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오른쪽)와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이 지난달 21일 서울 신촌의 양 교수 연구실에서 한국 복지 제도의 발달 수준이 낮은 원인과 앞으로의 과제를 두고 대담을 하고 있다.
“한국은 포용적 성장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14일 권고한 내용이다. 한국은 2016년 기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에 쓰는 돈은 국내총생산(GDP)의 10.4%로 오이시디 최하위권이다.
한국의 복지 지출 규모는 왜 이렇게 작을까?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출간한 <작은 복지 국가 한국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the Small Welfare State in South Korea)을 통해 선거제도, 노조 유형, 관료제, 산업화의 발전 양식 등 한국 사회의 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기존의 연구가 유교주의, 가족주의 등 한국의 특수한 지역적 변수에 주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이 책은 사회과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됐다. 양 교수는 이 책으로 한국정치학회의 2017년 인재저술상을 받았고, 지난달 15일엔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대의 초청으로 기념 세미나도 했다. ‘작은 복지국가 한국’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양 교수와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원장이 대담을 했다. 대담은 지난달 21일 서울 신촌 양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양재진 교수의 <작은 복지국가 한국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the Small Welfare State in South Korea) 표지. 이 책은 영문으로만 출간되었다.
이창곤(이하 이) 책 제목이 <작은 복지국가 한국의 정치경제학>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작은 복지국가’라는 개념이 낯설 것 같은데 설명 바란다.
양재진(이하 양)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작은 정부’와 비슷한 개념이다. 공공복지의 규모가 작고 제도적으로 저발전했다는 개념을 포괄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몇 가지 지표를 보자면 소득보장의 관대성이 낮고, 사회서비스 발달 수준이 낮으며, 공공 사회복지 지출이 낮은 국가다.
이 왜 한국이 작은 복지국가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권력자원론, 국가론 등 기존의 복지국가 이론에서는 산업화, 민주화, 노동 운동의 자유화, 관료제의 발달 등을 복지국가의 발전 원인으로 본다. 한국도 이런 구조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왜 유럽과 다른 식의 복지가 발달하였는가?
양 각 원인별로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복지국가 발전 이론에 따르면 산업화 정도가 높을수록 노동자를 위한 복지가 발달한다. 한국의 경제 수준은 선진국에 달하지만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 2016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을 보면 오이시디 평균은 21%인데 한국은 10.4%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수출 지향 산업화’ 때문이다. 지금은 첨단 산업이 많이 발달했지만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가격경쟁력이 중요했다. 복지 지출을 늘리면 인건비가 오르고 상품의 가격도 상승할 텐데 어떻게 복지 정책을 도입하겠나. 그러다 보니 사회보험 도입은 계속 늦춰지고 도입을 하더라도 보험료 수준이 낮게 책정되었다.
이 복지 정책의 수요 측면은 노동이라 볼 수 있을 텐데, 권력자원론에서는 노동의 힘, 즉 조직률을 중요한 요소로 본다. 권력자원론에 따라 보면 한국은 노동자의 조직률이 낮기 때문에 복지가 발달할 수 없는 구조다. 복지 정책을 추진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어찌 보나?
양 권력자원론에서 가정하는 노동조직은 산별노조다. 산별노조가 발달해 있는 유럽은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 등 노동자 전체를 위한 정책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별노조는 연맹일 뿐 단체협상권은 각 기업의 노조가 가지고 있다. 기업별 노조는 기업 내 노조원의 임금 인상과 기업 복지에만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결국 공공복지를 추구할 동력은 사라지게 됐다.
노사정위 같은 전국 단위 논의 필요
이 조직 노동이 복지국가 발전을 위해 힘을 쓰려면 단체협상권이 있는 산별노조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얘긴가?
양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산별노조 운동이 무산되었다. 대기업 노조가 산별노조에 참여하지 않았고, 참여한대도 단체협상권을 양보하지 않았다. 노사정위원회 같은 전국 단위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전체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거시경제 부분에서 조직 노동이 양보해야 할 지점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노조는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고용 유지를 위해 필요하면 임금 인상도 자제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불가피한 경우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1997년 아이엠에프(IMF) 사태와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구조조정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동안 기업 복지만 강화했기 때문에 사회안전망이 취약해서 그렇다.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실업 노동자에게는 사회보장을 통해 재기할 기회를 주면 된다. 당장은 대기업과 공기업 노동자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들에게도 이득이다. 기업 복지는 기업 안에 있을 때만 유효하고 회사가 망하면 아무 소용 없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지급액을 올리고 퇴직연금과 퇴직금을 국민연금과 합치는 등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이 복지 정책의 공급 측면에서 한국의 선거제도와 정치구조를 설명해 달라.
