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본소득 논의 과정 살펴보니
“재난 맞아 일시적 기본소득 지급” 제안에 각 분야서 화답
10년째 학계 등에서 논의되던 기본소득, 전국민적 이슈로
실제 내용 기본소득보다 ‘취약계층 재난수당 지급’ 가까워
외국 사례와 지자체 시행 잇따르자 청와대도 전향적 검토중
“중산층도 지원” “제도적 대책 마련이 더 중요” 등 지적도
“재난 맞아 일시적 기본소득 지급” 제안에 각 분야서 화답
10년째 학계 등에서 논의되던 기본소득, 전국민적 이슈로
실제 내용 기본소득보다 ‘취약계층 재난수당 지급’ 가까워
외국 사례와 지자체 시행 잇따르자 청와대도 전향적 검토중
“중산층도 지원” “제도적 대책 마련이 더 중요” 등 지적도
올해 초 중국에서 본격화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건강 위협에서 시작된 패닉은 경제로도 번졌다. 이동과 소비의 급감 속에 주가가 폭락하면서 전례없는 불황이 올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위기는 공동체(국가)의 의료와 정치·행정 등 사회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도 전이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조차 홍역을 앓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하면서 소상공인 등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또 부실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저소득층과 실업자 등 취약계층은 생존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 이들에 대한 긴급구제와 더불어 경기방어를 위해서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정부 현금 직접지급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기업인과 지방자치단체장들,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잇따라 화답하고 나섰다. 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일부 지자체들이 시행에 나서고 외국에서도 특단의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어 조만간 결단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다.
■ 재난이 쏘아올린 기본소득 논의
재난기본소득은 지난달 26일 민간 독립연구기관인 랩2050 윤형중 정책팀장이 <미디어오늘>에 실은 ‘재난 기본소득을 검토해보자’는 칼럼에서 처음으로 제시됐다. 윤 팀장은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일 어쩔 수 없이 영위하며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이런 일상의 접촉이 전염 가능성을 키운다. 사람들 간의 접촉을 줄이려면 자기 나름의 일을 잠시 멈추거나 최소화해야 하지만, (누군가는) 생계 문제로 인해 그마저도 쉽지 않다”며 “(정부가 검토중인 추가경정예산 규모인) 15조원으로 전 국민에게 30만원씩 지급할 수 있다. 개개인에겐 30만원이고, 가구원 수가 많을수록 지급액이 커져 부양비 감당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재난 상황’을 맞아 한시적으로라도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소득을 지원하는’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해보자는 주장인 셈이다. 앞서 25일에는 기본소득당도 저소득층에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포털 다음 창립자인 이재웅 차량공유서비스 쏘카 전 대표는 이튿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팀장 칼럼을 공유하며 재난기본소득 구상에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고, 29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재난기본소득 50만원을 어려운 국민들에게 지급해주세요’라며 청원을 냈다.
“코로나19로 인한 심각한 감염위기입니다. 경제위기입니다. (…) 사람들의 일자리의 위기, 소득의 위기입니다. 생존의 위기입니다. 사람이 버텨야 기업이 버티고 경제가 버팁니다. (…) 재난기본소득 50만원을 지급해주세요. 경계에 서 있는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 1천만명에게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집세를 낼 수 있는, 아이들을 챙길 수 있는, 집에서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는 소득이 필요합니다.”
재난기본소득을 공론장에 올린 이 전 대표의 청원은 윤 팀장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현금 지급을 통한 긴급구제 필요성을 주장했다. 다만, 지급 대상과 기간을 좀더 구체화한 점이 눈에 띈다. 1천만명(5조원) 또는 2천만명(10조원)에게 50만원씩 지급하자는 이 대표의 청원에는 20일 현재 6500여명이 동참했다. 신생 정당인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 녹색당 등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 정치권서도 호응 잇따라…정부는 거리두기
재난기본소득 논의는 기성 정치권으로도 확산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정도면 거의 전시에 준하는 비상경제상황”이라며 “기존의 지원대책, 기존의 보조금으로는 역부족이다. 한 기업인은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정도 과감성 있는 대책이어야 우리 경제에 특효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에는 더불어민주당 포용국가비전위원회가 “국민당 평균 50만원 이내의 긴급생활지원금을 지원해 전시에 준하는 재난 시기의 기본소득을 실현하자”며 이를 위해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검토를 제안했다. 4일에는 박주현 민생당 공동대표와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미래당,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포함한 약 30조원의 정부 재원 가운데 15조원을 기본소득 예산으로 배정해 전체 국민에게 한시적 기본소득 30만원을 지급하자”,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 속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해 새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했다.
