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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섬진강과 미네소타, ‘찐으로’ 재미있는 조합이지요?

등록 2021-08-02 17:51수정 2021-08-03 15:30

한·미 청소년 비대면 국제교류 현장

7월9일부터 15일까지 열린
한·미 청소년 ‘랜선’ 예술교육
‘줌’ 통해 실시간 연극 수업

차별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문화 차이 이해하는 계기 돼
“한국말 잘해서 좋겠다”는 말에
“곡성 기차마을 꼭 놀러 와!”
이주노동자들이 휴식 시간 없이 종일 일하는 모습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석곡중 학생들. 극단 마실 제공
이주노동자들이 휴식 시간 없이 종일 일하는 모습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석곡중 학생들. 극단 마실 제공

“미국 친구들이랑 한국말로 얘기해본 게 너무 신기해요. 저희만 영어 열심히 배우는 줄 알았거든요. 그쪽 친구들도 한국말에 진짜 관심 많더라고요. 다 같이 우리말로 연극도 만들어 봤다니까요?”

전남 곡성군 석곡면에 있는 석곡중학교 학생들의 말이다. 전교생이 50여명인 섬진강변의 작은 학교 아이들이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또래 친구들과 만났다. ‘줌’을 통해서다. 석곡중 1학년 학생 11명은 ‘극단 마실’에서 진행한 ‘한·미 청소년 비대면 국제교류 수업’(이하 국제교류)에 참여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경험했다.

이정원(14) 학생은 “먼바다 건너에 있는, 인종이 다른 십대들끼리 한국말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며 “미국 친구들이 한국말을 배우려 애쓰는 것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줌’으로 비대면 수업을 여러 번 해봤지만 이렇게 실시간으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연극을 함께 만든 건 처음이에요. 섬진강과 미네소타, ‘찐으로’ 재미있는 조합이지요?”

이 수업을 위해 극단 마실의 손혜정 대표와 ‘곡성군 미래교육재단’, 미국 스탠퍼드대학 동아시아학과의 주다혜 교수(콘코디아 한국어 빌리지 ‘숲속의 호수’ 촌장)가 힘을 합쳤다. 비록 코로나19로 제약이 많은 상황이지만 시골 작은 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온라인 예술교육과 언어 교류를 경험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주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미국 아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한국어’를 배울 좋은 기회도 됐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지구촌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때라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손혜정 대표는 아이들을 위한 이 국제교류를 위해 지난해부터 준비했다. 현지 프로그램 날짜에 맞춰 6주 전에 극단 단원을 미국에 파견하고 석곡중 아이들에게는 직접 ‘수업 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바쁘게 손발을 움직였다.

■ 한국어에 빠진 미국 친구와의 만남

지난 7월9일부터 15일까지 석곡중 1학년 학생들과 미국 미네소타주의 북쪽 숲에 자리한 ‘콘코디아 한국어 마을―숲속의 호수’(이하 숲속의 호수) 참가 청소년들이 온라인에서 만났다. 숲속의 호수 학생들도 한국어에 대한 열정으로 14시간의 시차를 뛰어넘었다.

숲속의 호수는 비영리로 운영되고 있는 ‘콘코디아 언어 마을’ 중 하나로, 북미 지역 청소년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하계형 집중 언어캠프다. 콘코디아 언어 마을은 1961년 독일어 마을로 처음 문을 연 뒤 1999년에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로스 킹 교수가 주도해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를 만들었다. 한국에 있는 ‘영어마을’의 원조 격인 셈이다.

