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급여 수급자인 이유정씨가 지난 3일 오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다세대주택 반지하 집에 앉아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집세를 좀 덜 낼 수 있으면 틀니부터 하려구요.”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다세대주택에서 만난 이유정(가명·71)씨의 집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반지하방이었다. 화장실은 대문 밖에 있어 추운 겨울에도 온수가 나오지 않고, 난방이 잘 되지 않는 실내에서는 노란색 패딩을 벗기 어렵다. 이씨는 석달 전, 수년째 해온 건물 청소일을 그만뒀다. 이씨와 떨어져 사는 두 명의 자녀는 그녀를 돌볼 형편이 아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씨는 이달부터 정부에서 매달 40만원을 지원받는다. 생계급여(20만원)와 주거급여(20만원)를 합친 금액인데, 그나마 생계급여는 기초연금(20만원)과 국민연금(10만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액수가 줄었다. 월 70만원의 수입 가운데 전기요금 등 공과금과 대출 이자 23만원을 빼면 47만원이 남는다. 그 돈으로 이씨는 매달 월세(30만원)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 주거급여로 받는 돈이 실제 월세에 미치지 못하니, 당연히 생활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씨처럼 주거급여를 받는 수급자는 지난해 말 기준 81만명이다.
정부가 최저 주거수준을 유지하기에 모자란 현행 기초생활보장제의 주거급여액 현실화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예산 부담을 이유로 이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8일 참여연대는 ‘2017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회의 자료’ 등을 바탕으로 마련한 ‘주거취약계층 1·2인 가구 보호하지 못하는 주거급여’ 보고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주거급여 수급자인 이유정(71·가명)씨가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다세대주택 반지하 집에서 나와 대문 밖 화장실에서 차가운 물로 손을 씻고 있다. 집 안엔 화장실과 욕실이 없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보고서를 보면, 중생보위는 애초 올해부터 주거급여액을 최저 주거수준의 임차료에 맞춰 “현실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오는 10월부터 적용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따른 예산 부담을 이유로 이를 후퇴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집중한 탓에 주거복지의 질 개선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8월 정부가 발표한 올해 주거급여액은 2017년 대비 2.9~6.6%(지역별 차등) 올랐다. 이에 따라 수급자 가운데 1급지로 분류되는 서울의 1인 가구는 21만3천원, 2인 가구는 24만5천원의 주거급여를 지원받는다. ‘현실화’ 때의 금액인 30만7천원, 34만4천원보다 9만~10만원이 적다.
문제는 대다수 주거급여 수급자(93%)는 생계급여 대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최대 50만여원(1인가구)에 불과한 생계급여를 쪼개 주거비까지 충당해야 하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현 급여액은 국토교통부의 최저 주거면적(1인가구 14㎡)인 주택에 사는 이들이 부담해야 하는 ‘환산월세’(보증금 부담까지 고려한 월세로 전월세전환율 4% 적용)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참여연대는 “주거급여 수급자들 대부분이 생계급여로 받는 돈을 주거비에 쓴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에게 최저수준의 주거라도 보장하자는 게 제도의 취지라면, 토지주택공사와 사회보장정보원이 확인한 수급자의 실제 임차료 수준으로 기준임대료(주거급여액의 상한)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본적인 주거의 질에 대한 사회적 적정선을 설정했다면, 거기에 급여를 맞춰주는 게 원칙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은 채 대상만 늘린다면 보여주기식 복지 확대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주거급여 현실화를 이루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물가상승률만 반영한 예년 인상폭에 견주면 많이 오른 편이다. 재정여건 등을 고려할 때,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함께 주거급여 수준을 이만큼 올린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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