6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한시적 재난기본소득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확진자 수가 7천명을 넘어선 8일에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코로나 재난 상황으로 위기에 빠진 내수시장을 과감하게 키울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씩을 일시적으로 지원하자고 정부와 국회에 제안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10일 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중위소득 100%(4인 가족 기준 474만9174원) 이하 가구에 상품권 60만원을 지원해주자고 제안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과 여당 소속 광역 자치단체장들이 도입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서면서, 재난기본소득은 전국민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나라 곳간 키를 쥔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선을 그었다. 정부는 지난달 27~28일 △임대료 인하 건물주 세금 감면 △소상공인 저금리 대출 확대와 금리 인하 △영세자영업자 부가가치세 감면 △승용차 개별소비세 70% 감면 △신용카드 연말정산 소득공제 기준 상향 △고효율 가전기기 구매액 10% 환급 등 ‘코로나19 극복 종합대책’을 내놓고, 지난 4일에는 11조7천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지만 재난기본소득 구상은 반영되지 않았다.
■ 애초 기본소득과는 거리…대신 확장성 커
코로나19라는 재난을 만나 기본소득이 전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개념과 맥락상 간극이 컸다.
지난해 랩2050에서 전 국민에게 매달 30만원씩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시행을 위한 재정 모형을 연구를 수행한 바 있는 윤형중 팀장은 “자영업자와 개인사업자, 주로 실적으로 소득을 얻는 특수고용직군은 자신의 피해를 정확히 산정하기가 어렵다”, “기본소득은 지급 심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행정비용을 아낄뿐더러 심사를 받는 이가 차별과 불편을 느끼지도 않는다”며 국민 모두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방식을 제시했지만, 이재웅 전 대표는 취약계층에 한한 선별적인 지급을 얘기한 게 대표적이다.
기본소득은 △무조건성(무심사 지급) △보편성(특정 집단 모두에게 지급) △정기성(지속 지급) △개별성(가구 아닌 개인에 지급) △현금성(현금 지급) 등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윤 팀장과 김경수 지사 등은 정기성만 뺀 기본소득을 얘기했다면 이 대표와 박 시장 등은 무조건성과 보편성까지 제외한 안을 내놓은 셈이다
이런 간극은 재난기본소득을 기본소득으로 볼 수 있는지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상당수 재난기본소득 안들이 “일시적이면서 다분히 선별적인 요소가 있어 ‘재난성 소득보조금’, ‘재난 보조금’, ‘재난성 현금지원금’이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며 “김경수 지사, 이재명 지사, 기본소득당 등이 주장하는 제안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액 급여지만 재난에 대응한 1회 지원을 의미한다면 ‘재난수당’이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난기본소득 주장에 지지하지만) 기본소득 개념에도 맞지 않고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니 재난수당으로 부르는 게 맞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한편으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명명(이름짓기)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기본소득 논의에 가장 부정적이었을 보수 야당 대표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고, 기본소득이란 주제를 전 국민에게 알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이름짓기가 긍정적 프레임 설정으로 이어져 여론시장에서 승리를 끌어낸 밑돌이 됐듯이, 재난기본소득도 ‘재난을 당한 이들의 삶을 보장해줄 기본적인 소득’이라는 긍정적 프레임 설정을 가능하도록 해 기존 기본소득 담론이 성취하지 못한 대중성을 확보하도록 했다는 얘기다.
■ 보편적 재난기본소득 둘러싼 비판
재난기본소득 도입 주장이 잇따랐지만, 반론도 뒤따랐다.
보편적·무조건적 지급안에 대해서는 필요성에 비례한 지원이 어렵다는 기본소득 고유의 특성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지난 7일 칼럼(거꾸로 대책인 추경예산도 ‘코로나 기본소득’도 답이 아니다)에서 “‘기본소득’이 최고의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만약 기본소득이 어떤 형태로든 시행된다면 예산의 대부분을 사용하게 되어 현재 필요한 다른 어떤 조치보다 우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당장 소득이 사라진 사람들의 상황과, 재난 시에 ‘특수한 요구’가 있는 사람들의 상황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제안의 취지는 살려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도 최근 <한겨레> 기고(재난기본소득, 필요한가)에서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무조건적 현금수당의 성격을 갖”는 재난기본소득은 비용 대비 효과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제안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재난기본소득’의 문제점을 수정한 재난지원금(혹은 재난수당)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충격에 크게 노출된 이들에 한해, 사용 강제효과(재정승수)가 더 큰 상품권 방식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여졌다.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는 “기재부는 ‘현금 지급이 말이 되냐’라고 하지만, 미국과 유럽 움직임을 봐도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며 “다만 (취약계층에 대한 일회성 현금 지급을) 소득이라고 이름 붙이면 ‘불로소득’이라며 반대하는 이들이 나오고 불필요한 정쟁으로 흐르게 될 수 있는 만큼 재난구호금 정도가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상황의 긴급성과 일회성 지급임을 고려하면 지급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지원이 아니라면 명칭은 ‘재난긴급생활지원’ 같은 게 좋겠다”고 말했다.
