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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두 문제만 더 맞히면 윗단계로” 그들이 대학을 갈아타는 이유

등록 2023-03-11 07:00수정 2023-03-11 20:40

[한겨레S] 커버스토리
N수 권하는 사회…지방대 삼키는 학벌 피라미드
지난달, 한 비수도권 대학에서 2023학년도 신입생 추가모집을 알리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추가모집은 수시와 정시 전형 이후에도 신입생을 채우지 못한 대학들이 실시하는 마지막 모집 전형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달, 한 비수도권 대학에서 2023학년도 신입생 추가모집을 알리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추가모집은 수시와 정시 전형 이후에도 신입생을 채우지 못한 대학들이 실시하는 마지막 모집 전형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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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채워갑니꺼?”

지난달 27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학원가의 중심부에 위치한 송원학원. 재수종합반을 운영하는 이 학원의 차상로 진학실장은 몇몇 대학 입학처 실무자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인근 지역 대학들의 신입생 충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날은 2023학년도 신입생 ‘추가모집’ 마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추가모집은 수시와 정시 전형 이후에도 신입생을 채우지 못한 대학에서 벌이는 마지막 모집 ‘찬스’다. 이미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을 치른 대학들도 신입생 충원을 계속 이어가는 중이었다.

이번 추가모집 인원 1만7천여명 가운데 89%가 비수도권 대학이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는 경북(2889명·종로학원 집계)이 가장 많았다. 정시모집 인원의 절반 이상을 다시 뽑는 곳들도 상당수였다. 차상로 실장은 “추가모집만 여섯차례에 걸쳐 하고 있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는 대학·학과들이 곳곳에 있다”고 전했다. ㄱ대학은 442명을 모집 중인데 이날 오후 3시 무렵 기준으로 26명만 지원서를 냈다. 추가모집은 지원 횟수 제한이 없어, 이마저도 모두 등록한다는 보장이 없다.

반면 같은 날, 수도권의 주요 28개 대학 추가모집 평균 경쟁률은 91.9 대 1이었다. 뽑는 인원은 몇 안 되지만 지원자는 구름 떼처럼 몰렸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1명 추가모집에만 무려 667명이 지원서를 냈다. 서울 쏠림 현상은 ‘막차’ 격인 추가모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해마다 대입 전형이 마무리되는 2월이 되면, 비수도권 대학은 이중고를 겪는다. ‘한명이라도 더’ 신입생을 뽑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도 버거운데, 다른 대학으로 빠져나가는 이들로 재적 인원에도 구멍이 숭숭 뚫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서울’ 대학과 의학계열 선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학령인구 감소와 정시 확대 등의 요인까지 겹치면서 대학 서열화는 외려 더 촘촘해지는 모양새다.

“먹이사슬처럼” 지방대→인서울→의학계열

“평생 지방에 살 거면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아서….”

2022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지역거점 국립대 사회학과와 자율전공부에 합격한 이서진(가명·20)양이 두군데 다 등록을 포기하고 재수를 택했던 이유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녀야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부모님 세대는 너무 좋은 학교로 알고 계셔서 반대가 심하셨어요. 성적이 ‘스카이’(서울·고려·연세대)에 갈 정도가 아닌데 왜 재수를 하려는지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그는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 1월 재수 선행반에 들어갔다. 보통 재수종합반은 2월에 문을 열지만, 한달 일찍 시작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양은 2023학년도 입시에서 서울의 한 사립대 영어교육과와 또 다른 사립대 법학과에 합격했다. 법조인이 꿈이지만, 최종 등록은 영어교육과로 했다. ‘입결’(입시 결과, 합격생들의 성적대)이 더 높은 대학을 골랐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학교는 다닐 건데, 솔직히 한번 더 (입시를) 치르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중상위권 대학 인문과학계열에서 지난해 1학기를 다닌 박준서(가명·20)군은 이번에 한의대로 대학을 갈아탔다. 박군은 2학기 휴학계를 내고 6월 말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공부에 몰두했다. 그는 원래 철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다. ‘한의대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고3 때 성적이 오르고 나니 의학계열을 바라보게 되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군은 원래 적성은 한의대가 아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맞춰나갈 것”이라고 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취업 준비에 매달려야 하는 것보다 한의대에서 6년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얻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겠느냐”고 박군은 말했다. “안정적 직업을 보장한다”는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는 일단 성적이 상승하면 도전해야 하는 목표점이 됐다.

