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증오, 차별은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멸시 혹은 공포에서 비롯한다. 멸시와 공포는 혐오 대상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카롤린 엠케는 저서 <혐오사회>에서 “(증오의 대상은) 언제나 ‘자기 것’을 억압하거나 위협하는 ‘타자’라는 범주다. 타자는 위험한 힘을 지녔거나 열등한 존재라고 근거 없이 추정되고 따라서 그들을 학대하거나 제거하는 행위는 단순히 용서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조치로 추켜올려진다”고 말했다.
문제는 폭력의 대상이 상황에 따라 누구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한국 사회를 휩쓰는 동안 중국인, 대구 시민, 신천지 신도 등이 차례로 크고 작은 혐오와 마주했다. 신천지 신도의 경우 일부 방역에 비협조적인 모습이 있었지만, 그것이 집단 전체의 혐오로 번질 이유는 없었다. 코로나19만이 아니다. 지난 1월 숙명여대에 합격했던 트랜스젠더가 학내 반발에 밀려 입학을 포기하거나, 군대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부사관을 강제 전역시킨 일도 혐오에 기반한 타자에 대한 폭력이다.
차별금지법은 병력과 출신 국가, 출신 지역, 인종, 피부색,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성적 지향, 학력과 학벌, 사회적 신분, 용모 등 신체 조건,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및 보호처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하는 법이다. 이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한국 사회 뿌리 깊이 자리 잡은 혐오와 차별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법은 한국 사회에 혐오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만든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민간기업에서 어떤 이를 차별 고용하면서 ‘민간기업이 원하는 사람을 고용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민간 영역도 제어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차별금지법은 어떤 것을 차별하면 안 되는지 우리 사회에 기준을 정해주고,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부문도 그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만들어 우리 사회의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게 하는 시작점이 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냈던 조영선 변호사 역시 “현재 혐오에 대해서는 아무 기준도 없고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라서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중국인에 대한 보수 정치인의 발언이나 숙명여대 입학 포기 학생을 공격하는 댓글 등은 충분히 불법적인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그러한 행동을 중단시킬 수 있는 여론이 형성됐을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늦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차별과 혐오가 주어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가는 “중국인이나 대구 사람, 신천지 신도 등을 혐오하면 혐오할수록 이들은 더 숨어들 것이고 결국 우리가 모르는 경로로 바이러스가 더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차별금지법을 비롯해 혐오와 차별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면 불투명한 공포보다 이성적 논의나 합리적 대화가 가능해 덜 위험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13년째 표류 중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법무부가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2008년 17대 국회 회기가 만료되면서 자동폐기됐다. 2008년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 역시 같은 이유로 자동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다시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역시 회기가 끝나면서 법안이 자동폐기 됐다. 19대 국회에서는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과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각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김재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회기 만료로 폐기됐고,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종교계의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철회됐다. 최원식 전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이후 대형 교회에서 많은 항의가 들어왔다. 나뿐 아니라 공동발의한 의원들까지 종교 쪽에서 큰 반대에 부딪혔고, 당시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환봉 권지담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