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 2부 요양원 비리 ②감시와 처벌
2018년 요양원 현지조사 결과 836건 최초 분석
직원숫자 속여 부당청구만 94억…전수조사 땐 착복액 수천억 될 듯
2018년 요양원 현지조사 결과 836건 최초 분석
직원숫자 속여 부당청구만 94억…전수조사 땐 착복액 수천억 될 듯
이주빈 <한겨레> 기자가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이 작성한 836건의 현지조사 결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2018년 말 기준 한국의 65살 이상 노인 인구는 739만명이다. 추정 치매 환자는 75만명가량이다. 지난해 건강보험료 등에서 노인 요양에 지출된 재정은 모두 6조6758억원이다. 노인 인구는 2025년 1천만명, 2035년 15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1부는 요양원에서의 한달 근무와 재가방문요양보호사 심층 인터뷰를 통해 노인 돌봄의 그림자를 다뤘다. 2부는 2회에 걸쳐 요양원 비리에 본격적으로 접근한다. 2부 2회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지방자치단체 직원들이 지난해 836곳의 장기요양기관의 현지조사한 결과를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언론이 1년치 현지조사 지원결과서 전체를 입수해 분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현지조사 지원결과서가 작성된 이후 부당청구 금액이나 실제 처분 등은 다소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한겨레> 분석 결과와 건보공단이 최종적으로 발표한 내용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가족 송금’ ‘시설장 행방불명’…황당 사례들 현지조사 지원결과서에는 장기요양기관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북 구미에 있는 ㄴ방문요양센터가 대표적이다. 구미시와 건보공단 직원들은 지난해 이 센터를 조사하던 중 수상한 송금 내역을 발견했다. 센터 계좌에서 50만~100만원이 정기적으로 빠져나갔다. 이 돈은 센터에서 일도 하지 않는 센터장의 자녀와 조카, 부모에게 흘러갔다. 게다가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센터장의 동생은 급여로 월 최대 500만원을 가져갔다. 횡령 등이 의심됐지만 회계장부 등을 들여다볼 수 없는 현지조사에서 비리를 더 파고들기는 불가능했다. 그저 19개월 동안 707만원을 부당청구하고 신고 없이 시설을 개조한 사실만 지적해 업무정지 10일과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ㄴ방문요양센터처럼 종사자로 등록하지도 않은 가족에게 돈을 송금하는, 눈에 띄는 비리를 저지른 곳은 ‘아마추어’다. ‘프로’들의 수법은 더 정교하다. 2012년 7월 문을 연 ㄷ요양원은 대표의 처제가 22개월 동안 시설장을 맡아 근무한 것으로, 또 다른 처제가 보름 동안 요양보호사로 일한 것으로 허위 등록해 건보공단 돈을 타냈다. 두 처제는 일한 적이 없다. 대표의 둘째 아들은 2015년 4월1일부터 2년7개월 동안 위생사로 근무한 것으로 등록했다. 며느리는 2015년 7월1일부터 2년 넘게 요양보호사로 근무했다고 기록했다. 모두 허위였다. 허위 기재를 눈감고 건보공단에 장기요양급여를 청구하는 일은 사무국장인 첫째 아들이 맡았다. ㄷ요양원이 3년 동안 건보공단과 수급자에게 받은 돈은 22억7368만원, 가로챈 돈은 3억8272만원이다. 시설장이 행방불명된 기관도 있었다. 지난해 9월 10인 미만 노인이 지내는 작은 요양원을 일컫는 한 노인공동생활가정으로 현지조사를 나간 조사관들은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설장이 카지노와 사설 도박에 빠져 9개월 전부터 출근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개월 전부터는 아예 행방불명됐다. 건보공단과 수급자들이 28개월 동안 이 시설에 지급한 돈은 3억9016만원이었다. 현지조사 결과 부당청구 금액은 1031만8380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회계자료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건보공단의 전체 지급액이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부당청구와 시설장 상근 의무 위반만 문제 삼아 10일의 업무정지와 경고 처분만 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해 7월 경기도 성남 ‘세비앙실버홈’ 앞에서 일방적인 요양원 폐업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요양서비스노조 제공
조사 거부와 방해 장기요양기관들이 조사에 순순히 응하는 것도 아니다. 가족끼리 ‘족벌경영’을 하면서 조사를 방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2016년 4건, 2017년 5건이었던 현지조사 거부는 지난해 21건으로 4배 이상 늘었다. 대구에 있는 한 요양원은 현지조사를 나간 조사관들이 근무자들과 수급자 수를 제대로 신고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시티브이(CCTV)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시시티브이는 ‘마침’ 고장이 나 수리를 맡겼다고 했다. 나중에 수리를 마쳤다는 시시티브이를 보니 이미 초기화된 상태였다. 요양원 근무자들의 말이라도 들어보려 했지만, 근무자들은 대부분 대표의 동생과 제부 등 가족들이었다. 모두 입을 다물었고, 부당청구액을 한 푼도 밝히지 못했다. 노인공동생활가정 대표 ㄹ씨는 방문요양센터와 단기보호센터, 요양보호사 교육원 등을 함께 운영한다. ㄹ씨는 원장이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단기보호센터의 요양보호사로도 등록해 돈을 타냈다. 일은 하지 않았다. ㄹ씨의 남편은 시설장이자 사회복지사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역시 일을 하지 않았다. 딸도 노인공동생활가정 사무원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일은 교육원에서 했다. 동생은 요양보호사 및 사회복지사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일주일에 2~3차례 20~30분 출근해 자신의 업무를 사회복무요원(공익)에게 시켰다. 시누이 역시 ‘유령 직원’이다. 부당청구 내역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ㄹ씨는 조사 거부를 선언했다. 조사관들이 6개월간의 업무정지와 과태료 부과, 나아가 형사고발까지 경고했다. ㄹ씨는 버텼다. 조사관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ㄹ씨가 운영하는 장기요양기관들에는 건보공단과 수급자의 돈이 1년 평균 2억6659만원 흘러들어 갔지만, 운영 실태는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했다.
