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 20돌 앞둔 ‘무지개집 수다’
독일 정착 성소수자 김인선씨
국내 첫 공개적 생활공동체인
‘무지개집’ 식구들 만나 얘기 나눠
독일 정착 성소수자 김인선씨
국내 첫 공개적 생활공동체인
‘무지개집’ 식구들 만나 얘기 나눠
성소수자가 가시화되지 않았던 1970년대에 독일로 떠나 정착해 살고 있는 성소수자 김인선(69)씨가 6월1일 열리는 스무번째 서울퀴어문화축제에 함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동안 수차례 한국에 왔지만, 이번 방문은 그에게 47년 만에 비로소 ‘성소수자로서’ 고향에 돌아온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22일 김씨는 서울 마포의 성소수자 공동체 ‘무지개집’의 초대로 젊은 성소수자들과 만찬을 나누며 ‘성소수자로서 늙는 것’을 이야기했다.
한국 나이로 일흔살에 이른 김인선씨는 독일 베를린에서 동성의 한국인 파트너와 29년째 동거 중인 성소수자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레즈비언 할머니’로서 퀴어 이슈와 관련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무지개집은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으로 성소수자들이 공개적으로 생활공동체를 꾸린 국내 첫 사례다. (▶관련기사: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 천사인 척 하고 싶지 않아”)
■ “40대 넘는 게이도 있나요?”
―여러분,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김인선 독일에서 47년째 살고 있는 김인선이라고 합니다. 매년 한국에 오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제 정체성을 알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왔어요. 만나 뵙게 돼 감사합니다. (박수 짝짝짝)
전재우 이곳 무지개집은 게이커플·레즈비언커플 등 다양한 성소수자가 모여서 살고 있는 공동주택입니다. 공개적으로 성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사례는 한국에서 처음인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게이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무지개집의 기획자이자 첫번째 대표였던 전재우입니다. 이곳 3층에서 제 파트너,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어요. (박수 짝짝짝)
오김 저는 오현주라고 하고요, 오김이라고 불러주세요. 무지개집은 1년에 한번씩 대표를 바꾸는데 올해는 제가 대표입니다. (박수 짝짝짝)
더지 5층에서 제 파트너와 함께 사는 더지라고 합니다. 두더지 할 때 더지에요. (박수 짝짝짝)
광훈 저는 무지개집 1층의 공동공간을 작업실로 쓰고 있는 광훈입니다. 사실 (만나서) 신기해요.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게이 친구가 머무는 집에 함께 사는 70대 레즈비언 할머니 커플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그 얘기를 듣고 내 주변에 노인 게이를 본 적이 있나? 질문 해봤는데 본 적이 없더라고요. 없을 리는 없는데 대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어요. 오늘 김 선생님 만나서 뜻깊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요.
더지 울 것 같은데? 하하.
광훈 하하. 그쵸그쵸. 왜냐면 이게 남의 일이 아니잖아요. 저도 나이를 들 거니까. 왜 그들의 목소리는 없을까 생각하면 약간…. 70∼80대 노인 퀴어로 사는 삶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 게 막막하죠. 상상이 안 되니까. 나는 나중에 어떻게 되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그런 상상을 하면 너무 막연하니까 안 하게 되죠.
더지 60대, 70대, 80대에 게이답게 산다는 게 뭘까?
재우 나도 이렇게 사는 게 게이다운 걸까,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가끔 생각해. 더 게이다운 삶?
오김 더 게이한 삶이 어딨어. 더 나다운 삶?
인선 나는 독일 사회에서 사니까 (다르지만), 한국 노인들은 (지금보다) 더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컸기 때문에 못 나올 수 있어요. 더군다나 가족들이 있잖아요. 가족들에게 배척당한단 말이에요. 그분들이 마음 한구석에는 ‘나도 (커밍아웃) 했으면 좋겠다’ 하면서도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가족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죠. 간접적으로라도 젊은 분들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참 좋겠다. 소통을 하다 보면 마음이 열릴 텐데, 그냥 ‘우리 젊은 세대는 당당하니까 여러분도 나오시라’고 하면 못 나오겠죠.
