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 3부 대안 ① ‘공공’ 서울요양원 가보니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서울요양원 목련마을 어르신들과 요양보호사가 음악수업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달 23일 서울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이 입소한 노인을 ‘해피베드’로 옮기고 있다. 몸이 뻣뻣하게 굳은 와상환자의 경우 해피베드를 사용하면 휠체어에서 침대로, 침대에서 휠체어로 비교적 쉽게 옮길 수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지난달 23일 서울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이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있다. 서울요양원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요양보호사 등 요양원 직원들을 위해 매주 2번 필라테스 수업을 진행한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돌봄 노동자의 행복은 노인의 행복이다 서울요양원은 요양보호사 등 돌봄 노동자들 처우도 민간 기관과 차이가 컸다. 요양보호사 시급은 민간과 비슷한 8350원이었지만,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건보공단에서 제공하는 장기근속수당 외에 3년 이상 근무자는 월 4만원을 추가로 받았는데, 이 수당은 해마다 1만원씩 늘어난다. 서울요양원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 67명 가운데 34%(23명)가 3년 이상 장기근속자다. 퇴직금과 장기근속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요양보호사들을 해고하던 민간 요양원이 떠올랐다. 서울요양원은 요양보호사들에게 식사시간 1시간을 보장했고, 2500원을 내면 1층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외부 식사도 가능하다. 기자가 일한 ㅇ요양원은 도시락을 싸 오거나 입소자들의 잔반으로 식사를 해결해야 했고, 식사시간이라도 사회복지사의 허락 없이는 라면 하나도 사러 나갈 수 없었다. 서울요양원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3시 허리와 손목, 무릎 등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요양보호사들을 위한 필라테스 수업도 진행됐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조사를 보면, 시설 요양보호사 34%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 4층 요양보호사 휴게실에는 안마의자와 발마사지, 파라핀 기계가 배치돼 있었는데, 시간당 2명 이상의 요양보호사들이 안마의자를 이용했다. 직원들의 역할도 분명하게 구분됐다. 기자는 ㅇ요양원에서 수시로 흡인(가래 제거)이나 인슐린 주사 등 간호사의 업무를 대신 했지만, 서울요양원은 달랐다. 혈압·체온·맥박은 간호사의 감독 아래 측정됐다. 4월부터는 최중증 노인 28명이 모여 있는 4층을 ‘전문요양실’로 운영하며 간호사 1명을 24시간 상주시키고 있다고 했다. 24시간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ㅇ요양원처럼 간호사가 휴무이거나 퇴근한 날 요양보호사가 허위 기록부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물리치료 역시 마찬가지. 기자는 실습 때부터 직접 물리치료기를 작동해야 했지만, 서울요양원은 물리치료사 3명이 일주일에 2번 1시간씩 관절 운동과 통증 치료를 했다. ‘노인 100명당 1명의 물리치료사를 둬야 한다’는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라 정원 150명인 서울요양원엔 물리치료사 2명이 필요한데, 실제 일하는 물리치료사는 3명이다. 중년 여성이 대부분인 요양보호사들이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가지고 공공기관에서 일한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크다. “3년5개월 동안 서울요양원이라는 공공기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힘든 일을 버티고 있습니다. 경조사나 육아휴직, 연차 등도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고 직원 복지도 잘돼 있어요.” 요양보호사 양경자(64)씨의 말이다.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울요양원 물리치료실에서 어르신들이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문가도 노인 가족도 공공성 확대 외친다 민간 기관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수준의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서울요양원 입소자들의 본인부담금(20%)은 39만~41만원으로 민간 기관과 같다. 지난해 서울요양원의 수입·지출 내역을 보면, 총수익 50억6800만원의 98%(48억2900만원)가 건보공단과 입소자들에게서 받는 장기요양급여다. 그렇다면 수입은 같은데 서비스 질 차이는 큰 이유는 뭘까. 우선 서울요양원은 수익을 남기지 않아도 되는 공공 요양기관이다. 서울요양원은 수익 대부분을 인건비(72%)와 시설운영비로 썼다. 기본 수가가 정해진 탓에 인건비를 크게 높일 수는 없지만, 직원을 추가 채용하는 건 가능했다. 여기에 건물임대료 등이 나가지 않는 이유도 컸다. “정부가 지어준 건물에서 운영만 하면 되니까 장기요양급여와 입소자들의 본인부담금 등 수입을 모두 요양원 인건비와 투자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초기 토지비용과 이자, 건물임대료 등을 내야 하는 민간 기관들은 상대적으로 시설 운영과 인건비에 적은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지요.” 박득수 서울요양원장의 설명이다. 민간 기관들이 300만원짜리 해피베드와 8000만원짜리 통목욕 기계를 들일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이런 공공 요양기관은 전국에 극소수다. 건보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 1월 말 현재 장기요양기관(입소시설+재가기관) 2만1395곳 가운데 지방자치단체 등 국공립은 1.1%(245곳)에 불과했다. 민간 시설 가운데서도 81.2%(1만7362곳)는 개인이 운영했고, 비영리법인 운영은 12.6%(2702곳), 영리법인 운영이 5.1%(1086곳)였다. 요양원 등 입소시설만 보면, 전체 5326곳 가운데 국공립은 2.1%(110곳)였고, 개인 운영이 72.7%(3872곳)로 제일 많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돌봄·요양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정부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며 누구나 요양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췄다. 그 결과 많은 민간 공급자들이 등장했고, 무한경쟁에 내몰린 민간 기관들은 돌봄보다 ‘생존’을 위해 사투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노인 돌봄에 공공성을 강화하고 국공립 요양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현재 노인돌봄서비스는 수익성의 논리에 따라 이뤄진다. 돌봄은 저가의 노동으로, 노인은 영업 대상이 되면서 돌봄서비스의 질도 낮아지고 노인의 존엄한 삶도 추락했다”며 “개인 영리사업자의 장기요양시설 운영을 금지하고 돌봄 사업기관의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요구는 비단 전문가들만 하는 게 아니다. 유치원 등 교육과 보육시설 국공립화 확대를 아이 부모들이 앞장서 외쳤던 것처럼,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과 그 가족들도 공공성 강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요양병원부터 민간 요양원까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민간 요양원의 질을 높이려면 시설만이라도 공공재정으로 해주고, 장기요양급여 수가도 올려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해요.” 서울요양원이 문을 열자마자 아내를 입소시켰다는 최돈형(71)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 재정 지원을 늘려 민간 요양원 질도 함께 끌어올려 달라고 호소했다. 최씨가 경험한 민간 요양원의 돌봄은 열악했고, 집에서 환자를 돌보며 국공립 요양원 입소만을 기다리기엔 대기자가 너무 많았다. 서울요양원에 장모를 모신 지 1년 됐다는 윤병성(59)씨도 “꼬박 4년을 기다렸다”고 했다. 서울요양원의 정원은 150명인데, 5월 말 현재 대기자가 1313명이고 평균 대기 기간은 3년이다. 대기자의 10%는 입소조차 하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고 한다.