■ 기재부·청와대는 부정적 반응
정부는 재난기본소득에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해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재정당국 입장에서는 재난기본소득 제도 도입에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재난기본소득과 관련해 여러차례 부정적 견해를 강조해왔다.
재정을 방만하게 만들 수 있는 직접 현금 지급 기피는 재정당국의 당연한 속성이다. 현금 지급은 재정승수가 다른 재정지출보다 낮은 0.2~0.3에 불과해 정책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들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탠다. 정부가 가계에 1억원을 나눠줘도 국내총생산(GDP)은 2천만~3천만원 정도만 늘어난다는 얘기다. 고소득층일수록 돈을 안쓰고 저축하기 때문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13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균형 재정을 지고지순의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은 적시성, 특정성, 한시성이라는 재정정책의 세가지 원칙에 모두 위배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재난기본소득이) 기본소득 개념이 아니라 긴급생활안정수당이라면 용어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긴급구조 대상에서 프리랜서나 자영업자, 비정규직 지원이 빠진 것과 관련해서는 안정적인 전달체계가 구축된 “일자리안정자금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아동수당 등 4개 채널로 대상을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도 전날 <연합뉴스TV>와 인터뷰에서 “현재 정부로선 (재난기본소득 도입) 계획이 없다”며 추경안에 들어있는 2조6000억원 규모 지역사랑상품권 지급이 “실질적으로 재난소득”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방역 대책회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각각 ‘중위소득 이하 가구 재난긴급생활비’(4조8000억원 추산)와 ‘전국민 재난기본소득’을 건의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중요하다”면서도 “이번 추경안에도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예산이 상당히 담겨 있다”고 답했다.
■ 외국서도 잇따른 현금 지급 정책
하지만 이런 견해를 계속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과거 외환위기(1997년)나 금융위기(2008년)를 능가하는 대공황을 우려하는 상황에서는 전례없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과 외국 석학들의 지적도 이런 기류에 힘을 보탠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 16일 내놓은 ‘주요국별 코로나19 대응 및 조치’ 보고서를 보면, 홍콩에서는 오는 6월 모든 영주권자(약 700만명)에게 1만홍콩달러(약 155만원)를 지급한다. 싱가포르에서는 21살 이상 모든 시민권자에 소득·재산 수준에 따라 최고 300싱가포르달러(약 26만원)를 지급하고 △20살 이하 자녀 둔 부모 △저소득 근로자 지원제도 대상 △50살 이상 △주택개발청의 방 1~2개 집에 거주하는 21살 이상 등에게는 100~720싱가포르달러를 추가로 준다.
타이완은 피해업종 종사자들에게 경기부양 바우처로 404억대만달러(약 1조6700억원)를 지원할 계획이고, 오스트레일리아도 직업훈련생 12만명에게 13억호주달러(약 1조1천억원), 연금 및 실업급여 수급자 650만명에게 1인당 750호주달러(약 58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위기 당시 17~64살 전 국민(장기체류 외국인 포함)에게 1인당 1만2천엔(약 14만원), 16살 이하와 65살 이상에게는 2만엔씩 나눠줬던 일본은 현금 지급 정책 재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도 17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에 현금(수표) 1천달러(약 124만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포함해 1조달러(약 124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급 범위는 의회와 협의가 필요하지만,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최대한 빨리 2주 안 시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의 석학들도 과감한 재정정책을 주문하고 나섰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로 유명한 보수파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을 추려내는 게 어렵고, 추려내는 작업에 내재한 문제점들을 생각하면 모든 미국인에게 1천달러씩 주는 것은 좋은 출발일 수 있다”, “정부부채를 걱정할 때가 있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며 적극적 지출을 옹호한 게 대표적이다.