대학을 입결에 따라 서너개씩 ‘라인’을 만든 뒤 줄세우기를 하는 일은 각종 수험생·재학생 커뮤니티에서 가장 핫한 이슈가 되곤 한다. 그 정점에 ‘의치한약수’와 ‘스카이’가 있고, ‘인서울’ 안에서도 다시 7~8개 라인으로 나뉜다. 같은 라인 안에서도 어느 대학을 앞세울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다. 해마다 입결에 조금씩 변동이 생기는 탓이다. 이런 대학 라인은 취업 준비 기간에도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지역거점 국립대들이 각기 서울의 어느 라인에 해당하는지를 정한다거나, 비수도권 내에서도 서울로부터 떨어진 거리 등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식으로 줄세우기의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의 저자인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대학 서열은 서울에서만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지방에서도 광역시와 대도시, 중·소도시 등의 기반 시설 차이가 크기 때문에 대학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먹이사슬처럼 서열이 세분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대학가 안팎에 깊숙이 스며든 서열에 대한 인식은 재수 계획이 없던 이들의 마음까지 돌리고 있다. 지난해 22학번으로 지역거점 국립대 생명과학부에 진학한 조성진(가명·20)군은 입학식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수를 결심했다. 그가 입학한 대학은 광역시 소재가 아니었고, 서울에서 제법 거리가 먼 곳이었다. “필수교양 과목 첫 수업을 듣는 날이었어요. 교수님이 ‘이 대학을 다닌다고 너희들 인생이 망한 건 아니다.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순간, 이 대학을 계속 다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때로 익명의 공간에서 ‘비하’는 좀 더 심각해진다. 최대 재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게시판에선 아예 대놓고 지방대 ‘혐오’글이 올라온다. 각 대학의 지방 캠퍼스를 공격하거나 입결이 낮은 학교에 대한 비하 발언이 대부분이다. 아들의 결심을 전해 들은 조군의 부모님도 ‘반수’를 흔쾌히 허락했다. 자취방 계약에 따른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조군은 반수 끝에 지난달 28일, 입결이 더 높은 지역거점 국립대에 입학했다. 그는 “입학을 축하한다”는 학과 교수님들의 평범한 인사말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고 했다.

김태형(가명·22)군은 4수 만에 올해 의대 3곳에 합격했다. 지난해 비수도권 한의대에 입학했지만, 수업에는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아침 7시30분부터 밤 11시까지 수능 공부에 매달렸다. “한의대에 붙고 나서도 실패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고 김군은 전했다. “같이 의대를 준비하던 친구들이 한의대를 낮은 수준으로 보고 비하 발언을 하는데 속이 상하더라고요. 한의대 합격도 잘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의대가 목표이기도 했지만, 4수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친구들의 시선도 자극이 됐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을 것’이라는 말이 점차 현실화될 조짐이다. 사실상 신입생 선발 능력을 상실한 대학·학과가 하나둘씩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해 다니다가 서열이 더 높은 대학으로 갈아타는 이들도 갈수록 많아진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을 것’이라는 말이 점차 현실화될 조짐이다. 사실상 신입생 선발 능력을 상실한 대학·학과가 하나둘씩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해 다니다가 서열이 더 높은 대학으로 갈아타는 이들도 갈수록 많아진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김군은 “남들보다 늦게 입학했지만, 길게 보면 안정적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답변을 하면서 ‘수익성’이 높은 전공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군은 의학계열 내에서도 맨 윗단에 있는 의대로 가기 위해 수능을 다시 보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대학 라인을 높이려는 욕망은 의대에 합격했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인서울 의대’로 진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미등록·미복학·자퇴, 연간 9만여명

