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신월동 이름 없는 공부방에 모인 초등학생들이 ‘글쓰기 선생님’ 정미영 교사, ‘학부모 교사’ 최선자·한순구씨 등 아주머니들과 함께 둘러앉아 한 아이가 자작시를 낭송하는 것을 찬찬히 듣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표지이야기> 서울 신월동 ‘이름없는 공부방’
집 형편이 어려워 부모가 보살필 여력이 미약한 아이들, 놀이터에서 그저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을 이웃 아주머니가 보듬었다. 집으로 불러 문제집을 풀게 하고 간식도 주고…. 또 다른 이웃 학부모들도 거들었다. 교회도 교육실을 내줬다. 중학교 국어 교사가 가세하며 서울 양천구 신월동 한 동네 교회에 ‘이름 없는 공부방’이 들어섰다. 방학 특강 때는 50명 안팎이 몰려들어 북적댄다. 이웃 학부모들과 교사가 ‘함께하는 교육’을 펼쳐 온 사연을 들어봤다. “나도 학원에 다니는데…, 교회 학원.” 2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4동 서울서부교회의 반지하 예배실. 인근 동네 초등학생들 10여명이 둘러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학원 다니는 사람?” 하고 묻자 “태권도” “피아노학원요”라는 대답들 속에, 한 아이가 주뼛거리며 던진 말이다. 바로 이곳, 이름도 없는 공부방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어째서 ‘교회 학원’이라고 불리게 됐을까? # 2년전 봄
과일가게 아줌마 방과후 갈 곳 없는 아이들 모으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이름 없는 공부방을 마련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동네 아이들을 보듬어 온 정미영 교사와 이웃 학부모들 서삼례·최선자·한순구씨(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미영 교사는 공부방에 온 초등2년 수진이가 그려준 이 그림을 소중하게 간직한다고 했다.
입소문 타고 하나둘…동네교회에 ‘새 둥지’ 틀다 영어 실력이 좋은 딸 김푸른샘(15)양도 ‘영어 교사’로 스스로 나섰다. 저학년반과 고학년반으로 나누고, 최씨와 한씨도 도우미로 뛰었다. 푸른샘은 아이들의 수준 차가 너무 나자, 밤을 새다시피 해 세 종류의 수준별 교재를 만들기도 했지만 버거웠다고 돌이켰다. 정 교사는 염창중으로 옮긴 지난해 1학기와 2학기에도 격일로 들러 공부방을 찾는 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 수업을 하고, 여름방학 때도 특강을 열었다. 도로공사 때문에 늦게 닿았다가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교육실에 들어섰을 땐 야속한 마음도 치밀었다. ‘힘은 달리고, 돕는 손은 보이질 않고…. 아이들은 방치된 가운데 날로 공부는 뒤떨어지고, 친구들과 대화가 안 되고, 따돌림 당하고, 어느 새 자신감을 잃어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서지도 못하고…. 자꾸 껴안아달라고 하는 등 문제 행동이 잦아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아이도 있는데….’ 중학교에서 리코더를 불 줄 모르거나 그림 그리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진학했을까 했던 연유가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공부방을 찾은 초등학생들이 책 읽는 것을 김푸른샘양이 지켜보며 도와주고 있다.
엄마들·선생님 열성에 아이들 자신감 ‘쑥’ 이름을 갖게 될까= 학기부터는 좀더 넓은 교육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정 교사는 좀더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구체적인 장기 대안은 떠오르지 않지만 뭔가를 찾아가야겠다는 거다. 장학금 주기·급식 지원·방과후 수업 지원 같은 도움이 될 손길도 연결해주고 싶다. 그런데, 교사 확보가 관건이다. 전문적 역량을 지닌, 가까운 지역 교사들이 동참했으면 하는 게 간절하다. 마음은 있지만 시간이 없다는, 여유가 생기면 돕겠다는 교사들은 적지 않다. ‘나처럼 40대 중·후반, 자녀가 자라서 부담이 덜한 현직 교사들이 적극 나서주면 좋을텐데….’ 학교의 영상자료도 활용할 수 있는 장비도 아쉽다. 최씨는 이따금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단다. 그런데 집안이 힘든 아이들을 보면 가슴 한 쪽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봉사할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꿉니다. 중학생인 푸른샘 선생님처럼 말이에요. 금방이잖아요? 아이들이 자라는 건. 두세 해 뒤엔 고학년 아이들이 중학생이 돼 저학년 동생들을 돕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이 공부방이 예쁜 이름을 갖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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