■ 정부 기류 바뀌나…여론도 우호적으로
이런 속에서 정부 쪽 기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미증유의 비상경제시국…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다”(17일), “경제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18일), “특단 비상금융조치를 결정”(19일) 등 높아진 문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보여주듯, 상황이 갈수록 엄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북 전주(중위소득 80% 이하 가구 52만7천원 지급), 경기 화성(매출 전년보다 10% 이상 감소한 소상공인 평균 200만원), 강원(실업급여·기초연금 수급자 등 40만원), 서울(중위소득 이하 가구 최대 50만원) 등 지자체들이 잇따라 현금 지급 계획을 확정한 점도 정부에게는 압박 요인이다.
이에 청와대는 최근 재난기본소득 연구자들을 잇달아 불러 대책회의를 연 것으로 전해졌다. 정무수석실과 소통수석실, 사회수석실이 함께 논의 중인데, 별도 전달체계 마련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기존 아동수당·노인수당 등을 한시적으로 늘려 지급하거나 선별 비용이나 절차가 필요없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불카드나 상품권 형식으로 지급해 몇개월 안에 사용을 유도하고, 총선을 앞두고 국회 본회의 개회가 어려운 만큼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령도 검토되고 있다. 또 재난기본소득 대신 ‘수당’, ‘페이’ 등 가치중립적인 새 이름을 지어붙이는 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여론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3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진행한, 재난 극복과 경기부양을 위한 기본소득 도입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여론조사에선 반대가 47.3%로 찬성(42.6%)보다 많게 나왔다.(전국 18살 이상 성인 500명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p) 열흘 뒤인 <와이티엔> 의뢰로 리얼미터가 13일 진행한 조사에서는 찬성이 48.6%로, 반대(34.3%)나 모름·무응답(17.1%)보다 10%p 이상 많았다.(전국 18살 이상 505명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p)
■ “중산층도 지급을” “제도 개선책 마련이 더 중요”
글로벌 흐름이나 사회 분위기상 최소한 선별적인 현금소득 지원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인데, 학계에서는 소수 취약계층으로 지원 대상을 한정하면 의미나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재원이 많다면 전면적 시행이 바람직할 수 있지만, 제한적이라면 먼저 손 내미는 집단의 손을 잡아줘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 다만 팬더믹(감염병 대유행) 상황을 고려하면 중위소득 50% 미만 빈곤층은 물론 중위소득 50~150% 중산층까지는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위소득 150% 이하는 전 국민의 75%가량에 해당한다.
그는 “추가로 20조원가량 추경을 한다면 절반은 항공과 관광 같은 위기 업종, 영세자영업과 소상공인 등 공급 쪽에 쓰고, 수요 쪽 나머지 10조원을 재난기본소득 취지대로 사용하되 절반은 중앙정부가 직접 집행하고 절반은 지자체에 나눠줘 지역 실정에 맞는 지원책을 펴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재난기본소득 지급과 별개로 좀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재난상황에서는 기존 제도나 정책의 문제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를 바로 잡는 방향으로 대처하는 게 기본이다. 예를 들어 취업자들이 유급돌봄 휴가를 제대로 못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이를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실업자는 실업급여와 실업부조 제도의 빈틈을 보완해나가는 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해나가야 한다”며 “상황이 시급한 만큼 빨리 효과를 내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재난기본소득의) 취지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일시적으로 돈 한번 살포하고 마는 식으로 흘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한 건강 위협은 사회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경제 대공황 우려 등으로 퍼져나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돼 임시 휴업에 들어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한겨레> 자료
4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코로나19 유행은 사람들의 이동과 소비를 극도로 축소시키고 있다. 사진은‘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8일 오전 경복궁 앞 모습. <한겨레> 자료
2010년대 들어 시작된 ‘온 국민에게 조건없이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논의가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을 맞아 전국민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재난기본소득은 애초 기본소득 구상과는 거리가 있고, 현금 직접지급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사진은 2017년 12월 8일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본소득 조항의 헌법 삽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한겨레> 자료
코로나19 여파로 10여년 만에 코스피가 1500선 아래로 주저앉는 등 경제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스피가 1400대로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40원 폭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딜링룸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한겨레> 자료
미국은 17일(현지시각) 미국인들에게 현금(수표) 1천달러(약 124만원)씩 지급하는 방안을 포함한 1조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하루 전날인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태스크포스팀과 함께 언론 브리핑에서 기자들과 질의 답변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신생 정당인 시대전환 이원재 공동대표가 1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시대전환 총선 1호 공약인 국민기본소득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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