이 캠프에 참가한 미국 학생들은 한국어 이름을 만든 뒤 4주 동안 한국어만 쓰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돈을 쓴다. 양궁과 태권도, 사물놀이 등 한국의 스포츠와 전통문화 등을 체험하며 우리말을 배우고 문화를 이해해보는 프로그램이다. 방탄소년단(BTS)과 여러 케이팝 가수들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어 마을 입소 대기자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미국 청소년들이 ‘줌’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한 ‘차별’에 관한 이미지를 보고 만든 연극의 한 장면. 이주노동자들이 쉴 곳이 없어 땅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석곡중 학생들. 극단 마실 제공
미국 청소년들이 ‘줌’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한 ‘차별’에 관한 이미지를 보고 만든 연극의 한 장면. 이주노동자들이 쉴 곳이 없어 땅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석곡중 학생들. 극단 마실 제공

■ 연극 만들며 생각의 차이 공유

“있는 그대로의 한국 교실, 교복,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싶었거든요. ‘차별’에 관한 한국어 연극을 함께 만들면서 각자의 문화적 배경과 자주 접하는 뉴스가 우리 생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게 됐고요.”

이스라엘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의 김오른(16) 학생은 이번 국제교류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한국에 가면 서울 동대문이나 홍대 등 몇몇 ‘핫플레이스’만 둘러보고 왔는데 “이제 한국에 가면 갈 데가 생겼다. 전남 곡성에 있는 ‘섬진강 기차마을’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국제교류와 예술 수업은 이렇게 진행됐다. ‘줌’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각 교실에서 청소년들끼리 인사를 하고,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차별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을 나눴다. 신문과 잡지, 인터넷 서핑, 광고 등에 실린 이미지를 훑어보면서 차별과 관련된 이미지를 모두 수집했다. 한국 청소년들과 미국 십대들이 각각 모은 차별에 관한 이미지가 ‘줌’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면, 그 이미지가 어떤 차별에 관한 것인지 서로 추측해보는 시간을 먼저 가졌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북쪽 숲에 자리한 ‘콘코디아 한국어 마을―숲속의 호수’ 누리집 갈무리
미국 미네소타주의 북쪽 숲에 자리한 ‘콘코디아 한국어 마을―숲속의 호수’ 누리집 갈무리

숲속의 호수에 참가한 미국 청소년들이 수집해 보여준 이미지는 ‘섬즈업(thumbs-up), 섬즈다운(thumbs-down), 여우 그림, 늑대 사진, 흰색과 검은색’ 등이었고 한국 학생들은 ‘상어와 작은 물고기, 잘 익은 과일과 못생긴 과일, 큰 나무와 작은 나무, 그림자’ 등을 모아 영상으로 띄웠다.

서로가 찾아낸 차별에 관한 이미지를 ‘랜선’으로 공유한 뒤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는 뜻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미국 친구들이 보낸 흰색과 검은색 사진에 대해 한국 학생들은 ‘이주노동자 차별’을 떠올렸고 미국 청소년들은 ‘흑인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미국 청소년들은 한국 학생들이 보낸 잘 익은 과일, 못생긴 과일 사진을 보고 부자와 가난한 자에 관해 말했다. 빈부 격차를 떠올린 것이다. 아이들이 찾아내고 해석하는 이미지에는 삶의 배경과 살아가는 환경이 담길 수밖에 없는데, 이 활동을 통해 한국과 미국 십대들은 ‘문화의 차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차별은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라는 걸 직감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 청소년들이 신문과 잡지, 인터넷 서핑 등을 통해 모은 ‘차별’에 관한 이미지. 한국과 미국 청소년들은 각자 수집한 이미지를 ‘줌’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인종차별, 빈부격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극단 마실 제공
미국 청소년들이 신문과 잡지, 인터넷 서핑 등을 통해 모은 ‘차별’에 관한 이미지. 한국과 미국 청소년들은 각자 수집한 이미지를 ‘줌’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인종차별, 빈부격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극단 마실 제공

수업을 진행한 손혜정 대표는 “우리 아이들은 흰색과 검은색을 ‘힘이 있고 없고’로 받아들여 이주노동자들이 차별받는 상황을 떠올렸다”며 “미국 청소년들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인종 차별부터 이야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아이들이 보내온 늑대 사진에 관해서는 석곡중 학생들이 ‘토템, 토속신앙’으로 이해하고 그걸 확장해 종교 차별의 한 장면으로 만들더라고요. 우리 학생들이 늑대 사진을 보고 나서 토론한 뒤 카메라에 절을 몇번 하는 모습을 보고 미국 청소년들도 눈이 휘둥그레지더군요. 생각지 못했던 차별에 관한 여러 상황에 대해 실시간으로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모습이었어요.”

