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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영상] “태움? 병원 불판을 꺼야죠” 간호사들의 ‘시원한 수다’

등록 2018-08-07 14:50수정 2018-08-07 17:49

‘박선욱 간호사 죽음’ 계기로 모인 간호사들
프로젝트 ‘간호사이다’ 꾸려 간호계 문제 공론화 나서
“간호사 권리 위한 싸움은 곧 환자 권리 위한 싸움”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던 고 박선욱 간호사가 병원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을 기억하시죠? 사건이 발생한 다음 달인 3월, 같은 병원의 한 간호사를 만났습니다. 병원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대자보를 썼던 간호사였습니다. (▶관련 기사 : “12시간 근무면 행복” 간호사 선배보다 더한 병원의 ‘태움’) 그는 “제가 (누군지) 알려지는 것도 무섭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게 더 두렵다”며 간호업계의 고질적인 인력부족 문제를 밝혔습니다. 간호업계 내 ‘태움’ 문화를 개인의 인성 문제로 돌리기 어렵다고도 말했습니다. 과중한 업무 부담을 방치하고 있는 조직의 문제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뷰가 나간 뒤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병원이 해당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습니다.

“조회 수 올라간다고 (해당) 기사를 클릭하지 말라던 수간호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에서야 (병원 쪽에서) 대책들이라며 내놓고 있지만 실제 근무하는 간호사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대책들입니다. 진상규명이나 사건에 대해 자체적인 설명은 당연히 없었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적인 부분으로 힘들고 대부분이 번아웃이 된 상태임에도 그에 관해 표현하면 ‘그만두라’는 식의 관리를 행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답답한 마음에 이메일 보내봅니다.”

그 후 5개월, 간호업계에선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여기, 전·현직 간호사와 의료연대본부 소속 조합원이 모여 꾸린 ‘간호사이다’라는 프로젝트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독립문화공간에 모여 작은 토크쇼를 열었습니다. 간호 노동자로서 느꼈던 업계의 문제점과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올해 초 간호사의 자살과 ‘태움’ 문화만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간호업계의 문제가 비단 이것뿐만은 아닙니다.

“서울대병원 간호사 첫 월급 36만원”, “선정적인 장기자랑 강요당한 성심병원 간호사들”, “밀양세종병원 화재로 숨진 간호사”, “제일병원 간호사 50명 집단 사직” 모두 2017∼2018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대체 왜 간호업계에선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지난 2일 ‘간호사이다’를 꾸린 최원영, 엄지(가명) 간호사, 이민화 전직 간호사를 직접 만났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이들은 태움을 사실상 방치하는 병원, 인력 부족문제를 임시방편식 땜질로 처리하려는 정부, ‘간호 노동’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사회,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간호사의 이익은 환자의 이익과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싸움은 곧 “환자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라고 말입니다.

■ 태움은 병원이 만든다 (00:31)

민화: 간호사들이 너무 힘들어하는데 이 문제를 정리를 해보면 결국엔 인력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고요.

원영: 신규간호사는 자기 혼자 100가지는커녕 50가지, 30가지도 하기 힘들거든요. 문제는 신규간호사한테 100가지 하라고 일을 던져주는 병원이 잘못된 건데 사실 그런 구조에 대해서 “왜 우리 신규에게 이렇게 일을 많이 줬어요~”라고 말을 할 순 없으니까 결국 눈앞에 신규간호사가 실수를 저지르거나 일이 더뎌서 내가 거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을 때, 결국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뭔가 냉담하게 말을 하게 되거나 하면서 태움이 발생하는 거죠.

엄지: 그렇게 빠듯하게 (적은 간호사 수로) 병원을 굴리려면, 평등하고 잘 가르치고 성심성의껏 가르치고 이런 에너지를 절대 들일 수가 없거든요. 관리자급들이 태움을 조장하고, 병원은 방관하는 거죠.

이들은 “‘태움’의 정도는 개인의 인성 차이도 물론 있다”면서도 “태움이 만연하다는 건 구조적인 문제가 바탕에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간호업계를 군대 문화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소위 ‘까라면 까’식의 상명하복에 익숙하고, 어떤 지시가 왜 잘못됐는지 묻기 전에 일단 시키는 것부터 해야 하는 문화라는 설명입니다. 서로를 최대한으로 쥐어짜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병원 구조, 정말 간호사들만의 잘못인 걸까요? 간호사들은 병원에 묻습니다.

■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02:15)

원영: 만약에 내일 아침에 당장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저도 당장 내일 출근해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에프엠’(교범)대로 간호를 못 하거든요. 예를 들면, 체위 변경 몇 시간마다 해줘야 하고 그런 것들이나, 환자가 불러서 눈을 마주치고 경청을 하라고 하는데 그럴 시간이 어딨어요.

민화: “잠시만요”가 간호사들이 제일 자주 하는 말이라고 해요. (웃음)

엄지: 이런 현실을 뭔가 개선을 하려면 정부하고 병원이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거든요. 조직문화, 태움 같은 것도 병원이 나서지 않고 자꾸 간협(간호협회)에서 ‘행복한 간호사’ 이런 배지를 (나눠주고) 다는 것도 전혀 (도움이 안 돼요). 그것도 정말 보여주기 식이에요.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 정부는 문제를 악화시킨다 (03:30)

정부는 간호업계의 인력부족과 과중한 업무 부담을 ‘야간 전담 간호사’를 만들거나 ‘간호대생 정원 증가’ 등을 통해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안은 근원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간호사들은 말합니다. 간호사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하다기보단, 개선되지 않는 업무·실습 환경 때문에 장기휴직을 하거나 임상을 떠나는 간호사들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충분한 보상 없이 노동을 해야 하는 환경을 바꾸는 일이 우선인 이유입니다.