재우 제가 올해 50인데, 한국에선 제 나이 또래가 거의 처음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커뮤니티 활동을 한 세대예요. 60∼70대 이상의 성소수자들이 분명 계시지만 숨어있거나 드러내길 꺼려요. 젊은 성소수자 친구들은 40대 넘어가는 게이·레즈비언도 있어? 이런 이야기도 해요. 김 선생님 오신다고 할 때 우리 사회에서 손 꼽을 수 있는 퀴어 롤모델을 우리 식구들한테 보여줄 수 있겠구나 싶어서 정말 좋아했어요. (박수 짝짝짝)
오김 이제 밥 먹으면서 말씀 나누시죠.
재우 열심히 준비하긴 했는데, 선생님 입맛에 맞을까요?
인선 좋아요. 독일에서는 한식을 제대로 먹기가 어려우니까.
■ “가족의 아름다운 가치”
지난 1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한 간담회에서 “가족의 아름다운 가치를 지켜야 하기에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공개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성소수자에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 세력의 ‘레토릭’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의 존재가 ‘가족’이라는 가치와는 상충한다는 이러한 인식과 달리, 김인선씨와 무지개집 식구들의 만찬에서도 “마음껏 자기를 표현해도 온전히 받아주는” 가족의 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씨와 무지개집 식구들은 ‘성소수자로서’ 나이 들기 위해서는 “마음껏 자기를 표현해도 온전히 받아주는” 지지기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성소수자에게 ‘가족’은 무엇일까요?
더지 아이러니하게도 성소수자들의 집이라는 걸 공개적으로 알렸는데도 무지개집에서 안전함을 느껴요.
재우 무지개집 초반에는 겁도 났어요. 한국에 이런 케이스가 없으니까 반대세력이 와서 유리창에 돌 던질까 봐.
오김 난 불 지를까 봐…. 성소수자 커플끼리만 산다면 퀴어 관련 포스터나 무지개 깃발 걸기도 불안할 것 같은데 여기는 여러 사람이 같이 있으니까 안정감이 들어요.
광훈 저는 20대 초반에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못 만났을 때는 불안함이 있었어요. 우울증약도 먹고 사람과 담을 쌓고 지냈는데 서울에 올라와서 무지개집을 만나면서 힘을 많이 얻는 것 같아요. 다 내 친구들, 내 언니, 형, 누나, 가끔은 엄마 아빠 같기도 하고. 내가 더 사회에 커밍아웃할 수 있게 하는 게 가족 아닐까 싶어요. 나를 지지해주고 어떤 일을 당해도 “괜찮아, 우리가 있어”라고 해주는 사람들. 얼마 전에 어머니한테 이런 얘기를 했더니 “광훈아, 계속 그렇게 지내”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잔잔한 박수) 감사합니다, 정말.
인선 제 친구(파트너)는 한국에 가족이 있어요. 그분들이 (성정체성에 대해) 눈치는 채고 있어도 말을 안 하셔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면 충격받으실 것 같아서, 이번에는 나 혼자 나가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합의를 봤어요. 저는 아무도 없거든요.
오김 한국에는 연고가 아예 없으세요?
인선 네
재우 저희가 있잖아요. 하하. 저희 부모님은 제가 커밍아웃을 한 뒤로 제가 부엌에 들어가는 걸 그렇게 싫어하셔서 눈치가 보이는데, 이 집은 내 마음대로 주방을 장악할 수 있어요. (웃음) 또 무지개집에 안 살았으면 같이 사는 제 파트너와 깨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성소수자 커플은 사회적으로 지지해주는 체계가 없어서 많이 깨지잖아요. 이 사회에서는 그걸 ‘문란하다’고 하지만. 무지개집 안에 있으면 식구들이 싸워도 화해시켜준다든지 지지하고 보호해주니까 관계를 유지하는데 좋은 역할을 했죠. (파트너 보고 웃으며) 그게 좋은 점인지 나쁜 점인지 모르겠지만.
오김 장단점이 있지. 항상 우리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웃음) 싸우면 다 알아. 가족의 아름다운 가치는 이곳에 있습니다. 하하.
인선 나랑 내 친구도 자주 싸워요. 그래도 짠한 게 있어.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는 점이나 이 친구가 힘들 때 옆에 있어 줘야겠다는 마음이 혼인증명서류로 묶여있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결혼을 정식으로 안 했어요.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거, 그냥 종이 한장이거든. 거기에 매달릴 이유가 없는데.
오김 한국은 결혼을 해야 혜택이 많아요. 전세 대출이라든지.
재우 결혼을 안 하면 몇 년 째 같이 사는 파트너여도 병원에서 수술동의서를 쓸 때 혈연 가족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주위에서 흔히 보는 일이죠. 배우자의 부모가 돌아가시면 휴가가 나오는데 성소수자는 그런 것도 못 받고, 가족 수당도 못 받고.
