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 첫 방화 현장. 곳곳에 검게 탄 흔적과 메케한 연기 냄새가 여전히 가득하다. 연합뉴스
지난 4월 경남 진주의 한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입주자 안아무개(42)씨의 방화·살인으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공공임대주택 거주민을 강제퇴거시킬 수 있는 입법 움직임이 뒤따른 가운데, 이같은 조처가 주거 약자들의 ‘주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제퇴거’는 국제사회에서도 인권에 대한 심각한 위반 행위로 보고 있는데, 국회가 사회적 소수자를 분리·배제하는 내쫓기식 대책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공공임대주택 임차인이 반복적, 상습적으로 다른 임차인 등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폭행, 재물 손괴 등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중대한 피해를 준 경우 공공주택 사업자가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거나, 재계약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른 임차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임차인에게 퇴거 등 조처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까닭이다. 앞서 지난해 3월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도 ‘임차인이 다른 입주자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피해를 주거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 공공주택 사업자가 재계약을 거절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공공임대주택의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는 사례는 임차인이 부정한 방법으로 임대를 하거나 임대료를 내지 않은 경우, 고의로 임대주택을 파손한 경우 등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현재는 임차인이 폭행을 저질러도 구두 경고 외에는 대응 수단이 전무해 큰 화재 사건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며 “법이 바뀌면 관리소 직원과 입주민을 보호할 수 있고 입주자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엘에이치에서 제출받은 공공임대주택 사건·사고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직원 폭행은 97건, 방화는 38건, 살인은 8건, 기물 파손과 난동에 따른 업무방해·흉기협박이 177건 발생했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이 가져올 부작용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제퇴거’ 조처는 최후의 수단으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고, 사고를 일으킨 이의 가족들에 대한 ‘연좌제’ 성격도 띨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법안의 내용을 보면 실제 피해가 발생하기도 전에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퇴거 절차를 명확히 하고, 퇴거 결정 과정에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결정된 뒤 다툴 수 있는 여지 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약계층이 많은 공공임대주택의 특성상 적절한 돌봄 시스템을 우선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진주 방화·살인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며 “강제퇴거는 주거권에서 최후의 조처여야 한다. 강제퇴거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견제 장치는 물론 퇴거 이후 대책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도 국회의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 입법 움직임에 우려하는 의견을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인권위는 김종민 의원과 김도읍 의원의 개정안이 △일정한 법적 절차 등으로 임차인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약 해지 등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을 고려하지 않고 강제퇴거가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 △계약 해지 대상자와 함께 사는 가구 구성원의 주거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수단의 적합성이나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와 더불어 인권위는 “제3자 등이 포함된 기구에서 계약 해지 여부를 심의하고, 계약 해지 당사자의 의견 진술권과 불복 절차를 마련하는 것과 함께 위해행위 등 예방과 방지를 위한 조처를 한 뒤 최후의 수단으로 계약 해지 등을 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