원영: 인력이 많이 그만두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꾸 그만두니까 우리가 근로조건을 좀 좋게 해야겠다”거나 “그만뒀으니까 새로 뽑아야지” (둘 중 하나)인데 (병원 입장은) 계속 후자가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간호 인력을) 구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점점 졸업생들이 많아져서 간호사들이 넘쳐나니까요. 신규간호사들을 채용해서 적은 월급으로 1~2년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는 식이죠. 종이컵처럼요.

■ ‘간호 노동’이 가려진 병원 (04:40)

‘의료 수가’는 존재하지만 ‘간호 수가’는 병원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사의 노동 밑에 가려져 있는 수많은 간호 노동은 ‘돌봄 노동’으로 평가 절하되기 일쑤입니다. 당연히 간호사의 경력과 전문성도 제대로 평가받기 힘든 상황입니다.

엄지: 간호사는 수도 제일 많고 하는 일도 굉장히 많은데, ‘간호 수가’라는 게 없어요. 제가 수술 기구를 준비하고, 건네주고, 수술에 참여하고, 검체를 관리하고…. 이런 일에 대한 피(fee)는 없거든요.

원영: “우리는 진짜 간호사 한 명도 없어도 돼”라고 말하는 부서는 병원에 한 군데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 부서가 내는 수익에서 간호사의 기여도는 전혀 고려해주지 않는 거죠.

엄지: 만약에 외과 의사가 수술을 3000회 했다, 5만건 했다 이런 건 병원이 선전하거든요. 간호사는 유일하게 그런 평가를 받는 게 ‘이달의 친절 간호사’예요. 내가 업무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는지, 그런 걸 표현하는 언어가 병원에는 전혀 없어요.

■ “간호사 되려면 성형하세요(?)” (06:01)

이렇게 간호 노동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는 신규간호사를 ‘외모’로 뽑는 경향과도 이어집니다.

원영: 서울대병원에 복장 규정이라고 ‘이런 거 안 돼요’란 안내문을 붙여놨는데, ‘민낯 안돼요’가 있는 거예요. (웃음)

엄지: 제가 학생 때 이런 말도 돌았어요. ‘빅 파이브’ 병원 중에 어느 병원은 고양이상을 선호하고, 어느 병원은 아나운서상을 선호하고….

민화: 그러다 보니까 (간호학과) 교수님들도 학생들 면접을 보내고 할 때, 외적인 부분을 조금 관리를 시키는 교수님들도 생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어쨌거나 현실을 당장 못 바꾸면 일단은 취업은 시켜야 하긴 하니까, “취업이 되려면 너 피부과도 좀 가야 되고, 성형외과도 좀 가봐라” 이런 식으로 제안을 하시는 교수님들도 (있어요).

■ 고 박선욱 간호사를 기억하며 (07:38)

이들은 고 박선욱 간호사 사건을 계기로 뭉쳤습니다. 이 일은, 간호사들이 함께 싸우고 연대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합니다.

엄지: 박선욱 간호사 이전에도 자살한 간호사들이 있었는데 연차가 굉장히 다양했어요. 3년차, 7년차, 심지어 20몇년차까지 있었거든요. 그러면 “태움이라는 것이 뭔가?” 생각을 해봐야죠. 결국 병원 시스템이 간호 노동자를 태우고 있는 거거든요. 쥐어짜면서요.

민화: 사람이 일을 하면서 10kg 넘게 살이 빠지면서 힘들어 하는데 그냥 계속 “그래도 해야지. 너 독립해야지. 환자봐야지”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시스템이 굉장히 잘못됐다는 생각을 해요. 누가 그 사람을 예민하고 우울하고 소심하게 만들었는지를 봐야되는 것 같아요.

■ 내가 계속 싸우는 이유 (08:54)

원영: 간호사의 이익은 환자의 이익과 같이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간호사가 조금 더 여유롭게, 시간을 두고 생각할 수 있고 여유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환자한테 반드시 좋아요. 그렇기 때문에 간호사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게 결국 환자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길이기도 하고요. 환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해주는 것이, “나는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치료받고 싶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는 게 또 간호사의 권리와도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 ‘간호사이다’를 왜 만들었나 (09:15)

민화: 간호사들이 힘든 일에 처했을 때 어디든지 얘기를 해볼 수 있는 그런 조직 중 하나로 됐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캐주얼하고 편한 느낌으로요.

엄지: 우리가 뭔가 아주 거창하고 무거운 얘기는 아니더라도, 이런 간호사 선배들이 있고 임상 밖에도 이런 다양한 길이 있고,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심리적인 위안도 주고 싶고요. 그런 걸 보고 (누군가는) “아 저렇게 살고 있는 언니들도 있구나. 그럼 나도 조금 더 저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용기도 좀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제2의 박선욱 간호사’가 나오지 않는 병원, 간호사들이 여유를 갖고 환자를 돌보고 그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병원, 그런 병원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아닐까요? 이들의 싸움에 우리 모두가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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