 활동가 7주기 추모제를 맞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고인께서는 당시 2010년 겨울 장애인활동지원법의 올바른 제정과 국가인권위원회 정상화를 요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농성을 하셨습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 혁신위원회 진상조사 결과에서도 밝혀진 바와 같이, 추운 겨울임에도 중증장애인들에게 전기나 난방을 제공하지 않았고 이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엘리베이터 사용을 중단하거나 보조인 출입 및 음식 반입을 제한하는 등 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들에게 인권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7년 전 오늘 고인은 급성 폐렴으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더욱이 인권위는 이후 이러한 사실을 애써 부인하거나 은폐하였습니다. 어둡고 찬 공간에서 떨었을 고인의 두려움과 아픔에 깊은 위로와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장애인을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인권옹호기관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족과 활동가들께 무거운 마음으로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권옹호 국가기관으로서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사회적 소수자 및 인권옹호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혁신위원회가 권고한 바와 같이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후속조사와 함께 인권교육을 시행하고 내부 지침과 운영상의 문제점은 없는지 검토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원 모두가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고 초심을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그동안 많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성찰하겠습니다. 장애, 여성, 아동,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더욱 배가하겠습니다. 끝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다시 한번 고인과 유족, 그리고 활동가 여러분께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인의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유지를 받들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할 것을 약속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