대학알리미 공시를 보면, 2021학년도 기준 전체 재적 학생(4년제 일반대학) 193만6093명 가운데 중도탈락자는 9만5345명에 이른다. 학사경고, 수업연한 초과 등을 제외하고 자의에 의한 미등록·미복학·자퇴 비중이 96%(9만1162명)를 차지한다. 개인 사정으로 학업을 그만두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대학으로 빠져나간 이들이 대거 포함됐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두해 전인 2019학년도와 비교하면, 재적 학생 수는 정원 감축으로 6만5495명이 줄었지만 미등록·미복학·자퇴 인원은 2249명이 더 늘었다.

교육 현장에선 반수·재수·장수·군수 등을 아우르는 ‘엔(N)수’가 늘어난 영향으로 보고 있다. 윤종걸 대구광역시교육청 대입지원관은 “학령인구가 줄었다고 해서 모든 대학의 입학 경쟁률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한두개 문제로 대학 이름과 학과 이름이 바뀌고 하니까 재도전하려는 학생들이 많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겨레>와 인터뷰를 한 학생들에게 ‘고3 같은 반 친구들 가운데 어느 정도가 반수·재수를 한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적게는 “4분의 1가량”, 많게는 “3분의 2 정도”라고 했다. 교육열이 높은 도시인 대구에서 만났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 비중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통원형 재수종합학원은 한달에 최소 150만원, 기숙형은 3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지난 7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학부모들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재수생들의 학원비는 빠져 있다.

정시 확대 기조의 정부 정책은 사실상 이를 부추기고 있다. 2023학년도 입시는 교육부 권고로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 비중이 40%를 넘긴 첫해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교육부 지침대로 대입전형을 실시한 대학에 지원금을 준다. 수도권 대학은 수능 위주 전형을 30% 이상(서울 주요 16개 대학은 40%), 비수도권 대학은 수능 위주 전형이나 교과 전형(내신 위주)을 30% 이상 충족하면 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입상담교사단 소속인 조만기 남양주 다산고 교사(3학년 부장)는 “정시 선발 인원이 늘어나면, 조금만 더 수능 공부를 해서 상위권 대학에 가겠다는 학생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시로 가면 신입생을 채우기 어렵기 때문에, 수시에서 학생들을 확보해야 하는 지방대의 고충은 더 가중된다.

이런 실정에 밝은 입시학원들은 재수종합반이 개설되는 2월 이후에도 원생 모집으로 분주하다. 서울 강남의 한 입시학원은 지난 1일 ‘재수 야간반’ 개설 설명회를 열었다. 주된 공략층은 “대학 합격 후에도 미련이 남는 학생”들이다. 재수 야간반은 오후 4시부터 등원을 하기 때문에 대학 수업과 병행이 가능하다. 설명회에서 한 담당자는 “정시에서 조금만 (점수를) 끌어올리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2023학년도 입시부터 본격화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탐구과목 두 문제만 더 맞혀도 윗단계 대학으로 옮겨 갈 수 있고, 여기에 국어와 수학 한 문제씩 더 맞히면 두 단계를 올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 입시 경쟁이 문·이과 교차지원, 의학계열 쏠림 등으로 좀 더 과열되는 징후가 보인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만기 교사는 “올해 수시 합격자들의 등록 포기가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서울 소재 대학들의 추가모집도 큰 폭(전년보다 두배 증가)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원래는 수시전형 합격 뒤 예치금을 넣으면 최종 등록으로 이어지는 것이 관행이었다. 대학 입장에선 ‘집토끼’라고 여겼던 합격자들마저 이탈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 전문대와 경쟁하는 지방대