양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데 있어 증세를 통한 재원 확보는 필수적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선 증세가 어렵다. 산업화 시기에 국가가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세금을 낮춰서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증세를 추구하려 해도 선거제도가 걸림돌이 되었다. 유럽처럼 비례대표제면 잃은 표만큼만 의석수를 잃지만, 한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해서다. 게다가 소선거구제에서는 전국 단위에서 시행되는 복지 정책보다 지역의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다. 또한 1등만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단순다수대표제는 노동운동 세력이 의회에 진입하는 데 큰 장벽으로 작동한다. 전국선거를 치르는 대통령은 복지에 관심을 갖지만, 한 표 차가 중요한 승자독식 체제라 보편증세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는 어렵다.
이 한국의 복지 정책을 결정하는 건 경제 관료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경제 관료가 다른 부처 관료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복지 지출의 거부권 행사자로 행동하지 않나.
양 경제 관료는 예산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영향력이 크다. 예산을 지출하는 부서는 예산을 잘 사용하는 게 제 역할인 것처럼, 경제 관료는 금고지기로서 지출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경제 관료의 힘이 너무 세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총리를 겸하며 모든 국가 정책의 예산 세목까지 다 결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이 자원 배분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 2000년대 초반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정책실장을 지낸 제프 멀건에게 복지 정책을 누가 결정하냐고 물어보니, 재무장관인 고든 브라운이라고 하더라.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자원 배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다 해도 거버넌스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경제부처 수장과 사회부처 수장이 서로 자기 주장을 펼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측면에서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장관이 논의하는 골든 트라이앵글을 구상했지만 실행하진 못했다.
경제·복지는 선순환 가능…이분법에서 벗어나야
양 사회전략회의나 사회관계장관회의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는 재정기획관을 통해 대통령이 자원 배분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원천적으로 힘의 우위는 경제 관료에게 있지만 제도적으로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정책이 경제 논리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런 문제는 경제와 복지를 이분법으로 나누기 때문에 발생한다. 복지와 경제는 선순환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 관료들도 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은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브라운 시기만 보더라도 사회 정책과 사회투자 정책이 많이 늘었다. 우리나라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타이밍과 시간 배분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양 미국이나 영국 같은 자유주의 복지국가와 유럽 등의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의 차이점은 중산층의 복지 욕구와 사회적 위험을 누가 보장해 주느냐다. 민간이나 개인 차원에서 보장해 준다면 자유주의 국가에 가까운 것이고, 공공복지가 중산층에게도 사회적 보호를 제공한다면 유럽식, 스칸디나비아식이라고 본다. 복지를 누가 먼저 제공했는지 선후관계가 중요하다. 민간 복지는 공공복지와 상충 관계다. 하나가 먼저 시작된다면 다른 하나가 도입되기 어렵다.
한국은 공공복지가 늦게 발달했고 민간 복지의 규모가 크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수준이 중산층에게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복지, 퇴직금, 민간 의료보험 등 민간 복지가 확고히 자리 잡은 상황에선 공공복지를 확대하기 힘들다. 국민연금의 보험료가 9%에 머물러 있는 것은 퇴직연금과 퇴직금이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유럽도 안 하는 퇴직연금을 제공하면서 국민연금의 보험료를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이 지금까지 한국의 복지 정책을 수요·공급 측면과 경제·사회 정책 측면에서 풍부하게 얘기해줬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살펴보자. 한국 사회가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좋은 복지국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복지국가의 비전과 관련하여 우리가 현재 주목해야 하는 현실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양 교수의 견해가 궁금하다. 저출산 고령화도 심각한 문제 아닌가?
