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빈이네 가족의 주말농장
초등학교 5학년 신재빈(11)군에게 주말농장은 여전히 즐거운 놀이터인 듯했다. 올해로 7년째 주말농장을 일구려는 신군의 부모 신응섭(39)씨와 김귀행(37)씨는 온 가족이 함께 어울리는 동안 재빈이가 관찰력이 튼튼해지고 자연을 가까이 하는 텃밭임을 분명히 느낀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자
“아이 때문에….” 6년 전인 2000년 봄, 부부는 주말농장을 처음 빌렸다. 서울서 나고 자란 신씨도, 경북 안동 출신인 김씨도 농사는 ‘완전 초보’였지만 만 5살 된 재빈이를 데리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주말이나 휴일,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빈둥대기 쉽잖아요. 아이 눈에 이런 아빠 엄마 모습이 비칠테고, 결국은 따라하게 될 것 같았어요.”
서울 은평구 신사동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은평구 진관외동 북한산 기슭 주말농장을 골랐다. 6년 내내 농장에 다니면서 만화가인 신씨도, 컴퓨터 디자이너인 김씨도 어느새 농사 관록이 붙었다. 이런 경험을 그대로 사진에 담아, 지난해엔 <주말 농장 일기>라는 책을 냈다.
이렇게 시작했죠
구청이 임대하거나 개인이 운영하는 주말농장이 여러 곳 있었다. 붐이 막 일던 때였다. 신씨는 승용차로 1시간이 안 걸리는, 되도록 30분쯤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차례는, 그냥 가서 한번 훑어보고 오더라도, 꼭 들러봐야 하기 때문이죠.” 덥다고, 시간이 없다고 지나치면, 밭에는 여지없이 잡초가 무성해진다. 땅은 손길을 주는 만큼 열매를 내놓는다고 했던가.
최소 단위인 5평을, 1평에 1만원씩 5만원에 빌렸다. 3월 말부터 서리 내리는 11월 말까지다. 서너 해 뒤부턴 20평을 빌렸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함께 다닌다면, 10평부터 시작해도 괜찮다.
상추, 고추, 쑥갓, 토마토 순으로 권했다. 주말농장 쪽도 대개 이런 작물을 추천한다. 자라는 기간이 짧고 일손이 비교적 덜 필요해 아마추어 농군과 아이들이 주말농장의 멋을 일찍 접할 수 있는 탓이다.
씨앗이나 어린 싹(모종)은? 동네 꽃가게에만 들러도 갖추고 있거나 종묘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농기구도 차근차근 챙기면 된다. 호미, 물뿌리개, 꽃삽, 전지가위 따위 일단 기초적인 것들을 산다. 덩치 큰 삽·쇠스랑 등은 빌려주는 곳이 많다.
재배법을 모른다면? 책을 찾거나 인터넷을 뒤져도 되지만, ‘준전문가’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물어가며 하면 된다. 농장을 빌려준 주인이나, 옆 가족 가운데 나이든 이들에게 여쭈면 생생하고 알찬 비결을 듬뿍 안겨준다. 한 할머니는 땅콩이나 옥수수를 땅속에 세 알씩 묻으라며,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썩어도 나머지 한 알이 싹을 틔운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마음에 챙길 것은?
주말농장에서 자녀가 부담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뭘 배우게 해야지 하는 마음에, 미리 조사하게 하거나 다녀와서 보고서나 일기를 쓰라고 은근히 강요하는 일, 오랜 시간 힘든 일을 시켜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어디까지나 아이들이 즐길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축구공, 배드민턴, 훌라후프, 줄넘기 줄 같은 걸 꼭 챙긴다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내어 호미도 쥐어보고 초등 3학년쯤 되면 괭이질도 해 보겠다고 나서지만, 이내 싫증내고 지겨워한다. 어른도 힘들다는 흙일인데, 아이들이 배겨내겠는가. ‘나도 씨 뿌리고 물 줘서 이렇게 열매와 이파리가 나왔네’ 하는 느낌, 잠깐이라도 농사에 동참했다는 느낌을 함께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다그치지 말고 그냥 뛰어놀게 두세요.” 한두달 가뜩 열의를 내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가족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런 조급함 때문인 것 같다는 게 그의 짐작이다.
아이들은 ‘작아도 소중한’ 성취감 같은 걸 느끼는 게 눈에 보인다고 했다. 씨앗에서 새싹이 막 틀 때, 어린 싹이 자라 열매가 매달리기 시작할 때, 열매나 자란 잎을 따 곧바로 먹을 때, 땅속 감자나 고구마를 캘 때…. 아이들은 한껏 기뻐한다.
매력은?
한 가족이 모여 함께 어울리는 맛과 멋 자체를 신씨는 꼽았다. 주말 한때의 농사임을 염두에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농장을 가꿔온 속내가 엿보인다.
자기 손으로 기른 유기농 채소를 손수 따서 씻어 곧바로 먹는 맛은, 주말농장 아니고선 쉽게 접하기 힘들다. 가족이 밖에서 한 끼를 먹는 외식의 즐거움도 따른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관찰 능력을 키운다.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쌍둥이 고추’나 지렁이 따위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주의가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걱정되면 주말농장을 함께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개나리·토끼풀·달맞이꽃 등 농장 주변의 야생화 찾기 △감자 꽃, 열무 꽃, 대파 꽃, 수세미오이 꽃처럼, 관상용 꽃보다 예뻐 보이는 채소 꽃들 살펴보기 △잠자리·거미·사마귀·땅강아지 등 농장에 놀러온 곤충 찾아보기 △소나무·전나무·밤나무·감나무 등 주변 나무들 가려보기 △무·상추·배추 등 채소의 속 들여다보기….
이렇게 한 가지 주제를 정해 찾아가면 아이들이 직접 보고 만지며 배우는 것들이 적지 않다. 놀이터이자 배움터가 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조롱박이나 수세미오이로 물바가지나 장식품을 만들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재빈이와 김귀행씨가 캔 무를 대어 키를 재어 보고 있다.
재빈이와 친구가 다 자란 당근을 뽑아 안은 채 즐거워하고 있다.(오른쪽 위). 쑥갓,상추,고추,피망등 갖가지 야채를 심은 텃밭에서 아이가 잡초를 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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