인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게 복지지. 그건 결혼을 강요하는 거잖아. 저는 (결혼을) 한번 했던 사람이지만 제 파트너는 (농담으로 하자면) ‘순수한 처녀’야. ‘순수한 총각’인가. (일동 폭소) 그래서 결혼 한번 하고 싶대요. 나는 뭔가에 묶인다는 거 자체가 싫어서 법적으로 결혼을 안 했으면 좋겠는데 친구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뭐 한번 해보자 했지. 결혼식에서 둘 다 양복을 입을지 한복을 입을지가 문제야.
오김 턱시도?
광훈 두 분 각자 입고 싶은 거 입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더지 가족이면 반드시 구성원을 개인으로 봐줘야 하는데, (한국에는) 자녀를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흠집나면 안 되고 아프면 안 되는 ‘내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 게 사실 가족을 망치는 요소인데, 무지개집은 구성원을 개인으로 존중하는 기본이 되어 있어요. 사실 법이나 아이로 연결된 전통적인 관계에서도 고통스러운 사람이 많은데, 우리는 사회적으로 응원받지 못하는 곳에서 스스로 관계를 가꿔온 거 잖아요. 그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재우 2층에 사는 젊은 친구는 지금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했는데, 커밍아웃 전에 함께 살 때 방안에 애인이랑 찍은 사진도 걸지 못했대요. 마음껏 자기를 표현해도 온전히 받아주는 게 집이죠. 집에 갔는데 내가 뭔가 불편하고 숨겨야 하면 집이 아니에요.
인선 이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여러분들 지내는 게 행복해 보여요. 서로 이해하고 안아주는 무지개집 같은 공동체가 한국에 있어서 정말 좋아 보여요. 혼자가 아니잖아요. 나이 든 성소수자들도 이렇게 서로 아껴주는 대안 가족을 꾸려 살면 좋겠어요. 저도 다음에 한국 오면 여기 방 하나 얻어서…. (웃음)
오김 여기 교통도 참 좋고요. 평지입니다. 다음에 파트너분하고 같이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선 그쵸. 수현이(김인선씨 파트너)가 또 요리를 잘해요.
오김 그럼 여기서 쿠킹스쿨 하시고 돈도 버시고.
광훈 파티도 열고. (웃음)
■ 무지갯빛 십자가
김씨는 ‘나이 든 성소수자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다음달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다. 이날도 축제의 장을 둘러싸고 반대집회를 이어갈 일부 개신교 세력에 맞서 무지갯빛 십자가를 들고 행진 차량에 오르기로 했다. 김씨는 독일 훔볼트 대학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얻고 한때 목사가 되길 꿈꾸기도 했던 독실한 신앙인이다.
오김 선생님, 개신교 사람들 반대하러 오는 거 직접 보신 적 없죠?
인선 없죠.
오김 이번에 한번 보시면 재밌으실 거에요. 저희 축제의 날인데 그분들에게도 축제의 날이 돼버린 거예요. 춤도 추고. 성소수자 반대하면서 즐기는 것 같아요.
재우 지난해 인천 퀴어퍼레이드에서는 반대세력이 대규모로 집결했어요. 우리는 숫자가 적어서 행진도 못 하고 고립당하고 경찰 보호도 못 받았어요. 결국에는 축제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어요.
오김 차량 행진하려고 하면 바퀴 밑에 가서 누워버려요. 밟고 지나가라고.
인선 아, 그거 정말 문제다.
재우 이번엔 반대세력들 내가 있는 부스 근처에만 없으면 좋겠어요. 너무 시끄러워서 부스 안에서 행사를 진행할 수가 없어. 서로 앰프 싸움이잖아요. 우리도 소리 키우지, 저쪽 반대집회도 더 크게 하지. 축제 즐기러 온 사람들은 서울광장 안에서 고통당하고 있어요. 울타리까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데 너무 답답하고 갇혀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일반 사람들에게 우리 축제하는 거 보여주고 싶은데.
오김 화장실 갈 때도 길을 뺑 돌아서 가야 하고 너무 갑갑해요.
더지 울타리를 보면 감정이 참 복잡해요. 행패 부리려는 사람 막아서 성소수자들 보호하겠다고 친 건데, 막아서 될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일본에서 퀴어퍼레이드에 간 적이 있는데 방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투쟁하고 저항한다는 느낌이 안 들고 재밌어.