보험급여 1~2% 공공기관 설립 투자해야 무엇보다 재원이 문제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건 장기요양보험 급여액의 1~2% 정도를 공공 장기요양기관 설립에 지원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이다. 2019년 장기요양보험 재정이 8조원인데, 이 가운데 800억~1600억가량을 공공 장기요양기관 설립 비용으로 떼놓자는 얘기다. 서울요양원 설립에 투입된 정부 재정 269억원을 현재 가치 300억원으로 단순 환산하면, 한해 서울요양원 같은 기관을 5개까지 지을 수 있다. 물론 이는 최소한의 방법이고, 결국엔 시민들이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정부의 재정 확대 의지도 중요하다.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서비스원’도 공공성 강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서비스원은 시·도지사가 설립한 공익법인으로, 지자체로부터 국공립 어린이집과 공립 요양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3월부터 2020년까지 4개 시·도 사회서비스원에서 국공립 시설 170곳을 운영하고, 서비스 인력 1만1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설 170곳 전부가 요양원이라고 가정해도 국공립 시설 비율은 겨우 3%포인트 느는 데 그칠 뿐이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공공시설이 본보기가 돼 민간시설을 끌어가려면 적어도 전체의 30%는 차지해야 한다”며 “현재 사회서비스원 계획으로는 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으로 되어 있는 장기요양보험제도의 지침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요양원은 기준보다 7명 많은 67명의 요양보호사가 있었지만, 치매전담실 등을 고려하면 ‘노인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두고 있는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4년6개월 전 어머니를 서울요양원에 모셨다는 이효식(56)씨는 “시설은 대한민국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요양보호사 2명이 30분 안에 노인 12명의 식사를 챙기는 건 이곳도 똑같다”고 말했다. 양난주 교수도 “근로시간, 휴게시간, 연차사용 등을 고려한 인력 규정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며 “노인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의 기준은 24시간이 아니라 실제 노동시간인 8시간 기준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서울시의 한 구립 방문요양센터에 소속된 방문 요양보호사 이정숙(가명·59)씨가 수급자 김영철(가명·86) 할아버지의 집에서 치매 인지 교육 교재를 보여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장애인처럼 노인도 탈시설이 필요하다 장애인들이 사회와 고립되는 시설 거주보다 활동지원사들의 보조를 받는 자립을 요구하는 것처럼, 노인들도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가족, 이웃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존엄하게 삶의 마무리를 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요양원 등 시설의 공공화만큼이나 중요한 게 장애인들의 활동지원 서비스 역할을 하는 노인의 방문재가요양서비스 공공성 강화다. 실제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는 노인의 72.4%는 방문요양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 요양보호사들은 일감을 찾아 여러 기관을 옮겨 다니느라 불안정한 노동에 힘겨워하고,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3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집을 방문하는데, 요즘은 ‘하수인’이 아니라 ‘직장인’이 된 기분이에요.” 지난해 7월부터 방문요양사 일을 시작한 이정숙(가명·59)씨는 민간 방문요양센터에서 구립 방문요양센터로 옮긴 뒤 자부심이 생겼다고 했다. 이씨가 센터를 옮긴 건 센터장의 갑질 때문이다. 센터장은 치매 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이씨가 뒤늦게 항의하면 1천원씩 시급을 올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수급자의 무리한 요구도 중간에서 차단해주지 않았다. 수급자가 센터를 옮기면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이씨는 3개월 전 서울시가 운영하는 구립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이씨와 헤어질 마음이 없었던 수급자 김영철(가명·86) 할아버지도 이씨를 따라 센터를 옮겼다. “약 없인 살아도 저분 없으면 난 죽거든요.” 할아버지의 말이다. “센터를 옮긴 첫날 센터장과 사회복지사가 수급자 집을 방문했는데 ‘요양보호사 업무 범위’에 대해 수급자에게 설명하더라고요. 그런 거 처음 봤어요.” 구립센터는 이씨에게 수급자와 문제가 생기면 사회복지사에게 바로 알리라고 교육했다. “이곳 센터장이 항상 말해요. ‘수급자도 중요하지만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우리 식구 아니냐’고요.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난달 24일 방문 요양보호사 이정숙(가명·59)씨가 수급자 김영철(가명·86) 할아버지에게 점심 식사를 차려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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