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부천물류센터 식당에 줄 선 모습. 노동자들은 거리두기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 제공
“여전히 사람보다 마감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거리두기는 실종돼 식당에 다닥다닥 붙어 앉고, ‘2인1팩’(물량이 몰릴 때 다른 층에서 한 명을 더 불러 같이 작업하는 방식)으로 포장 일을 하다 보니 온종일 두 명이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일해야 합니다.”
지난 8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폐쇄된 쿠팡 부천 물류센터 노동자 ㄱ씨는 ‘달라진 게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난 5월 부천 물류센터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음에도 별다른 공지를 받지 못하고 정상 출근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금도 두통 등 후유증에 시달리는 ㄱ씨는 일터가 불안하다.
9일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피해자지원대책위’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확진자 152명이 발생한 쿠팡 부천 물류센터발 집단감염 뒤에도 일터는 열악한 방역 환경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5일에서 7일 사이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9.8%가 ‘작업장 안, 식당과 탈의실 등에서 충분히 거리두기가 되지 않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응답자들은 “작업장 안에서는 마감시간이 임박하면 관리자들은 독촉하기 급급하고, 거리두기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노동자들은 택배 물량이 늘면서 다시 거리두기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8일 확진자가 나온 부천 물류센터에서 일한 계약직 노동자 ㄴ씨는 “5월 대거 확진자가 발생한 뒤 거리두기를 위해 개인의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후 다시 물량이 늘면서 2인1팩이 시작됐다”며 “11월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자 버스 거리두기도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ㄱ씨도 “하루에도 여섯번씩 다른 층에 있는 노동자들을 2인1팩 자리로 보내는 등 ‘층간 이동’이 빈번했다”고 말했다.
9일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피해자지원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어 쿠팡의 코로나19 방역이 열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피해자모임은 피해자를 위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며 쿠팡을 비판하기도 했다. 고건 피해자모임 대표는 “최근까지 사측과 면담을 실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보상이나 지원도 할 수 없다는 태도만 보였다”고 지적했다. 협상을 중재한 이원정 을지로위원회 총괄팀장은 “도의적 책임을 지라는 것인데 쿠팡은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쿠팡은 “방역을 개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은 “거리두기가 완화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리두기를 더 제대로 하고자 개선하고 있다”며 “이미 지난 9월 피해자모임 측에서 쿠팡을 형사 고발했다. 회사는 향후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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