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뒤로 국민연금공단 노조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민적 합의 없는 기금체계 개편을 반대한다며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운영체계 개편방안을 내놨다가, 노동자·사용자·지역가입자 대표 등 기금위 민간위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위원의 자격요건을 신설하고, 복지부 산하에 기금위 활동을 지원하는 사무국을 두겠다는 내용이 뼈대다. 민간위원들은 가입자 대표성과 기금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개선방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 개정을 예고한 점도 논란이 예상된다.
5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위 7차 회의에서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운영개선방안’을 보고했다. 기금운영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기금 장기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 기금위가 전문성을 갖추고 실질적인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을 하도록 만들겠다”며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개선방안에서 민간위원의 자격요건을 금융·경제·법률·사회복지 분야에서 3년 이상 경력을 보유한 교수나 박사 학위 소지자,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로 한정하자고 제시했다. 현재 기금위는 복지부 장관(위원장)과 정부위원 5명, 민간위원 14명으로 구성돼있다. 국민연금법 제103조2항에는 민간위원은 사용자 대표 3명, 노동자 대표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소비자단체·시민단체 추천 2명으로 정해져있다. 별도의 자격이나 심사없이 가입자 단체가 추천하면 위원장이 위촉한다. 정부는 기금위 상설화를 위해 상근위원 3명을 두자고 제안했다. 사용자·노동자·지역가입자 단체가 각각 1명씩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기금위 산하 투자정책·수탁자책임·성과평가보상 등 3개 소위원회를 하나씩 전담한다. 모든 민간위원은 가입자 단체 추천인으로 구성된 별도의 ‘추천위원회’ 심사를 통해 뽑힌다. 정부는 이를 시행령 개정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법 개정은 국회에서 논의가 오래 걸리는데 기금운용에 대한 국민 불신 해소가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기금위 민간위원인 이찬진 변호사는 “법에 명시된 가입자 단체 추천권을 시행령에 근거해 바꾸겠다는 건 위임 입법의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법 제103조7항에는 ‘기금위 구성 및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돼있어,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지에 대해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또한 매달 기금위 정례회의를 열어 기금운용 성과평가·운용 현황을 점검하고, 복지부 산하에 기금위 활동을 지원하는 사무국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재적위원 3분의 1이상 동의할 경우 민간위원에게도 안건 부의권을 주기로 했다. 지금까지 기금위는 1년에 6~8차례 열렸으며, 보건복지부만 안건 부의권을 갖고 있었다.
이날 기금위 회의에서는 정부 개선방안에 대해 거의 모든 민간위원들이 강한 반대 의견을 내놨다. 민간위원인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로 운용되는 국민연금은 이해관계자의 조정과 합의가 필수인데 전문가들은 대표성이 부족해 책임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며 “정부가 졸속안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이찬진 변호사는 “민간위원을 심사를 통해 뽑으면 노·사와 지역가입자 3자가 모두 동의하는 민간위원만 추천될 수 있어 소신있는 전문가가 민간위원이 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고 우려했다. 회의에 앞서 국민연금공단 노동조합 등 민주노총 조합원 10여명은 ‘복지부의 기금운용 관제 통제 강화 절대반대’ 등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앞서 지난 4일 노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가입자 대표성을 무력화하고 기금운용에서 복지부의 관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기금운영체계 개편 반대 성명을 내놓았다.
민간위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복지부는 애초에 11월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에서 한발 물러났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봐서 시행령 개정 시기와 내용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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