■ 미국 십대들이 부른 동요 ‘따오기’

차별에 관한 이미지를 공유하고 토론한 뒤 숲속의 호수 학생들은 ‘줌’을 통해 석곡중 1학년 학생들이 만든 연극의 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봤다. 교복을 입은 석곡중 아이들은 교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면, 여러 명이 모여 대걸레 막대기로 종일 밭을 가는 듯한 모습, 파란 박스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장면 등을 연출했다.

‘줌’을 통해 5분 정도 연극을 본 뒤 숲속의 호수 학생들은 조금 서툰 한국어로 “뭔가 힘든 일을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일까?”라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를 듣고 신수민 학생은 “우리나라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일하는 모습, 쉴 곳이 없어 땅바닥에 눕는 장면이다. 파란 박스는 쓰레기 더미이고 쾌적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국과 미국 학생들 모두 차별에 관한 다양한 시각을 풀어내며 예술 수업을 이어갔다.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청소년들이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전남 곡성 석곡중 학생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모습. ‘줌’ 화면 갈무리. 극단 마실 제공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청소년들이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전남 곡성 석곡중 학생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모습. ‘줌’ 화면 갈무리. 극단 마실 제공

전남 곡성과 미국 미네소타, 워낙 먼 거리이기에 온라인을 통한 수업도 쉽지만은 않았다. 수업 중에 인터넷이 갑자기 끊어지거나 영상이 멈춘 채 소리만 나오기도 했다. 한데 이런 악조건(?)은 각국 학생과 교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기도 했다.

인터넷이 갑자기 끊어지면 태평양 건너 멀리서, 멈춰버린 ‘줌’ 화면 너머로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으로 시작하는 우리 동요 ‘따오기’가 흘러나왔다. 미국 청소년들이 숲속의 호수 캠프에서 ‘따오기’를 배워 부른 것이다. 손 대표는 “정작 우리 아이들이 그 노래를 생소해하더라. 미국에서 한국말이 좋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모인 청소년들이 오히려 한국 학생들에게 우리의 옛 동요를 역으로 가르쳐준 것도 감동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한국말로 조금은 서툴게 ‘따옥따옥 소리~’라고 부르며 아름다운 우리 동요를 들려준 순간, 교실에 자긍심과 따스함이 차오르더군요. 아이들도 우리 문화, 우리 것에 대해 더욱 긍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차별에 관한 예술 수업을 마치고 국제교류를 끝내는 7월15일. 석곡중 학생들은 “미국 친구들이 우리를 알고 싶어 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너는 한국말 잘해서 좋겠다’라는 말을 들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숲속의 호수에 참가해 ‘이평화’라는 한국 이름을 만든 미국 청소년 ‘존’은 “우리가 보통 케이팝을 통해 한국을 알아왔는데 진짜 우리 또래의 한국 학생들을 보니 더 즐겁고 재밌었다. 우리 친구 맺자”며 서로 그 자리에서 ‘줌’ 화면을 통해 아이디를 공유하고 ‘인친’(인스타그램 친구)이 됐다.

국제교류를 끝낸 뒤 박한별 학생은 “창문 밖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기한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차별에 관한 연극을 만들고 미국 친구들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게 좋았어요. 넓은 세상,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요. 코로나19로 지치고 답답했던 기분도 풀렸어요. 우리말, 우리 것을 더 소중히 하자는 생각이 드니까 오히려 영어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더라고요. (웃음)”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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