광훈 지난해에 대구 퀴어퍼레이드를 갔는데 교회에서 와서 한줄로 바짝 서서 우리 부스를 다 막더라고요. 그게 참 심란했는데, 동시에 뜻 깊었던 게 우리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러 온 대구 시민들이 ‘화이팅하세요’ 하면서 굿즈도 사가더라고요. 퀴퍼에 가면 그런 복합적인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인선 교회에서 성소수자 반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십자가를 무지개 색깔로 해서 들고 가려고요.
재우 그거 들고 (행진) 트럭 위에 올라가실 거에요?
인선 네!
광훈 퀴퍼 가면 반대세력 트럭도 있어요. 거기에도 십자가가 있을 거예요.
인선 하하, 누가 진짜냐!
오김 오, 볼만 하겠다!
인선 (반대세력이) 어디서 노망한 할머니 하나 왔냐고 하면 독일에서 수입해왔다고 해야지. (웃음) 저는 그걸 현장에서 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지 상상이 잘 안 가지만, 쿨하게 대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힘들겠지만. 저쪽에서 우리를 자꾸 건드리는데 ‘너희는 떠들어라’ 하면 한풀 꺾일 것 같아요.
재우 선생님이 처음 독일 가셨을 때도 독일 사회는 성 소수자에게 관용적인 분위기였나요?
인선 47년 전이니까…. 거기 성 소수자 축제 날 보면 자기들끼리 벗고 껴안고 그랬어요. 저는 그때만 해도 여자들끼리 야단이야, 그랬어. (웃음) 나도 많이 변했지만 독일 사회도 많이 변했어요. 통독 되고 점차 더 성소수자에게 열린 사회가 되고 이제는 동성끼리도 남녀의 결혼과 동등한 법적인 결혼이 가능해요. 그 전에도 동성 파트너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독일 퀴어퍼레이드는 모든 사람의 축제에요. 독일은 종교청에서도 공식적으로 성소수자 지지 입장을 내놨어요. 신앙은 하나님과 나의 일대일 관계인 거지 어떤 종교도, 어떤 인간도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부분을 정죄할 자격이 없다는 거죠. 독일에선 레즈비언 목사 둘이서 교회에서 결혼도 해요. 한국 교회하고는 차이가 크죠.
오김 한국에도 게이 목사님이 운영하는 교회가 있어요. 작은 교회 중에는 성소수자에게 열린 교회도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재우 한국 교회는 변화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교회는 청소년부, 유치부 등의 모임을 기반으로 신도를 재생산하면서 발전하는데 성소수자는 어느 모임에 넣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거죠. 남신도회? 여신도회? 트렌스젠더 신도회는 없는데 어떡하지? 아이가 없으면 야유회에 어떻게 껴야 하지? 이런 변화를 수용할 필요가 있는데 그건 싫은 거죠. 그러려면 여태까지 했던 많은 것들을 바꿔야 하고 성경 공부도 다시 해야 하니까. 지금의 체제에서 최대한 신도를 모으는 방식으로….
인선 그건 목사가 아니라 기업 사장이지. 예수님 말씀과는 전혀 다른 얘기죠. 하나님 팔아서 자기들 실속 차리는 거에요. 성서에는 혼란한 성행위를 비판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처럼 성소수자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성서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다른 나라에는 없어요. 도대체 어떤 하나님을 믿으시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성서에 번역상 문제가 있다면 다시 모든 관계자가 참여해서 다시 번역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지 선생님은 독일에서 이주민이고 레즈비언이잖아요. 같은 조건으로 한국에서 살았다면 지금의 선생님처럼 멋지게 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전혀 다른 시나리오가 그려졌을 거예요.
재우 선생님 덕에 한국이 바뀌었을 수도 있잖아! 우리도 통일되면 확 바뀌지 않을까? 독일도 통독이 되면서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넓어졌다고 들었거든요. (우리 사회가) 북한 사람들의 이질감을 받아들인다면 성소수자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선 한국은 역동적인 기운이 있잖아요. 잘될 거에요. 내 기운을 후원할게요.
오김 통독에서 왔다고, 통일 레즈비언 전도사라며. 하하.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서울 마포구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무지개집 거주자들이 독일에서 온 성소수자 김인선씨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반즈누, 오현주, 모란, 더지, 인디, 전재우, 김인선, 광훈. 무지개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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