업무정지엔 ‘모자 바꿔쓰기’로 대응 현지조사로 부당청구 등이 적발되면 지자체는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 있다. 이 기간 장기요양기관은 수급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 업무정지 기간이 짧게 나오면 수급자를 이동시키지 않고 계속 돌보는 곳도 있다. 다만 건보공단은 업무정지가 끝날 때까지 장기요양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본인 소유의 건물에서 시설을 운영해야 하는 요양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처분이다. 하지만 시설을 운영하지 않고 요양보호사를 수급자 노인 집으로 파견 보내는 인력사무소 같은 역할만 하는 방문요양센터의 경우 업무정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족이나 지인 명의로 센터를 새로 내 그곳에 수급자를 등록하면 된다. 업계에선 이를 ‘모자를 바꿔쓴다’고 한다. ㅁ씨가 대표로 있는 방문요양센터는 2017년 6월 현지조사 결과 부당청구가 확인돼 업무정지 20일 처분을 받았다. ㅁ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업무정지 처분을 받자마자 시동생 이름으로 ‘모자를 바꿔쓰고’, 수급자 108명을 모두 옮긴 뒤 정상적으로 건보공단에서 돈을 타갔다. 요양원도 ‘모자 바꿔쓰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ㅂ씨가 운영하는 요양원은 2015년 현지조사 때 업무정지 62일 처분이 나오자 옆 건물에 딸 명의로 센터를 새로 개설했다. 건보공단 직원들은 지난해 다시 이 요양원을 현지조사해 23개월 동안 8773만원을 부당청구한 사실을 밝혀낸 뒤 85일의 업무정지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2015년 딸 명의로 설립된 요양원으로 ‘모자를 바꿔써서’ 업무정지가 무용해질까 우려해야 했다. “현 센터에 업무정지가 발생하였을 경우 다른 센터로 수급자를 옮길 가능성이 있음.” 현지조사 지원결과서에 남긴 건보공단 직원들의 의견이다. _________
“비리 장기요양기관 명단 공개해야”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장기요양기관도 있다. “대표가 수급자 집을 자주 방문해 독거노인 등에게 (옷) 수선 등을 지원하고, 요양보호사 인건비 지급이 다른 기관에 비해 높은 상태로 만족도가 높다. 서류 관리도 우수하다.” 지난해 한 방문요양센터를 현지조사한 조사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상당수 장기요양기관은 끊임없이 비리를 저지른다. 구조적인 원인은 감독기관의 분산이다. 장기요양기관 설립신고를 담당하는 곳은 지자체다. 돈이 나오는 곳은 건보공단이다. 두 기관의 권한은 나누어져 있다. 건보공단은 공단이 지급한 장기요양급여에 대한 감독 권한만 갖고 있다. 건보공단은 현지조사뿐 아니라 장기요양기관이 급여를 청구할 때 심사하고, 사후 점검하는 등의 방식으로 연평균 300억원 남짓의 부당청구 금액을 찾아낸다. 하지만 부당청구는 장기요양기관 비리의 일부일 뿐이다. 1억원의 장기요양급여를 받는 기관의 부당청구액이 100만원뿐이라도, 횡령 등 비리 금액은 수천만원일 수 있다. 그런데 회계 등 문제 전반을 관리하는 것은 지자체다. 지자체의 경우 장기요양기관 전담 인력이 적고, 내부 사정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실제 지자체가 관할 지역 장기요양기관 전체를 상대로 회계감사를 한 사례는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곤 찾아보기 어렵다. 제도적 감시망도 늦게 구축됐다. 장기요양기관이 지켜야 할 재무·회계 규칙이 시행된 건 지난해 5월(정원 20명 이상 기관)이다. 최근 큰 논란이 된 사립유치원 회계감사가 2013년 시작됐고, 국무조정실이 전국 사립유치원 회계감사를 각 시·도 교육청에 요구한 게 2015년이라는 점에 견주면 장기요양기관 감독 수준은 사립유치원보다 뒤떨어져 있다.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건보공단이 장기요양기관 비리를 고발해도, 시간이 지난 뒤 확인하면 검경 등 수사기관에서 내사 종결이 되는 사례가 흔하다. 사건 자체가 복잡하고 개별 기관의 비리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처럼 비리 요양원 등의 명단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는 지난해부터 각 지자체에 비리 요양원과 방문요양센터의 명단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경기도 수원시 정도를 제외하면 적극적인 곳이 없다. 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개인 돈도 아니고 국민의 건강보험료를 부당하게 사용한 장기요양기관 명단 공개를 주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비리 요양원에 부모를 보낸 보호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계속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환봉 이주빈 기자 bon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