지난해 9월 <작은 복지국가 한국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the Small Welfare State in South Korea)을 출간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양 약한 사회적 이동성이 우리가 처한 큰 문제 중 하나다. 사회적 이동성을 강화하려면 공교육이 잘 돼야 한다. 생애주기대로 고려해보자. 중산층도 만족할 수 있는 양질의 공보육이 저소득층 아이에게 제공돼야 한다. 현재 그런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릴 때부터 계층 구분 없이 어울려 좋은 교육을 받아야 사회적 이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 초중등 교육을 보자. 중산층 아이들이 현재 사교육을 통해 받는 교육을 저소득 가정이나 낙후 지역의 아이들은 공교육을 통해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배경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타고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직업교육, 평생교육도 공적 관점에서 제공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사회적 이동성의 제고보다는 격차를 줄이는 평준화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는 거 같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되 결과적 격차는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 격차는 사회적 이동성이 전제되어야 용인될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복지 정책만으로 출산을 늘릴 수는 없다. 그나마 관련 있는 건 고용 정책이다. 저출산 고령화는 노동력의 축소를 야기하기 때문에 생산성에 위협이 된다. 스칸디나비아 모델은 고용의 양과 질을 높여 이에 대응한다. 여성이나 취약계층도 직업을 갖고 일을 하면서 능력 발휘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까 얘기한 것처럼 공보육과 직업교육이 중요하고 적절한 소득보장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고용보험으로 육아휴직수당을 줄 게 아니라 부모보험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성별과 관계없이 육아휴직을 충분히 쓸 수 있다. 그동안 사장되었던 노동력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며 국가의 생산성을 높이면 복지국가의 물적 토대도 튼튼해지고 더 발전할 거라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의 대안 될 수 없어
이 올해 들어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노동이 많이 얘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큰 도전인 만큼 사회보장 체제의 새로운 설계도 필요하다. 그 해답을 기본소득에서 찾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양 기본소득을 사회적 배당으로 본다면 모를까 사회보장의 대안으로 보는 건 적절하지 않다. 기존의 사회보장은 사회적 위험에 빠진 사람과 복지 욕구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보편적으로 보장하되, 위험과 수요가 있는 곳에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이 원리에서 벗어난다. 사람마다 복지 수요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으로 돈을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에게 자동차 사고가 나든 말든 걷은 보험료를 조금씩 나눠주고 막상 사고가 났을 때 줄 돈이 없다고 하면 말이 되나.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노동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존 사회보장의 원리를 조율하여 해결해야 한다.
사회보험에 사각지대가 있어 문제라면 이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 이력 관리도 안 되고 고용계약 관리도 안 되는 저소득자에게 사회보험료를 추징하려고 하니 논란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 스웨덴의 사회보험처럼 고용주에게 임금 총액의 일정 비율을 사회보험료로 납부하게 하고 모든 노동자는 근무 경력만 있으면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많이 없앨 것이다. 사회적 기여를 하지 못하는 인구가 늘어나면 기본소득 외에 대안이 없지 않나.
양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일수록 일자리가 늘어난다. 독일이나 우리나라만 봐도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이나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보완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노조는 기업 복지에만 집중하고 시민사회와 운동가들이 기본소득에 집중하면 복지국가 건설은 도대체 누가 하나? 기본소득보다 사회보장 강화가 우선이다.
이 한국은 ‘저부담 저복지’ 국가, ‘삶의 질이 낮고 불평등이 높은 나라’다. 이걸 바꾸려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양 문재인 정부는 기본적으로 복지 지향적이고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국가를 건설하려면 물적 토대가 튼튼해야 한다. 정부의 재정 지출을 늘리는 소득주도 성장은 중장기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 경제가 성장해야 복지 서비스의 재정적 지속성을 추구할 수 있다. 민간경제의 혁신과 고용 창출을 위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그 후에 기존의 복지 정책을 합리화하고 효율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논란이 되는 정책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김대중 정부만 하더라도 의약 분업, 의료보험 통합, 국민연금 도시지역 확대 등 논란이 되는 정책을 많이 추진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사회 정책의 진척 속도가 느리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문재인 케어 정도다. 문재인 케어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골자로 한다. 정책을 추진하는 건 좋지만, 비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금처럼 민간 의료의 비중이 높은 상태에서 보장성만 강화할 경우 의료비가 과다하게 늘어날 수 있다. 행위별 수가제도의 대대적 개혁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비례대표제 도입되면 증세 추진 부담 줄어들 것
이 책에서 후발 복지국가인 한국에 제도적 변화가 없다면 일본이나 미국의 길을 걸을 것이라 예상했다. 제도 부분에서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듯한데, 개헌 논의와 정치 경제적 변화에 관한 의견을 알고 싶다.
양 아까 얘기했던 노조 조직이라든지 선거제, 관료제, 산업구조의 큰 변화가 없는 한 한국의 복지 정책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편이 논의되고 있는데 실제로 제도가 바뀐다면 복지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비례대표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이 도입된다면 증세(를 추진할 때) 부담이 다소 줄어들 것이다. 저소득자, 노동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의 의회 진출도 늘어날 테니 복지 분야가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다만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때는 독일이 최소득표율 5%의 문턱을 두는 것처럼 다당제의 폐해를 예방할 조치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소선거구제에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이익만 고려하는 게 문제이듯, 문턱이 낮은 다당제에서는 소수 집단의 이익만 고려하는 정당이 대거 탄생할 수 있다. 공공복지는 만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지 기반이 넓어야 한다. 중도좌파 혹은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거대 정당이 헤게모니를 쥐고 국정을 운영하는 게 좋다. 작은 복지국가 한국을 만든 5가지 제도 중 하나만이라도 바뀐다면 우리도 복지국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정리·사진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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