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출연한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 갈무리.
19일 정부와 국민의힘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특목고) 존치를 결정했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사교육을 유발하는 자사고 존치를 결정한 것은 모순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계에서는 이미 윤석열 정부 출범 전부터 문재인 정부의 ‘일반고 일괄 전환’ 정책을 뒤집고 자사고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과제 등에서 직·간접적인 언급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넘은 시점에서야 공식 발표를 하며 ‘본심’이 나온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22년 2월9일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에 나와 “중학교까지는 정규 교과과정을 똑같이 배우는 시간을 줄이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를 나눠야 한다. 기술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라고 말했다가 누리꾼들로부터 ‘기술고, 예술고, 과학고 이미 다 있는데 현실을 전혀 모르는 거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이 발언이 크게 관심을 받았지만 해당 영상에서 윤 대통령은 “학교가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게 오히려 큰 공정”이라며 교육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자사고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같은 달 교육시민단체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도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에 대해 “극단적 평준화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수월성도 추구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비쳤다.
실천교육교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좋은교사운동,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육시민사회단체 117곳이 2022년 4월2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앞에서 ‘특권학교 부활 선언 인수위 규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좀 더 선명한 메시지는 지난해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당초 ‘자사고 폐지 재검토’가 국정과제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명확하게 발표되진 않았다. 대신 인수위는 학습혁명 분야를 발표하며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와 더불어 다양한 학교유형을 마련하는 고교 체제 개편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익명을 요구한 인수위 관계자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다양하게 한다는 내용이 국정과제에 담겼다. 그 안에 자사고·외고를 유지한다는 의미도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교육계에서는 “다양한 고교 체제가 이명박 정부 시절 고교 줄 세우기와는 무엇이 다른지 확인할 수 없다. 고교 서열화를 심화시킬 정책을 펼 것으로 우려된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는 비판이 잇따랐다.
교육부도 국정과제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29일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한 교육부 업무보고를 보면 ‘학교교육 다양성 및 학생의 교육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기존 자사고 제도 존치를 포함한 고교체제개편 세부방안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교육부는 8월 설명자료에서 “외국어고를 포함한 고교체제 개편 방안을 연말까지 시안을 마련하여 발표할 예정”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연말까지’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박 전 장관의 후임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2월21일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사고·외고는 유지하되 일반고의 수준을 높이는 고교 체제 개편 방안을 내년 2월에 발표한다. 일반고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고교 다양화 방안, 일반고 수업이나 교사의 역량을 키워주는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2월’도 지켜지지 않았다. 교육부가 1월5일 새해 업무보고에서 “고교 다양화 등을 통해 모든 학생 맞춤형 교육을 지원하는 ‘고교 교육력 제고 방안 시안’을 상반기 중에 발표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부총리는 19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과 가진 실무 당정협의회에 “(고교 교육력 제고 방안을 포함한) 학교 교육력 제고 방안을 21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공식 발표가 나기 전이었지만 서울 자사고 2023학년도 신입생 모집 경쟁률이 1.45대 1로 전년(1.3대 1)에 견줘 소폭 상승하는 등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자사고 유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고입과 대입 전략을 짜는 모습이 포착됐다.
다만 정부가 군불을 지핀 기간이 너무 길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2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자사고 유지든, 고교학점제 도입이든, 수능 난도 조절이든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정책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점”이라며 “교육부가 공식 발표를 계속 미루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