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의 한 주택에서 어린 형제끼리 음식을 조리하다 불이 나 형과 동생이 크게 다쳤다. 연합뉴스
30045. 지난해 확인
된 아동학대 건수입니다. 2016년 1만1715건과 비교해 3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그사이 가파르게 아동학대가 늘어난 것일까요? 글쎄요. 오히려 아동학대 인식이 새롭게 자리 잡아 ‘발견’과 ‘신고’가 그만큼 증가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문제는 이를 책임질 어른들이겠지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선 이유입니다. 이들은 이른바 ‘여행가방 학대’로 알려진 충남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합니다. 천안 지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장, 시장, 경찰서장 등에게 실명으로 책임을 묻는 고발장을 쓴 까닭입니다. 어른들이 구체적 현장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엄마들의 주장입니다. <한겨레>는
‘그 아이는 살릴 수 있었다’(
▶바로가기)로 그 목소리를 전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토요판부 하어영 기자입니다. 저는 한 살 터울의 형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일로 자리를 비우시면, 연로한 할머니 대신 형이 저녁밥을 챙기곤 했습니다. 형은 종종 라면을 끓였습니다. 형이 건넨 라면 대접에 고개를 박고 후루룩거리던 그 아릿한 기억과 겹쳐서일까요. 지난 14일 인천 미추홀구의 화재 보도를 접한 후 먹먹함이 가시질 않습니다. 열흘이 넘도록 중환자실에서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는 두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한 문장, 한 단어 나아가기가 힘겹습니다.
인천 사건은 <한겨레>가 보도한 천안 사건과 여러모로 판박이였습니다. 비극의 전조가 그러합니다. 인천 사건은 201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웃이 아동학대가 의심스럽다며 첫 신고를 합니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당시 기록을 보면 “물리적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이라고 돼 있습니다. 집안은 쓰레기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아동복지법 제15조는 “지자체장이 관할 지역 내에서 아동보호가 필요한 경우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보호시설 입소’ ‘가정위탁’ 등을 통해 아동보호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보호자로부터 아이들을 격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구청, 아보전 등은 상담을 중심으로 한 ‘사례관리’를 결정했습니다.(천안 사건에서 격리조치 없이 상담으로 갈음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2019년 9월 주민이 다시 신고합니다. 하지만 관계기관은 사례관리만 지속할 뿐입니다. 아동복지법에만 보호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학대 발생 현장에서 행위자를 아동으로부터 격리하고 아동학대 관련 보호시설로 인도할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세번째 신고는 8개월 만입니다. 아보전은 이번에도 직권 격리가 아닌 법원의 판단에 맡깁니다. 법원은 (보호자로부터의) ‘격리’ 대신 ‘상담’의 결정을 내립니다. 엄마는 6개월, 아동은 12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상담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법원은 왜 구청에서 가정방문을 18차례, 상담을 58번이나 한 것을 확인하고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요. 물론 격리만이 답이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그 아이들을 그 집안에 두게 한 법원 결정이 과연 최선이었을까요. 천안 사건이 그러하듯 관계기관들은 모두 “규정대로의 의무를 다했다”는 답만 되풀이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지난 4일 법원 명령문이 아보전에 도착했지만, 코로나19로 상담이 미뤄집니다. 그로부터 비극이 빚어진 게 열흘 만입니다. 같은 이유로 천안 사건도 면담을 미룬 사이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코로나19는 모두의 발을 묶는 재앙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책임회피의 이유가 될까요.
지금 당장 3만여건의 아동학대를 다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천이나 천안의 비극처럼 재학대 사례에 해당돼 ‘알고도’ 놓치는 사건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해마다 발간하는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는 지난해만 3431건, 2776명의 아이들이 재학대를 당했다고 분류합니다. 이 중 초등학교 재학 중일 것으로 보이는 만 12살 이하 아동이 1729명으로 62%에 이릅니다.
숫자는 건조합니다. 하지만 그 안의 사연은 우주를 담고 있습니다. 천안의 아이도, 인천의 형제도, 아마 2020년 보고서에 재학대의 사례로 분류돼 담길 것입니다. 언제까지 상황 탓을 하고, 시스템 핑계만 대고 있어야 할까요. 매해 3천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거듭된 학대로 고통받는 걸 알면서도 “거기 가만있으라”고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까요.
하어영 토요판부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