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 늘어날수록 공적 복지 선호가 증가하지만 자산이 상위 20% 수준을 넘으면 이런 경향이 바뀌어 복지 선호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산과 소득이 상호작용하면서 개인의 복지 태도에 영향을 준 결과로 풀이된다. 자산 축적이 심화하면 복지국가의 지지 기반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 복지국가의 사회경제적 기초: 자산 불평등, 보험욕구, 복지 선호도, 2007~2016’과, 이 교수 연구팀의 황인혜 박사, 임현지 연구자(석사 과정)가 한국복지패널 조사를 별도로 분석해 18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 공개한 자료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연구에는 가구의 총자산과 연평균 경상소득이 사용됐다. 연구팀이 만든 ‘자산-소득 상호작용 모델’로 자산과 소득 두 변수와 복지 태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자산이 소득에 따른 복지 태도를 ‘제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 한가지 변수로만 볼 때는 잘 포착되지 않았던 저자산-고소득층, 고자산-저소득층의 복지 태도도 드러났다.
연구모델을 적용한 결과, 저자산-고소득층의 복지 선호는 높은 것으로 나왔다. 자산 하위 10%(2천만원)의 경우 연평균 가구소득이 3천만원일 때 복지 선호, 즉 복지에 찬성할 확률(반대 0, 찬성 1)은 0.76이었지만, 2억2천만원일 땐 0.8로 증가했다. 자산 중위(50%. 1억8천만원) 안팎부터 복지 선호는 소득 증가에 반비례해 감소하기 시작하지만, 그 수준이 미미해 사실상 변화가 없다. 이 교수는 “한국처럼 복지제도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경우엔 실업이나 퇴직 등으로 인해 지금의 소득이 미래에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가 크다. 그 위험과 공포를 사회안전망으로 상쇄하려는 고소득층의 ‘보험욕구’가 복지 확대와 소득 재분배 지지로 나타난 것”이라며 “청년 전문직, 물려받은 자산이 없는 중년층처럼 소득은 있지만 자산이 쌓이지 않은 이들을 중심으로 복지국가의 대중적 기반이 광범위하게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복지 선호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는 지점은 자산 상위 20%(5억원 이상)부터였다. 이 집단에서 복지에 찬성할 확률은 연평균 가구소득이 3천만원일 때 0.69였지만, 2억2천만원일 땐 0.66으로 줄었다. 소득 증가에 따른 복지 선호 감소 폭은 자산이 많을수록 커졌다. 이 교수는 “고자산-고소득층은 이미 충분한 소득과 자산으로 개인의 위험을 해결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공적 복지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가지 더 눈에 띄는 건 고자산-저소득층, 즉 은퇴 뒤 소득이 없는 중산층 이상으로 볼 수 있는 이들도 공적 복지 선호가 높다는 점이다. 이들은 소득이 끊겼기 때문에 기초연금 등 자신에게 혜택이 돌아오는 공적 복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소득에 세금을 더 물리면 이런 경향이 지속되는 반면, 자신들이 가진 자산에 과세가 강화되면 복지 선호가 낮아질 수 있다.
이 교수는 “현재 저자산-고소득층인 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산을 축적해 고자산-고소득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복지 지지층이 반복지로 돌아설 소지가 다분한 것”이라며 “자산 축적의 속도를 줄이는 등 이들을 지속적인 ‘복지 동맹’으로 남게 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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