대학 서열의 맨 밑단에는 비수도권 사립대들이 있다. 지역거점 국립대에 견줘 등록금 의존도가 훨씬 높고 정부 재정 지원은 열악하기 때문에, 입학생 감소는 존립 위기로 이어진다. 202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지원자가 0명인 학과는 14개 대학 26개 학과(모집 인원 445명)인데, 이들이 모두 비수도권 사립대들이다. 2020학년도에는 3개 학과에 불과했는데 8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신입생 선발 능력을 상실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충남 천안보다 아래쪽에 있는 비수도권 사립대의 경우, 사실상 수도권 전문대와 경쟁 구도에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이 때문에 상당수 대학들이 취업에 유리한 사회복지·보건·요리·게임콘텐츠 쪽으로 학과를 변경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입생 정원을 못 채운 대학들은 정원 외 전형인 성인학습자 전형(만 30살 이상)이나 외국인 특별 전형으로 학생을 충당한다. 또 중도탈락한 학생의 자리는 편입으로 채우는 식이다. 학과 설립 규제가 완화되면서 최근에는 외국인들로만 채워지는 외국인 전담 학과도 생겨나는 중이다. 입학처 업무를 담당했던 비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되는 체육 관련 학과 등에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려고 공을 들인다”며 “문제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최근 들어서는 인서울 대학을 선호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들은 각종 신입생 혜택을 홍보하면서 학생 확보에 나서고 있다. 경북 경산시에 소재한 ㄴ대학은 2023학년도 정시모집 기간에 지원자끼리 서로 추천해서 등록하면 한명당 50만원씩 지급하는 장학금을 신설했다. 일종의 ‘동반 입학’인 셈이다. 같은 지역의 ㄷ대학은 입학처 홈페이지에 ‘내년 지하철 개통’ 소식을 게시했다. 학교 앞에 지하철 노선이 연결돼 있는지 여부가 신입생 입장에서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모든 신입생들에게 학업 장학금으로 8학기 내내 일정액의 학비를 지원하는 학교들도 여럿 있다. 입학식이나 오리엔테이션에서 간단한 퀴즈를 내고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등 고가의 선물을 지급하는 일도 다반사다.

지방 사립대들은 기숙사와 푸드코트를 새로 짓고 신입생을 모시는 데 공을 들이기도 한다. 비수도권 대학 한 교수는 “신입생을 ‘밀착 마크’해서 교수와 선후배 간에 네트워크를 잘 형성해주고 이를 통해 학교에 정을 붙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대면 수업을 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의 이탈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달 27일, 한 재수종합 학원에서 원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지난달 27일, 한 재수종합 학원에서 원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원인은 대학에 있는데 입시만 바꿔서야”

고등학교 3학년생 수가 감소함에 따라, 올해 치러지는 2024학년도 수능 응시생은 역대 최저인 41만명대(엔수생 포함)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응시생이 줄어든다고 해서 경쟁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는 나오지 않는다. 외려 선호도가 높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로 보는 인식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펴낸 바 있는 김종영 경희대 교수(교육사회학)는 “학교에서 ‘시민’이 아니라 ‘전사’를 기르는 한국의 고등학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최대 문제는 대학 서열 체제로 인한 병목 현상 때문에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몇몇 대학을 향한 좁은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모두가 뛰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여론조사(2022) 결과를 보면, 대학 서열화에 대한 전망에 있어 ‘큰 변화가 없을 것’(58.6%)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심화될 것’이란 응답도 27.4%에 이른다.

김 교수는 “대학(고등교육 정책)에 문제가 있는데 자꾸 입시제도에서 단편적인 대안만 찾으려니까 아무런 변화가 없다”며 “미국에서 4년제 공립 연구중심대학 10개로 이루어진 캘리포니아대학 체제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9개 지역거점 국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을 대거 확충하는 등 장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고속도로를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전국의 대학들이 대체로 비슷한 학과 편제와 운영 방식을 가지고 있는 데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조만기 교사는 “과거 대학들이 우후죽순 설립되는 과정에서 특성화를 전혀 하지 않고 지방대도 똑같이 종합대학으로 설립되다 보니, 출생아 수 감소 국면에서 그로 인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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